한반도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거라고 생각함.


국민당 패전으로 중국 본토와 서방국가들(일부 제외)과의 교류 단절됨.

이 덕분에 서방국가들은 일본과 교류해야 했고,
때문에 자본이 일본으로 유입되었음.(1951~)

이렇게 유입된 자본이 한국전쟁 이후 국토재건과 경제성장을 목표로,한일협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으로 유입됨.(1965~)

이와 더불어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비공산국가(터키ㆍ일본ㆍ이란ㆍ인도ㆍ파키스탄ㆍ사우디아라비아ㆍ이라크 등)들 중 하나였던 한국이 베트남전ㆍ파독광부와 간호사ㆍ중동건설 등으로 많은 자본ㆍ기술이 유입되면서 한국에게 부흥의 단초가 됨.


그에 반해 중국 공산정부는 1949년부터 1956년도까지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과만 교류했고,그마저도 소련과 결렬된 이후에는 오로지 자력으로만 부흥하려다가 대약진운동으로,대퇴보.

이후 문화대혁명 덕분에 제로부터 시작하는 공산국가로 발전

가까스로 1979년에 중국이 개혁ㆍ개방 시작하면서
다시 발전하는가 싶었는데 1989년 천안문 항쟁 진압사건으로 다시 서방과의 교류단절 및 제재.


결국에 중국은 저혼자 삽질만 하면서,
세계시장에 들어서기는 고사하고,내수시장도 미미했으니,
국제적인 투자는 일본ㆍ한국ㆍ대만 위주로만 되었음.


그런 중국은 1인당 GDP가 1만 달러가 된 게,
불과 5년전인 2019년(10,310달러)이었음.

그에 반해
일본은 1980년에(11,000달러)
대만은 1992년에(11,000 달러)
한국은 1994년에(10,090달러)
등 훨씬 일찍 달성했음.


어찌보면 2차국공내전은 한국전쟁ㆍ극동아시아의 냉전을 유발한 시발점이면서,
동시에 한국ㆍ일본ㆍ대만에게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할 기회가 되었던 거라고도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