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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 전함 이야기 모음집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의 존재감은 상당히 미약하다. 그나마 언급되는 부분이 독일에게 6주만에 무너지고 항복한 이야기 정도... 지상전에서도 언급이 잘 이뤄지지 않는 프랑스이기에 프랑스 해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역시 열강이었고, 당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함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전함과 비교했을 때 독특한 외형을 가진 덕분에 나름의 인지도를 가진 전함이 있으니, 이번 글의 주인공 리슐리외급 전함이다.


1943년 9월의 리슐리외



프랑스 해군의 수난사

익히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는 명실상부한 열강이었고 그만큼 군사력 역시 막강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시점에도 프랑스 해군의 전력은 열강치고는 상당히 빈약했다. 물론 프랑스는 국가 특성상 육군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기준으로 드레드노트급 이상의 전함이 단 두 종류에 불과한 건 좀... 일이 이 지경이 된 배경에는 프랑스 스스로의 삽질이 있었는데 19세기 후반 프랑스 해군 내 주류 교리 학파였던 '청년학파(Jeune École)'의 대두가 그것이었다.


이 청년학파의 교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뢰정을 양산하여 해군력의 증강을 이루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어뢰정을 찍어내자!'라는 발상은 처음부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생각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열강이었고 해외에 다수의 식민지를 두고 있었다. 바다가 동네 목욕탕도 아니고, 어뢰정으로 그 넓은 바다를 건너며 식민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미국 해군이 운용했던 어뢰정의 하나인 PT 보트. 대충 봐도 굉장히 작은 배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술의 발전도 청년학파의 몰락을 불러왔다. 청년학파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대형 군함의 어뢰정 저지 능력이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아서 다수의 어뢰정이 늑대처럼 대형 군함을 사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함포가 발전하면서 연사력이 높아졌고 어뢰정이 충분한 사거리를 확보하기 전에 대형 군함 쪽에서 미리 격침해버리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드레드노트가 등장하기 이전의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들도 그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이 여기에 결정타를 꽂았다. 1893년, 영국이 구축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구축함의 영문 표기인 Destroyer가 Torpedo Boat Destroyer에서 기원한 것인만큼 구축함은 어뢰정에게 사신과도 같은 존재였고 어뢰정은 꿈도 못 꾸는 원양 작전도 가능했다. 이러한 구축함이 양산되어 배치되자 200척에 달하던 프랑스 해군의 어뢰정들은 그 힘을 잃게 되었다. 이렇게 청년학파가 몰락하고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프랑스는 주력함의 건조를 시작했으나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쿠르베급과 브르타뉴급, 두 종류의 드레드노트급 전함만을 건조한 채 제1차 세계 대전을 치뤄야했다.


쿠르베급 전함 네임쉽 쿠르베. 개장 이후의 모습이나 배 자체는 1911년에 진수되었다.


브르타뉴급 전함 네임쉽 브르타뉴. 1934년 개장을 받았으나 진수식은 1913년에 있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프랑스 해군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이 체결됐을 당시, 프랑스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주력함 전력이 빈약했기에 70,000t의 배수량 쿼터를 따로 배정받았다. 본 굳이 건함 경쟁에 뛰어들 생각이 없었던 프랑스는 적당히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전함을 개장하여 운용한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이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을 건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은 그 허점이 알려졌지만 취역 직후의 도이칠란트급은 '포켓 전함'이라고도 불리며 상당히 고평가받은 군함이었고 이에 위기를 느낀 프랑스는 전격적으로 계획을 수정하여 고속전함을 건조하게 되니, 이것이 됭케르크급 전함이다.


됭케르크급 전함 1번 함 됭케르크



리슐리외급 전함의 탄생

됭케르크급 전함은 그 성능면에서 영국, 미국 등의 전함과 비교했을 때 열세였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사실상 해군력이 증발했던 독일 해군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됭케르크급의 등장에 자극받은 독일은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을, 이탈리아는 기존의 구식 전함들을 재건조 수준으로 개장하여 배치했다. 상황을 심각하게 여긴 프랑스는 이에 맞서 이전의 군축 조약들에서 규정된 조건을 준수하며 새로운 고속전함의 설계와 건조에 착수했고 이로써 리슐리외급 전함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영국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 됭케르크급 2척(됭케르크, 스트라스부르)에 리슐리외가 더해지면 기존에 인정받은 70,000t의 배수량 제한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은 여전히 건함 경쟁에 뛰어들기를 크게 꺼리고 있었기에 군축 조약에 매달리는 중이었는데 이를 빌미로 프랑스에도 조약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1935년 영국-독일 해군 조약으로 독일 해군에 걸려있던 족쇄가 풀리는 등의 일을 목도한 프랑스는 '프랑스의 적이 강해지는데 이걸 그냥 묵과할 수는 없다!'라는 논리로 영국의 항의를 무시, 리슐리외급 전함 건조를 강행했다. 영국으로서도 기존에 저지른 전과가 있었고 이미 군축 조약 체제가 붕괴하고 있었기에 프랑스가 전함을 건조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리슐리외급 전함의 강점

위와 같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초도함 리슐리외가 1935년 10월, 2번 함 장 바르는 1936년 12월 건조가 시작되면서 프랑스 해군은  주변국(독일, 이탈리아)의 전함과 한 번 붙어볼 만한 고속전함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속력의 경우 최고 속력 32노트(약 59km/h)로 1930년대 후반 기준 매우 빠른 축에 들었다. 당시 유럽의 다른 최신 전함들과 비교하자면 킹 조지 5세급이 28노트(약 52km/h), 비스마르크급이 30노트(약 56km/h), 리토리오급이 30~31노트(약 56~58km/h)였으니 리슐리외급의 속력은 확실히 우수했다. 만약 프랑스가 강력한 수상 함대를 보유하게 되었다면 리슐리외급은 항공모함과 발을 맞추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방어력 역시 우수했다. 리슐리외급 전함은 기본적으로 샤른호르스트급과 개장된 이탈리아 전함들은 물론 독일, 이탈리아의 최신 전함이었던 비스마르크급과 리토리오급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부분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군축 조약을 준수하는 과정에서 주포 포탑을 2개로 줄인 것이 방어력의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군함에서 가장 무거운 부품이 포탑인데 이것이 줄어들면서 남는 배수량을 장갑에 할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슐리외급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바로 전면에 집중된 2기의 4연장 함포일 것이다. 사실 이건 영국의 견제에 반발하면서도 나름대로 군축 조약에서 제시된 조건을 맞추려 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군함에서 포탑은 일반적으로 가장 무거운 부품이며 이 때문에 리슐리외급도 처음에 설계가 시작되었을 때는 15인치 3연장 주포를 3기 탑재하는 등의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포탑을 3개를 올려버리면 배수량이 크게 증가할 것이 뻔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해군은 이전에 건조한 됭케르크급처럼 포탑을 4연장으로 만들고 전방에 집중시키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리슐리외급의 주포를 묘사한 그림


이렇게 주포를 전방에 집중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구조에 비해 한 가지 명확한 장점이 있는데 바로 피탄 면적을 최소화하면서 최대의 화력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비스마르크와 리슐리외가 교전한다고 해보자. 두 전함 모두 8문의 주포를 가지고 있는데 서로 선수만 내민 상태면 비스마르크는 50%의 화력인 4문의 주포만 사용할 수 있지만 리슐리외는 8문, 즉 100%의 화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비스마르크가 최대 화력을 발휘하기로 마음 먹고 배를 돌리더라도 리슐리외가 꿇릴 이유는 없다. 여전히 리슐리외는 선수만 내민 채로 최대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반면, 비스마르크는 측면을 노출함으로써 피탄 면적이 커졌기 때문이다. 리토리오급과 교전한다고 해도 선수만 내밀고 싸울 때는 15인치 8문 vs 15인치 6문으로 확실히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 전방에 집중된 주포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다.



단점들

하지만 리슐리외급 전함도 엄연히 무기이기에 단점들이 있었다.


우선 주포와 화력의 허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전방에 집중된 주포는 장점이 있는 구조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았는데 우선 전방에 2개의 포탑이 집중된 형태라 1개의 포탑만 망가져도 화력이 1/2로 격감할 위험이 있었다. 물론 프랑스도 이에 대비해 통짜 4연장이 아닌 2+2연장 형태로 포탑을 설계하기는 했다. 위 그림을 보면 2, 3번 포 사이의 간격이 미묘하게 넓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2+2로 약간이나마 분리를 해도 회전부와 포탑 자체는 공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슐리외급 전함 2번 함 장 바르가 미국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3번 함 매사추세츠와 교전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 장 바르는 매사추세츠의 16인치 포탄으로 인해 포탑의 회전부가 망가져서 그대로 무력화되었다.


1944년의 매사추세츠. 태평양 작전 도중 촬영되었다.


그리고 주포가 전방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적함이 리슐리외급의 뒤를 잡을 경우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경순양함 이하의 함선이라면 후방에 집중적으로 배치된 152mm 부포로 쫓아낼 수 있겠지만 중순양함 이상의 군함만 나타나도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 뻔했다. 


화력에도 맹점이 있었다. 철갑탄 구조가 그 원인이었는데 프랑스 해군은 화학전을 상정하고 철갑탄 내부에 독가스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뒀다. 이 공간은 평소에는 비어있는 상태였는데, 이곳을 감싸는 부분이 주포를 발사할 때 빠른 포구초속으로 인한 압력을 버티지 못해 폭발, 포탄이 포신 내부에서 터져버릴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위험은 영국의 캐터펄트 작전 당시 1번 함 리슐리외의 주포가 폭발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현실이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군함 자체가 미완성된 부분이 꽤 있었다는 점, 그리고 예비 부품 조달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리슐리외급 전함을 건조할 때 군축 조약의 내용을 준수해야 했고 이 와중에 주변 정세는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리슐리외급의 건조 역시 급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프랑스는 육군에도 엄청난 예산과 자원을 할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리슐리외는 건조 자체는 완료되었으나 대공 화기가 심각할 정도로 부실했고 전자 장비도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시점에 완공되지도 않은 2번 함 장 바르나 건조가 진행 중이던 3번 함 클레망소는 말할 것도 없다.


1955년의 장 바르. 대전 당시에는 이런 모습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가 1940년, 나치 독일의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나치 독일은 비시 프랑스를 수립한 다음, 리슐리외급 전함에 들어갈 물자를 노획해갔고 결국 리슐리외는 일단 몸을 피하고자 도착한 다카르에서도 제대로 된 수리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후술하겠지만 영국이 캐터펄트 작전을 실행하자 리슐리외는 미국으로 피해 그럭저럭 수리를 받고 부실했던 부분들을 어느 정도 보강하지만 장 바르는 미군에 노획되어 리슐리외의 부품 조달 플랫폼으로 2차 대전을 치뤄야 했다.


정리하자면 몇몇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괜찮은 성능을 갖출 수 있던 군함이 리슐리외급 전함이었으나, 급박한 주변 정세와 영국의 트롤링(?)으로 인한 다급한 건조, 그리고 프랑스의 조기탈락이라는 온갖 악재로 인해 단점과 한계를 주렁주렁 달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리슐리외급 전함은 좋든 싫든 프랑스 해군의 최고 전력이 되어야 했기에 불운이 가득한 가운데에도 그 삶을 이어가야 했다. 2편에서는 리슐리외급 전함의 함생과 1편에서는 못 다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편에서 계속...


*오타나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바빠서 오래간만에 전함 이야기를 쓰네요.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