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아테네

- 샤를 샴포(불가리아-스위스)


1900년(이땐 메달이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 미셸 테아토 마라톤 금 1(룩셈부르크 - 프랑스)(12살 무렵 프랑스로 이민 와서 제빵사였음)

- 조지 오튼 금 1/로날드 맥도날드 동 1(캐나다 - 미국)

필라델피아 대학 팀과 같이 뛰었어서 국적 논란이 됨.

- 프레이둔 말콤 (펜싱)(이란 - 영국)(영국에서 평생을 살았음, 귀화했는지는 불명)

- 카를로스 데 칸다모(페루 - 프랑스)

삼촌이 대통령, 아버지가 프랑스 외교관. 살던 곳은 런던, 이후엔 자기도 일생을 프랑스 외교관. 본국 간 적 없음.

- 콩스탕틴 엔리케즈(아이티 - 프랑스)

프랑스 유학생으로 프랑스 럭비 팀으로 뛰었음

- 앙드레 코흐빙통(아이티 - 프랑스)

펜싱 선수. 1917년 프랑스군 복무중 전사.

- 프란시스코 엔리케즈 데 쥐비리아 줄다리기 금 1(콜롬비아 - 프랑스)(역시 파리 출신. 콜롬비아 대사관 근무, 1차 대전 프랑스군 의료장교로 참전, 1917년 프랑스로 귀화.)

- 아돌프 클링겔외페(브라질 - 프랑스, 1940년대까지 브라질 시민권이었음) 브라질 외교관의 아들. 평생 프랑스에 살았음.

 * 그 외 알제리에서 프랑스를 대표했던 4명의 체조선수들,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대표들, 우크라이나 출신의 펜싱 선수 페트로 자코보로트, 폴란드 출신의 줄리앙 미쇼, 헝가리 대표로 참가한 두 명의 슬로바키아 선수들과 오스트리아 대표로 참가한 크로아티아인 밀란 네랄리치 등이 속국 출신으로 참가.


1904년 세인트루이스

- 밥 파울러(뉴펀들랜드 자치령 - 미국)

1898년 16세 때 뉴펀들랜드에서 가족이 보스턴으로 이사한 후 줄곧 보스턴 마라톤에 참여하며 1904년,1906년 중간 대회를 뛰었지만, 1907년 9월 16일에야 미국 시민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실 뉴펀들랜드 대표로 하는 거 아닌가라는 논란이 있었다. 

- 프랭크 비초니(이탈리아 - 미국)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로디 출신인 그는 1903년 11월 이민을 온 뒤 국내(미국) 대표로 대회에 참가했으며, 쿼터 마일 경기에서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이후 1917년에 귀화했는데, 이 때문에 그가 이탈리아 대표로 봐야 하지 않냐는 얘기가 돌았다.)

 - 알버트 코레이 마라톤 은(미국 - 프랑스)

프랑스가 선수단을 보내진 않았고, 이민 갔던 알버트 코레이가 참가했으며, 당시 보고서는 그를 시카고 체육회로 참가한 프랑스인이라 기술했지만, 한때는 미국인으로 분류했다. 지금은 프랑스인으로 분류된다.

- 찰스 에릭센, 베른호프 한센(미국 - 노르웨이)

찰스 에릭센은 1905년 3월 22일에야 시민권을 땄고, 베른호프는 그 이후에 땄다. 둘은 프리스타일 레슬링에서 각각 웰터급과 헤비급으로 출전해 우승했다.

- 톰 킬리, 존 달리, 존 할로웨이 (아일랜드 - 영국)

영국인 선수로 되어 있지만 그들은 본인 스스로 아일랜드를 대표한다고 밝히며 영국인들의 지원을 거부하고 개인자금으로 갔다.

- 프랜시스 게일리(미국 - 호주)

2021년 7월, 당시 프랜시스 게일리가 참여할 때 아직 귀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호주가 메달을 4개씩이나 받는 걸로 재조정이 되었다.

그 외 오스트리아의 오토 발레도 이미 1901년부터 미국에 살다가 1906년 귀화했고(다른 선수인 율리우스 렌하르트는 당시 미국에 있었을 뿐이지 귀화하진 않았다.) 1912년 올림픽에선 미국 수영팀 코치를, 1920,24년엔 미국 수구 팀의 코치를 맏았다고 한다.

쿠바는 알베르트손 반 조 포스트와 찰스 타탐이 쿠바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미 귀화했음이 밝혀져 마누엘 디아즈와 라몬 폰스트의 금메달 3개만 인정되었다.


세인트루이스는 어지간해서 미국에 있던 사람들 아니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될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