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대조국전쟁- 

1.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성전-대조국전쟁에서 가장 상징적인 노래이다.

아마 1942년쯤 가면 중요하게 다룰 예정.

이 판본은 Освобождение라는 소련 영화에서 오프닝으로 사용됨.



1937년 파리 엑스포의 전경.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당이 집권한 이후, 전 세계는 극좌와 극우간의 첨예한 대결로 점철되어 있었다.

왼쪽에는 세계를 내려다보는 독수리를 표현한 독일의 신고전주의적이자 게르만 우월주의적인 건축물.

오른쪽에는 활동적이며 생동하는 노동자들과 낫과 망치를 형상화한 소련의 건축물.


1941년에 일어날 인류 최대의 전쟁이자 비극을 암시하는 것 같지 않은가?




~베르사유 조약~

1919년 6월 18일, 독일 제국은 항복했고, 연합국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

독일제국-그 순간부터는 바이마르 공화국인-은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되었는데, 이것 중"일부"를 열거하자면,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양도할 것, 모든 식민지를 포기할 것. 

 라인 강 이서 지역 전부와 라인 강 동쪽 50km 지역을 비무장지대로 하여 모든 군사시설을 철거하고 신규 군사시설의 건설을 금지, 병력 배치 금지.

헬골란트는 군사시설을 철거한 후 비무장화 한다. 

{모두가 잘 아는 라인란트 재무장과 관련된 조항..}


20년 안에 1,320억 마르크를 '금을 기준으로' 갚을 것.

{환상의 인플레이션 쇼를 보여주게 한 괴상한 조항. 독일을 빚더미에 앉게 해 경제적 예속을 꾀함.}


육군의 규모를 7개 보병사단과 3개 기병사단, 총 100,000명으로 제한한다. 징병 역시 금지한다. 사관학교와 참모본부를 폐지하고 장교용 군사학교는 3개로 제한한다.

해군의 병력은 15,000명, 군함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6척, 배수량 6천톤 이하의 경순양함 6척, 배수량 8백톤 이하의 구축함 12척, 배수량 2백톤 이하의 어뢰정 12척으로 제한한다.+유보트 금지.

해군 항공대를 비롯한 공군의 보유를 일체 금지한다. 기존에 갖고 있던 전투기 25,000대를 비롯해 항공기와 관련된 모든 자재를 양도하고 조약 체결 후 6개월 동안 항공기 및 항공기와 관련된 모든 자재의 생산 및 수입을 금지한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독일어권 국가들과 다시는 연합하지 말 것.

{독일군 초반 전차 전력 열세 및 독일군의 해군 함정의 구식 함선설계의 원인.}


패전국에서 독립한 국가에서 패전국으로 수출하는 물건에 대해서, 패전국은 그 물건의 수입을 거부할 수 없으며, 무관세로 수입해야 한다. 반대로 패전국이 독립한 국가로 물건을 수출할 때에는 독립국은 패전국산 물건에 대해서 수입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관세 예속화)


이러한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의 체결과 더불어, 바이마르 공화국은 국제 연맹(UN의 전신)에 가입할 수 없었으며,

소련과 함께 서방 승전국들의 가상적국으로서 고려되어왔다. 이에 따라서 바이마르 공화국과

소련은 꽤나 강력한 우방으로서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나치당이 집권하여 나치 독일이 성립되고,

유럽 전역에 침략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움에 따라 이 우방관계는 끊어지는 듯 하였다.


헌데, 승전국들은 이러한 가혹한 책임을 부여하는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승전국의 입지를 적절히 사용하여 나치 독일의 전횡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으며, 오히려 체임벌린의

"우리 시대의 평화"드립으로 대표되는 '유화'정책을 사용하며 나치 정권의 확장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리트비노프 계획~


소련은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서방국, 즉 영-프에게 방역선(연합)결성을 제의해 대독 연합에 의한 방어를

계획하였으나, 서방 국가들은 소련에 대한 경계와 의심을 버리지 않고, 실행된 외교 협상에서도

공동 방역선에 대해서 소극적이다 못해 비관적이고 의심을 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당시에, 소련은 외무장관이자 스탈린의 맹우, 최측근인 보로실로프 원수를 보낼 만큼 이 안건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허나, 프랑스는 일개 대장, 영국은 해군 소장을 보냄으로써

소련의 외교적 체면을 손상시키고 독일에 대한 우려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인상을 보여주었고,

소련의 신뢰를 스탈린그라드로 보내버리며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소련은 당시 동원 가능한 병력이 120개 사단이라고 밝혔고, 프랑스도 110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다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서 적절한 관계가 성사되나 싶었으나, 문제는 영국이였다.


영국은 당시 동원 가능한 사단이 16개라 밝혔으며, 실제로 전투 가능한 사단은 4개, 

완편된 사단은 2개라고 밝힘에 따라 자신들이 직접 전쟁에 참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나쁜 의미로)표현함에 따라 방역선 협상은 결렬되었으다.


거기에 협정 이후 주테덴란트 합병 당시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와 동맹관계였으며,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서방국들의 처사에 대해 크게 분노한 소련 외무부와 정부는 외교 노선을 변경한다.




{좌측은 소련 외무부 서기장 바체슬라프 리벤트로프, 우측은 독일 국가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그리고, 1939년 8월 23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동맹이 체결된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통칭 독-소 불가침 조약이다.


당시 공개된 조항은 이와 같다.

독일과 소련, 양국은 10년 기한의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 

{불가침 조항}

독일과 소련, 양국 중 한 쪽이 타국의 공격을 받으면 다른 쪽은 중립을 유지하며 이와 같은 상황의 타국을 일절 원조하지 않는다. 

{중립 유지선언}

독일과 소련, 양국은 상대방을 적대하는 단체에 가입하지 않는다. 

{우방관계 선언}

독일과 소련, 양국 간에 분쟁이 생길 경우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우방관계 선언}

독일과 소련, 양국은 경제협력을 통한 상호이익의 증진을 도모한다

{경제협력 선언}


그러나, 이 조항은 그저 일부였으며, 훨씬 더 중요한 비밀 조항들이 존재했다.


독일과 소련 양국은 폴란드를 절반으로 분할한다.

{폴란드 전격전 명분 및 계획}

 소련은 몰도바 (당시 루마니아 베사라비아)를 차지한다. 

{동유럽 영향력 확대}

양국은 발트 3국을 분할하여,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소련이, 리투아니아는 독일이 각각 차지한다. 

{발트 3국 침공 명분}

핀란드는 소련이 차지한다. 

{겨울전쟁 명분}

소련과 독일은 서로 필요한 여러 물자를 다수 지원한다.

{군사협력 및 전략자원 지원}


이러한 비밀조항에 따르면, 1940년까지의 동유럽의 운명이 이 조항 하나로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조항들이 하루만에 전부 정해졌다는 것이다.

독일은 이러한 조약을 통해 크롬, 석유, 전차 기술 등의 자원과 기술을 얻었으며,

소련은 프레스 장비, 고급 기술, 외화 등을 얻었다. 또한 이에 따라서 양국은 군사력과 산업력, 경제력을

착실히, 그리고 빠르게 키워나갔다.


그 하루 동안 동유럽의 운명이 결정지어졌다.

서방을 비롯한 전 세계는 전율하였다.


한동안은, 이 조약은 잘 이어지는 듯 하였다. 그러나 그 동맹도 수년밖에 이어지지 않은 것이였다.



-다음 화-폴란드 전격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이후 소련과 독일은 어떤 과정으로 폴란드를 분할하였는가?

소련군의 작전 및 전쟁의 전개는 어떻게 되었는가?


다음 시간에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