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국어 한자 표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대 한국어는 한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표기는 당시의 한자음을 따릅니다. 이 한자음이라는 것은 물론 특정한 표기를 생각해낸 창안자의 발음 체계에 따른 한자음이며, 예컨대 창안자가 고구려인인지, 신라인인지, 대방군에 대대로 거주하던 중국인인지, 중국 본토에서 새롭게 대방군으로 파견된 행정관인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신의 발음을 직접 듣고 받아적은 사관인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역사언어학의 발전으로 춘추·전국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과거의 중국어 발음에 대해 우리는 굉장히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한 높은 이해는 어디까지나 풍부한 문헌 자료와 계승 방언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연구될 수 있는 중국 본토의 중앙 방언에 한정된 것으로, 고대 한국어의 표기에 사용된 한자의 경우에는 이와 같이 동일한 시대라고 해도 그 표기가 성립된 정황에 따라 다양한 발음 체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한자와 시대를 안다고 해서 그 발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한국어의 한자 표기에 대한 한국에서의 연구는 선진 시대의 고대 중국어(Old Chinese)와 수·당 시대의 중세 중국어(Middle Chinese)에 대해 복원된 발음을 기준으로 삼아 왔습니다. 흔히 이 분야의 연구 논문이나 서적을 보면 특정한 한자에 대해 다양한 학자들이 복원한 고대 중국어와 중세 중국어의 발음을 늘어놓고, 그것을 짜깁기하여 고대 한국어에서 이 발음은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연구 방식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입력의 문제입니다. 1980년대 이래 소위 후기 고대 중국어(Late Old Chinese)라고 하는, 후한 시대 전후의 중국어 발음에 대한 연구가 크게 진전되었고, 삼한의 소국명이나 삼국 시대 초기까지의 지명과 인명 표기 등에 대해서는 이 후기 고대 중국어 발음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으로 참고해야 할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한국 학자들의 연구에서는 후기 고대 중국어 발음을 인용하는 부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그들의 능력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다른 문제는 연구 방법의 문제입니다. 음절 구조가 단순해 비교적 표기 체계의 연구가 용이한 고대 일본어의 경우, 같은 시대에도 다양한 한자음 체계가 존재했으며, 그 중 일부는 중국 본토의 중앙 방언 발음에 의해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발음법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또한 같은 자료 안에서도 서로 다른 한자음 체계가 섞여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고대 한국어의 한자 표기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교훈을 주는 것으로, 중국 본토의 한자음을 복원한 발음을 참고하는 것만으로는 고대 한국어의 연구가 진전될 수 없으며, 고대 한국어의 한자 표기법을 분류하여 시대에 따라 어떤 체계들이 존재했는지를 알아내고, 특정한 표기가 어떤 한자음 체계에 속하는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중국 본토와는 굉장히 다른 발음법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학적 방법에 의한 연구 흐름의 중요성


역사언어학은 본질적으로 조각 맞추기 퍼즐입니다. 언어 자료를 조각으로 삼아 음운론적 해석이나 음운 과정(phonological process)들에 대한 가설을 전개해 나가다가, 상충하는 부분이 생기면 이어놓은 조각들을 분해하고 새로운 가설을 채택하여 다시 시작합니다. 모순점 없이 음운사(phonological history)라는 전체의 그림이 완성되면 성공한 것입니다.


Baxter & Sagart (2014)는 고대 중국어의 발음을 복원하는 과정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에딩턴의 개기 일식 관측에 비유합니다. 과학 연구에서 실험 결과는 어디까지나 존재하는 가설을 검증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지, 반대로 실험 결과가 특정한 가설을 자동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참고가 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Kuhn 1962 등 과학철학 서적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에딩턴의 관측이 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특정한 관측 결과가 예상되며, 그 관측 결과는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개기 일식 관측 결과가 이상하다는 사실 자체가 주목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설령 누군가가 그 사실을 발견했더라도 기존의 이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될 뿐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도출되지는 않습니다. 역사언어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언어 자료에 대해 특정한 절차를 수행함으로서 과거의 언어를 복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언어에 대한 가설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으로 복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고대 한국어 자료를 무분별하게 늘어놓고 그것을 정리하여 하나의 체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언어학의 연구사에서 고대어의 해독은 먼저 분석하기 쉬운 단어나 표현을 찾아내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운 다음, 그 가설을 확장시켜 처음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언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예시로는 고대 페르시아 쐐기 문자의 해독이 있습니다. Münter는 1802년에 고대 페르시아어가 기록된 점토판에서 특정한 쐐기 문자 7개의 나열이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7개의 문자가 "왕"이라는 뜻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이후 Grotefend는 이를 발전시켜 "왕"이라는 단어가 4번 나타나는 특정한 구절을 "위대한 왕 크세르크세스, 왕 중의 왕, 다리우스 왕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해독합니다. 이 시점에서 고대 페르시아어는 미지의 언어였을뿐더러, 쐐기 문자의 발음 또한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케메네스 왕조  왕들의 이미 알려진 이름과, 후대의 다른 페르시아 제국에서 사용된 지배자 호칭에 대한 지식을 단서로 삼아 조합하여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성공적인 해독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고대 한국어의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비교적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지식을 점차적으로 확장시켜 상대적으로 확실하지 않은 사실들을 밝혀 나가는 것이 효과적인 연구 방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기 고대 한국어 해독에 있어서의 기준점


이러한 방식의 연구를 위해서는 어떤 사실들이 비교적 확실한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대 한국어의 한자 표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양한 발음 체계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한자음 체계에서도 비슷하게 발음되었을 만한 한자가 있다면, 그 한자의 발음은 비교적 확실한 사실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한자가 동일한 의미로 나타난다면 아마도 같은 단어일 것이고, 비슷한 발음의 한자가 동일한 의미로 나타난다면 아마도 같은 발음이었을 것이라는 식의 논리 역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편, 시대를 한정하는 전략도 있습니다. 예컨대 '삼국사기'에 기록된 표기는 후한 시대의 한자음 기반일 수도 있고 수·당 시대의 한자음 기반일 수도 있겠지만, '후한서'나 '삼국지'에 실려 있는 표기가 수·당 시대의 한자음 기반일 수는 없습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만 저는 고구려의 '고추가(古鄒加)', 신라의 '갈문왕(葛文王)'이라는 호칭이 전기 고대 한국어의 해독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고추가(古鄒加)', '갈문(葛文)'이라는 글자는 *katokɛ(r) [가도겔]과 같은 발음으로 읽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추가(古鄒加)의 분석


아시는 바와 같이 '고추가(古鄒加)'는 고구려에서 왕위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 왕위에 오른 적이 없는 왕의 아버지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아래에서는 번호를 붙여 가며 이 칭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고추가'는 후한서와 삼국지에 나타나는 표기이므로, '고(古)'라는 한자는 후한 시대의 중국어 발음인 *kˤaʔ [가]를 참고하여 *ka [가]로 읽는 것이 합당합니다.


(2) '가(加)'의 고대 중국어 발음은 *kˤraj이고 중세 중국어 발음은 kae입니다 (-ae는 후설 -a와 대비되는 전설 개모음). 이 사이의 변화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지만, *-ˤaj (A형)가 아닌 *-aj (B형)의 경우 고대 중국어 *-e와 합류하여 중세 중국어 -je로 변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ˤaj 역시 후기 고대 중국어에서 우선 전설 비개모음 (예컨대 *-ˤɛ)으로 단모음화한 다음, *ˤ의 영향에 의해 개모음화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또한 '가(加)'와 '고(古)'의 표기자가 혼용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고(古)'의 한자음이 *ka가 확실하다면 반대로 '가(加)'는 *ka가 아니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가(加)'는 *kɛ [게]의 발음으로 읽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2-1) '가(加)' 자체는 부여에 관한 기록에서도 나타나는 유서 깊은 칭호이므로, 더욱 오래된 (즉 고대 중국어에 가까운) 한자음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구려의 왕명에 나타나는 '해(解)' 역시 고대 중국어 *kˤreʔ이므로 당시의 한자음으로는 *kɛ [게]로 읽어야 할 것이며, '신찬성씨록' 등 고대 일본 자료에서도 고구려의 왕족 칭호는 kê [게]로 나타납니다.


(3) '추(鄒)'의 한자음에 대한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시조 '추모(鄒牟)'가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도 전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시 고구려인들의 한자음에서 '추(鄒)'는 무언가의 이유로 *to [도]의 발음으로 읽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1) '동명(東明)'은 부여 건국 설화에 나오는 인명이므로 고구려의 '추모(鄒牟)'와는 별개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고구려와 부여가 서로 다른 국가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두 인명은 동일한 단어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설화에서 주몽과 온조를 각각 따라갔다는 신하의 이름이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주몽을 따라간 마리摩離와 온조를 따라간 마려馬黎처럼),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다른 나라이지만 '마리(摩離)'와 '마려(馬黎)'가 동일한 단어의 이표기라는 점은 의심하기 어렵습니다. 동명 설화와 주몽 설화에 등장하는 강의 이름이 일치한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3-2) '한서', '후한서'에 나타나는 고구려후 추(騶)의 이름을 '삼국지'에서 도(騊)로 기록하고 있는 점은 단순한 오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추(芻)' 계열 한자의 발음에 대해 무언가를 시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즉, 고구려인들이 '추(芻)'의 발음을 '도(匋)'로 혼동했거나, 두 글자의 모양을 관습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혼용했거나, 또는 고구려와 인접한 지역의 중국어 화자들이 실제로 '추(芻)'를 '도(匋)'처럼 발음했을 가능성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갈문왕(葛文王)의 분석


신라의 '갈문왕(葛文王)'은 고구려의 고추가와 마찬가지로 왕의 아버지나 장인 등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두 칭호는 매우 유사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 같은 단어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갈문왕 칭호가 신라 건국 초기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묘사됩니다만, '왕'이라는 칭호가 사용되지 않았던 시대에 '갈문왕' 칭호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이 칭호가 5세기 초에 고구려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성립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번호를 붙여 가며 살펴보겠습니다.


(4) '갈(葛)'이라는 한자의 발음은 후기 고대 중국어 *kˤat [가ㄷ], 중세 중국어 kat [가ㄷ]으로, 사실상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지증왕 대부터 금석문에 나타나는 '갈문왕' 칭호는 중국어의 -t 말음이 한국 한자음에서 ㄹ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기의 상한보다 훨씬 이르기 때문에, '갈문왕'의 '갈(葛)'은 kat [가ㄷ]에 해당하는 1음절의 발음, 또는 그 뒤에 임의의 모음을 붙인 (즉, katV 꼴) 2음절의 발음을 표기하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5) '문(文)'이라는 한자는 소리로 읽는다면 물론 mun [문]이 되겠습니다만, 文峴縣 一云 斤尸波兮 (삼국사기 37)의 기록으로부터 [글]이라는 발음으로 읽히는 "글"을 뜻하는 단어가 적어도 신라 후기에는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기 중세 한국어 (15세기)에서 "글"과 "물"은 모두 [을] 발음으로 끝나는데, "물"이 고대 한국어 지명 표기에서 주로 '매(買)' (고대 중국어 *mˤrajʔ)의 한자로 표기되며, 이는 '고추가(古鄒加)'의 '가(加)' (고대 중국어 *kˤraj)와 (첫머리의 자음을 제외하고) 일치하므로, (2)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ˤaj를 고대 한국어 한자 표기에서 모음 *ɛ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물"의 전기 고대 한국어 발음은 *mɛr [멜]이었을 것이고, 이것이 후기 고대 한국어 이래 [믈]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음 변화가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글"이라는 단어 역시 전기 고대 한국어에서는 *kɛr [겔]로 발음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문(文)'을 소리로 읽을 경우 *kɛr [겔]로 읽을 수 있습니다.


(5-1) 짐작하실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시점에서 '가(加)'를 *kɛ [게]로 읽었던 것을 *kɛr [겔]로 정정해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대 중국어에서 중세 중국어에 이르는 과정의 개음 *-r-의 발음 변화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만, 이 개음이 모종의 이유로 전기 고대 한국어의 한자 표기에서 모음 뒤의 *r [ㄹ] 발음을 나타내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중국어학계에서도 개음 *-r-에 해당하는 성질이 고대 중국어에서 중세 중국어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음절말로 위치가 옮겨졌던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으므로 큰 무리는 없습니다.


(6) 따라서 '갈문(葛文)'이라는 표기는 *katV [가ㄷ] + *kɛr [겔]로 읽을 수 있으며, 이 칭호가 '고추가'와 동일한 역할을 한다는 점과 '고추가'의 발음이 *katokɛr [가도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갈문(葛文)'은 '고추가'와 같은 단어이며 마찬가지로 *katokɛr [가도겔]로 읽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역사적 문맥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katokɛr [가도겔]의 앞부분의 발음은 발해의 왕호 '가독부(可毒夫)'와도 일치합니다. 발해는 훨씬 후대이므로 수·당 시기의 중국어 발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이 경우 '가독(可毒)'은 중세 중국어 khaX dowk [카톡]으로 *katok [가독] 또는 *katokV [가도ㄱ]에 해당하는 표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독부(可毒夫)'는 '성왕(聖王)' 즉 거룩한 왕을 의미한다고 하므로, 이 단어는 실제로 17세기 한국어의 '거륵', 현대 한국어의 '거룩'이라는 단어로 이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고대 한국어의 모음 사이 *t [ㄷ]는 이후 [ㄹ] 발음으로 변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걷다', '걸어서'와 같은 불규칙 활용을 통해 관찰할 수 있듯이).


이는 '고추가', '갈문왕'이라는 칭호가 단순히 '성왕(聖王)'이라는 뜻으로, 그 자체에 왕의 아버지라든가 하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는 지배자의 존칭을 중국식의 '왕(王)'과는 다른 표기로 적은 것에 불과함을 시사합니다 (지증왕이 갈문왕 칭호로도 불렸던 이유). 이러한 칭호는, 씨족 사회의 전통적 질서가 고대 국가 체계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왕족의 우두머리'와 '왕위에 있는 인물'의 불일치가 발생한 데 의해 '왕'과 구분되는 '고추가'와 같은 칭호가 기록에 별도로 남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전통적 씨족 사회 개념인 '씨족의 우두머리'를 고유어 칭호 '고추가'로, 국왕을 중국식 칭호 '왕'으로 부른다면, 일반적인 경우에는 왕과 고추가가 같은 인물이지만, 왕의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경우에는 서로 다른 인물을 가리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변화하여 고구려에서는 '고추가'가 관명으로 격하되고, 신라에서는 '갈문왕'을 왕의 사망한 아버지에게 추숭하는 등의 다른 용법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는가


'고추가'와 '갈문왕'을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수적으로 다양한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모음 ㅡ의 발음이 전기 고대 한국어에서 *ɛ [ㅔ]에 가까웠다는 점이나, 고대 중국어 개음 *-r-을 가지는 한자가 전기 고대 한국어에서 모음 뒤에 r [ㄹ]을 가지는 (즉, *CVr(V) 꼴) 발음의 표기에 사용될 수 있었다는 점 등은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연구에서는 고대 한국어 지명 표기의 '매(買)'를 *mɛ [메]로 읽어 일본·류큐 조어 *meNtu [멘두]와 비교했습니다만, 이 새로운 해석에서 '매(買)'는 *mɛr [멜]이고 현대 한국어 '물'의 직접적인 조상이 됩니다.


물론 '고추가'와 '갈문왕'이 실제로 동일한 단어의 표기가 아니라면 이러한 결론들은 유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이론은 오로지 당연하지 않은 것을 전제하는 방법으로밖에 얻어질 수 없으며, '고추가 = 갈문왕' 체계의 해석이 효과적으로 반박되지 않는 한 이 가설은 고대 한국어에 대해 많은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는 유력한 체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체계는 앞으로 아주 많은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사실 '고추가 = 갈문왕' 체계에 따라 논리를 계속 전개했을 때 고대 한국어에 몇 개의 모음이 있었는지까지도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저는 서기 500년 전후로 고대 한국어의 모음 체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이때 [ㅔ] 발음이 [ㅣ]와 [ㅡ]로 변화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편의상 [ㅣ]로 변화한 [ㅔ]를 *e, [ㅡ]로 변화한 [ㅔ]를 *ɛ로 표기해서 구분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전기 고대 한국어에서 동일한 발음이었는지 아니면 서기 500년의 모음 추이에 의해 분화한 것인지 확실히는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당분간 이 체계를 통해서 고대 한국어의 연구를 진행해 나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