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 중국어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를 가지고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 시대 이전, 고조선과 삼한에서 쓰였던 언어에 대해 알 수 있다. 삼국지와 후한서 동이전에는 진한(辰韓) 사람들이 중국 진(秦)나라 출신의 망명자들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에 관해 삼국지에서는


今有名之爲秦韓者

"지금도 그 나라 이름을 일컬어 진한(秦韓)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는 부연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물론 진한 사람들이 실제로 진나라에서 건너왔을 리는 없고, 역사언어학을 통해 이러한 인식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데, 한나라 시대의 후기 고대 중국어에서 '진(辰)'의 발음은 *dʑɨr [즐], '진(秦)'의 발음은 *dzir [질]이어서, 그 모음이 *ɨ [ㅡ]와 *i [ㅣ]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진한 사람들이 중국어식 *ɨ [ㅡ]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i [ㅣ]로 발음을 하니까, 그것을 듣는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이 '진(辰)'이 아니라 '진(秦)'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마한 소국명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한의 54개 소국 중에는 '치리국국(致利鞠國)'이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의 나라가 있는데, 고대 한국어 고유어로 된 국명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치리국(致利鞠)'은 삼한의 전신으로 전해지는 '진국(辰國)', 후기 고대 중국어 *dʑɨr kˤwək [즐궉]의 고대 한국어식 발음일 개연성이 높다. 말하자면 한국 사람이 한국어식 발음으로 '코리아'라고 말하는 것을 영어 화자가 듣고 Koh-ree-ah라고 받아적은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치리국(致利鞠)'의 '치(致)'의 모음은 *i [ㅣ]이므로, 이를 통해서도 고대 한국어 화자들은 '진(辰)'을 원어 발음인 *dʑɨr [즐]로 발음하지 못하고 [질]에 가깝게 발음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런데 진국 사람들은 왜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는 [ㅡ] 모음이 들어간 '진(辰)'이라는 글자로 자기 나라 이름을 붙였을까?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진국 사람들은 '진(辰)'에 [ㅡ]가 들어가는 줄 몰랐기 때문이다. [ㅡ] 발음이 존재하지 않는 전기 고대 한국어를 사용한 진국 사람들에게 '진(辰)'은 어디까지나 [즐]이 아니라 [질]이라는 발음을 가진 글자였고, 따라서 [질]이라는 발음의 고대 한국어를 나타내는 데 '진(辰)'을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한자 이름을 쓰면서도 그 한자의 발음이 한반도에 들어온 당나라 시대의 중국어 원어 발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辰)'이라는 한자가 선택된 이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천간 중 하나의 이름인 '진(辰)'은 십간십이지를 이용해 날짜를 나타낸 당시의 생활상에서는 매우 기초적인 한자였고, 따라서 비교적 한자에 대한 지식이 한정되어 있던 한반도 남부의 진국 사람들도 '진(辰)'이라는 글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범위의 한자 안에서 최대한 자국의 국명의 발음을 가깝게 나타낼 수 있는 글자를 선택했다.


(2)


전기 고대 한국어 화자들이 *ɨ [ㅡ]를 발음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활용해서 어떻게 연구를 더 진전시킬 수 있을까?


고조선의 마지막 국왕의 이름은 '우거(右渠)'이다. 후기 고대 중국어로 읽으면 *ɦwɨʔ ga가 되는데, 여기서 '우(右)' *ɦwɨʔ는 말하자면 [우+으]의 발음이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전기 고대 한국어에는 *ɨ [ㅡ] 발음이 존재하지 않았고, 고대 중국어의 *ɨ [ㅡ] 모음이 들어가는 한자음을 전기 고대 한국어 화자들은 *i [ㅣ]로 바꿔서 이해했다. 따라서 '우거(右渠)'라는 표기가 나타내는 고대 한국어 발음은 *wika [위가]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동천왕의 이름은 '우위거(優位居)'였는데, 이 '위거(位居)'는 후기 고대 중국어로 *ɦwi ka이므로 역시 *wika [위가]라는 고대 한국어 발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 두 왕조에 이름이 겹치는 왕이 존재하는 상황은 쉽게 상상할 수 있으며, 실제로 우거왕과 동천왕의 이름은 같은 고대 한국어 단어였을 개연성이 높다.


일본 오사카에는 '이카이노(猪飼野)'라는 지역이 있다. 오늘날은 츠루하시(鶴橋), 모모다니(桃谷)로 더 잘 알려진 이 지역은 코리아 타운으로 유명한데, 우연의 일치로 고대에도 백제인들이 모여 살았던 지역이다. 이카이노를 흐르는 강은 고대에는 '백제 강(百濟川)'으로 불렸고, 문헌상 일본 최초의 다리로 전해지는 이카이츠 다리(猪甘津橋)가 백제 강 위에 건설되었다. 그런데 일본서기에 전해지는 猪甘이라는 표기는 사실 돼지를 키운다는 뜻의 '이카이(猪飼, 고대 일본어 wikapî)'와는 일치하지 않고, 고대 일본어 wika에 해당한다. 이것도 아마 우거왕, 동천왕의 이름과 같은 단어인 고대 한국어 *wika [위가]가 그대로 전해진 지명이었다가 훗날 일본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wikapî로 와전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고대 한국어 *wika [위가]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의미를 모른다.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