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설치한 웅진도독부 7주 52현은 역사 교과서에서는 당나라가 백제 땅을 직접 통치하려고 시도했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실패해 물러났다는 정도로 간략하게 설명하지만, 그 역사언어학적 가치는 엄청나게 크다.

일반적으로 고대 한국어의 한자 표기는 수백 년에 걸쳐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다양한 한자음 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떤 발음을 나타내는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국어 자체의 발음이 변화하더라도 과거의 발음대로 굳어진 표기를 계속 쓰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웅진도독부 7주 52현의 명칭은 중세 중국어의 발음이 가장 잘 연구된 시기인 7세기의 중국인이 중국 본토에서 직접 건너와 고대 한국어 발음을 듣고 자신들에게 편리한 대로 한자로 받아적은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한자의 발음이 비교적 명확하다.

예컨대 백제에서 사용한 지명 표기는 당시의 중국어에 존재하지 않았던 발음인 음절말 *r을 구분해서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으나, 웅진도독부의 명칭에서는 그저 중국인들의 귀에 들리는 대로 *n과 동일하게 -n으로 표기해 버린 것이다. 굴나(屈奈)를 군나(軍那)로 고친 것이 그 예이다. 또한 구지(仇知)를 구지(久遟), 지류(知留)를 지류(至留)로 바꾸는 등 *e > *i의 변화나 *t (ㄷ) 발음이 *tɕ (ㅈ)로 변화한 사실도 성실하게 반영하였다 (知는 tr-, 至는 tsy-). 이러한 발음 변화는 신라 경덕왕의 지명 개칭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知六縣 → 地育縣). 한편, '두(豆, d-)'를 '순(淳, dzy-)'으로 고친 데서는 두 가지 유형이 모두 나타난다. 다만 '두(豆)'를 뒤따르는 *k와 합쳐 '죽(竹, tr-)'으로 고친 경우도 있다.

이런 관찰을 다른 지명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예컨대 사호살(沙好薩)은 산호(珊瑚)로 개칭되었는데 이 사실로부터 백제식 표기 사호살(沙好薩)의 '사(沙)'라는 한자가 *sar의 발음을 나타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se > *si로 발음된 것으로 보이는 지명도 있다). 지마마지(只馬馬知)를 지모(支牟)로, 또 파로미(巴老彌)를 포현(布賢)으로 개칭한 것은 고대 한국어의 음운사에 있어서 *a > *o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열이(悅已)를 윤성(尹城)으로 고쳤는데 '열(悅)'의 한자음에 원순성이 반영되어 있던 것으로 보이고 이는 합구 한자음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