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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 중기, 아테네 제국의 함대가 당시 펠로폰네소스 동맹 소속이자 스파르타의 우방국이던 멜로스 섬을 공격하고 자신들에게 굴종하겠다는 멜로스의 모든 요구를 뿌리치고 결국 무력으로 멜로스를 짖밟고 멸망시킨 사건이 있음.


그 공격 이전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멜로스의 협상단이 아테네의 사절과 만나 서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평화를 위해 멜로스는 보편적 정의와 가치를 외쳤으나 아테네 또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그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결국 반년간의 포위끝에 멜로스를 멸망시킴.


이 대화는 일명 "멜로스의 대화"라고 불리며 현대에도 국제정치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화임.


하지만 이걸 "국제 사회와 정치는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라고 이해하는건 수박 겉핥기와 같음. 왜냐면 우린 이 대화가 벌어진 시대가 한창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였고 이후 아테네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결과"를 봐야 함.


많은 이들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결과에 대해선 잘 모름. 그럴수밖에 없는게 중립이던 테베와 마케도니아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폴리스가 패배자나 다름없는 전투였기 때문임. 하지만 일단 공식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자는 "아테네"였음.


멜로스 포위전 이전 아테네는 지지부진한 소모전끝에 일시적으로 스파르타와 휴전을 맺고 있었음.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아테네가 스파르타를 이길뻔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육군이 개털리고 도주하면서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의 체면만 구기게 됨.


이 상황에서 아테네는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돌려 그 모든 분노를 적에게 향하게 하면서 동시에 중립을 표방하면서 스파르타에게 항구를 개항해주던 멜로스를 치기로 마음먹게 됨. 이게 "멜로스의 대화"와 포위전이 벌어지게 된 배경임.


여기까지만 본다면 내가 맨 처음 말한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가 맞을지도 모름. 하지만 중요한건 그 다음임. 왜냐면 이 멜로스 포위전 이후로 아테네의 처절한 몰락이 시작하거든.


멜로스 포위전 이후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내에서도 인망을 잃게 됨. 그렇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한 멜로스를 저렇게 죽였는데 다음은 우리도? 라는 의심이 서서히 동맹내에서 커지는거지. 거기다가 아테네가 '아테네 제국'으로서 지역 패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소위 말해 망나니질을 하며 동맹내의 반감이 커진것도 있었음.


이후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의 다음 타겟은 시칠리아의 스파르타계 폴리스였던 '시라쿠사'였음. 본래 시칠리아 역시 멜로스처럼 중립을 표방했지만 도리아인이 세워 스파르타와 친했던 멜로스처럼 이 시칠리아도 스파르타와 펠로폰네노스 동맹에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자 동맹은 2차례에 걸쳐 대규 원정을 준비함. 그 결과는?



델로스 동맹과 아테네의 처절한 패배였음.


원정대는 아테네의 직속 함선 160척을 포함한 총 216척의 함선을 잃었고 도합 4만에 달하는 인력을 모두 상실, 그외에 원정군에 투입되었던 비용인 4천 5백 탈란트의 손실을 입게됨. 거기다 대부분의 유능한 지휘관이 원정 도중 사망하고 전사하기도 했고 그 유명한 알키비아데스도 이때 스파르타로 전향하게 됨.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전쟁 후반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에서 아테네가 160척의 군함을 잃고 사실상 전멸하게 되면서 시작됨. 아테네는 스파르타가 테베를 견제하기 위한 방벽으로 쓰기 위해 살아남았지만 더이상 제국으로서 패권과 그동안 이륙한 모든 것을 잃고 민주정마저 스파르타의 압박으로 과두정으로 바뀌게 됨. 더이상 아테네를 위해 울어줄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음.


그런데 정작 아테네를 구원해주고 다시 민주정으로 복권하도록 만들어준 것은 아테네가 자랑하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함대도, 군대도 아닌 '아테네가 가진 이상(민주주의)'에 반한 델로스와 같은 국가들이 아테네를 위해 변호해줬고 지원해줬기 때문임.


결국 이들에 의해 아테네는 멜로스와 같이 멸망하지 않고 너덜너덜하게 로마시대까지 살아남게 됨.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내막을 보면 알겠지만 "멜로스의 대화"는 절대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로 돌아간다"를 의미하는게 아님.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건 맞지만 결국엔 "정의, 도덕, 문화와 같은 실체없는 이상들에 의해 국제사회가 유지될수 있는거임". 즉 힘만 세다고 해서 모든게 해결이 되고 모든게 힘에 맞춰 움직이는게 아님.


게임 이론의 '팃포탯'에서 가장 생존이 높은 전략은 "상대를 협력하고 신뢰하되 배반은 적극적인 보복"인 것도 이 멜로스의 대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봄.



p.s 좀 두서없이 쓰긴 했는데 내가 멜로스의 대화를 인용하는 사람중에 좀 이상한 사람을 많이 봐서 이렇게나마 반박글을 써봄. 고로시 같다면 미안.


p.s2 개인적으론 멜로스의 대화를 현대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입한다면 왜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다"가 왜 틀린 말인지 이해가 될거임.


p.s3 모든 내용은 나무위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멜로스의 대화' 항목 및 위키피디아의 'Peloponnesian War', 'Battle of Aegospotami' 항목을 참고하고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