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였던 이승재라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은퇴해서 명예교수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람은 '미륵사지 목간에서 찾은 고대어 수사'라는 논문을 썼는데 (이승재 2011), 이 연구 내용을 후에 책으로 내기도 했고, 여기저기에 보도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문제는 이 논문의 내용이 굉장히 엉터리라는 것이다.


목간 글자의 새로운 해독을 시도한 것은 인정할 만한 성과라고 하겠으나, 그 외의 부분은 모두 수준 미달이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고대 동아시아 역사언어학을 다루고자 한다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상식, 그러니까 예를 들어 중세 중국어 ny-의 부분적 비음성 상실(partial denasalization)가 일어난 시기 같은 것들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실망스러운 부분이라기보다는 황당함에 가깝다. 이승재 논문의 해당 부분 (26–27쪽)을 읽어보면, 이 사람은 Karlgren의 재구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한 탓에 Karlgren의 "ńź-"가 원래 ny-였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ńź-"가 ny-라는 것은 리룽(李荣)에 의해 1950년대에 제안되어 1980년대에는 이미 정설이 되었다.


"Initial ri [日], LMC r, was without doubt a palatal nasal ɲ in EMC." (Pulleyblank 1984: 171)

"Karlgren's reconstruction ńź- for MC ny- [...] For Early Middle Chinese, however, it is widely agreed that it was simply a palatal nasal." (Baxter 1992: 55)


이런 사실을 한국 내의 연구자들이 몰랐을까? 그럴 리가 없다. 고대 한국어 지명 자료 연구에서 박병채, 유창균, 최남희, 임병준 등의 저자들이 1960년대부터 이미 40년 넘게 ny-를 고대 한국어 /n/의 발음에 대응시키고 있었다. 즉 이승재 (2011)에서 日, 二 등의 한자를 고대 한국어 /n/에 대응시키는 것에 대해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면서 그것을 정당화하고자 Karlgren의 연구와 일본어의 한자음을 엉터리로 인용해 가며 반 쪽에 걸쳐 설명을 늘어놓은 것은 이 사람이 해외는커녕 국내의 기존 연구조차 읽어본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2011년의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저 사실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최남희의 '고구려어 연구' (2005)를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승재가 기존 연구를 읽지 않았더라도 어쨌든 日, 二를 /n/에 대응시켜야 한다는 올바른 결론에 도달했으니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는 어떤 기존 문헌을 읽어야 하는지 등을 판별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기본적인 자질이다. 중세 중국어를 증거로 사용하면서 중세 중국어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음은 물론 이 연구의 직접적인 주제인 고대 한국어에 대해서도 기존 연구 내용을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학문적 불성실이고, 그것을 걸러내지 못한 학술지의 동료 평가 과정 역시 한심스럽다. 이런 논문은 당연하게도 게재 거부를 당했어야 했다.


아무튼 이것은 가장 알기 쉬운 한 예일 뿐이고 이승재의 논문에는 그 외에도 오류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별도의 글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내가 접한 다른 (비전공자인 나와는 달리 언어학에 박사 학위가 있는) 연구자들의 평가로도 이 논문이 엉터리라는 이야기를 꽤 들었기 때문에*,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접한 대강의 내용만 알고 있었지 논문 자체를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고대 한국어에 대해 일반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들을 쓰면서 아무래도 자세한 내용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살펴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설마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이런 수준의 연구를 내놓았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참하다.


* 다행스럽게도 한국에는 훌륭한 언어학 연구자들도 많다. 고대 한국어 연구의 문제는 그 훌륭한 연구자들이 고대 한국어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받은 인상에 따르면, 고대 한국어 연구자들의 수준은 고대 한국어를 다루지 않는 연구자들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낮은 것 같다. 한국 내 한국어학계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과학 쪽의 상황과 비슷하다면 아마 그것은 고대 한국어 연구가 '난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멀쩡한 학자들은 주로 적절한 기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실체가 뚜렷한 연구를 하고, 덜 멀쩡한 사람들이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난제를 해결하겠답시고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