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60호 무령왕릉 출토 은팔찌

(실제 은팔찌는 고리 모양이고 위의 이미지는 전개도임)


경자년 이월 다리작대부인 분이백삽주이(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卅主耳)


라는 명문이 새겨져있는데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대충


경자년이월 = 서기 520년 음력 2월

다리작대부인 = 다리(多利)가 대부인(大夫人)을 위해 만들었다 (?)

분이백삽주이 = 정확히 230주(主)만큼의 분량 (?)


여기서 대부인은 물론 무령왕의 왕비를 말하는 것인데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본기'의 내용 중에 고구려 왕비를 정부인(正夫人)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발음이 makari-orikuku로 전해지는데 makari는 "크다"를 뜻하고 orikuku는 "왕비"를 뜻하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에서는 대부인(大夫人)이라고도 표기할 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다음은 230주(主)인데 주(主)라는 글자가 무게 단위인 수(銖)와 발음이 거의 같기 때문에

사용된 은의 분량이 230수(銖)임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이다



여기서 잠깐 중국어학 이야기를 하자면

주(主) tsyuX = /tɕɨoˀ/와 수(銖) dzyu = /dʑɨo/는

전기 중세 중국어(Early Middle Chinese) 기준으로 성조와 청탁을 제외하면 발음이 완전히 동일한데

따라서 백제 한자음에서는 둘 다 *tso [조]의 발음으로 받아들였을 것이 예상된다


오늘날의 한국한자음에 차이가 있는 것은

tsy- /tɕ/가 경구개음이 권설음에 통합될 때 평범하게 /tʂ/로 합류한 반면

dzy- /dʑ/는 후기 중세 중국어 (당나라 시기)에서 /tʂɦ/가 아니라 /ʂɦ/로 변화했기 때문임

즉 지금의 발음 차이는 당나라 때 발생하게 된 것이므로 무령왕 때는 훨씬 비슷했다



아무튼 팔찌 얘기로 돌아와서

수(銖)라는 무게 단위는 중국의 전통적인 도량형 체계에서

1약(龠)의 부피에 들어가는 기장 낟알 1200개의 무게를 12수(銖)로 정의한 무게의 최소 단위이고

24수를 1냥(兩), 16냥을 1근(斤), 30근을 1균(鈞), 4균을 1석(石)이라고 하는데


다시 말해 1수(銖)는 384분의 1근이라는 것임


무령왕릉 출토 은팔찌는 166그램 하나, 167그램 하나의 한 쌍이므로 166.5그램으로 간주하면

당시 백제의 1근은 278그램, 1냥은 17.4그램, 1수(銖)는 0.724그램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같은 시대 중국의 단위보다 25% 정도 더 무거운 값임 (중국은 1냥 약 14그램, 1근 220그램 내외)

그런데



이 무게 단위는 일본에서 출토된 야요이 시대의 분동과 일치함


야요이 분동은 최소 8.7그램부터 최대 280.0그램까지 1:2:4:8:16:32의 비율로 구성된 세트인데

가장 작은 8.7그램의 분동은 무령왕릉 은팔찌 역산치로 12수 = 8.7그램인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가장 큰 280그램의 분동 역시 무령왕릉 은팔찌 역산치 1근 = 278그램과 사실상 완전히 들어맞음


위에 언급한 중국 단위체계에서 12수를 기준으로 나머지 무게 단위를 정의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가장 작은 분동이 12수, 가장 큰 분동이 1근에 해당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동일한 단위계를 사용했다고 볼수밖에 없음


다만 야요이 분동의 기준 단위 (8.67그램)를

일본 언론의 관련 보도 (2020년도)에서 "대륙에서 발견되지 않는 일본 고유의 단위계"라고 표현하던데

일본 학계에서는 야요이 분동과 무령왕릉 은팔찌를 연관짓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시대 차이 (야요이 분동이 500년 정도 더 빠름) 때문에 무시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서부터는 내 뇌피셜인데


창원 다호리 유적일본 후쿠오카 스쿠 유적군에서는 이것과 별개의 단위계가 등장하는데

창원 다호리 유적의 경우 약 11그램이 기준 단위라고 하고

후쿠오카 스쿠 유적군 (서기전 2세기경)은 5.85그램부터 337.19그램까지가 나왔는데


스쿠 유적군에 나온 것 중 보존상태가 좋아서 무게 측정값을 신뢰할 수 있는 5개는

다호리 기준단위 11그램의 3배짜리가 2개, 6배짜리가 1개, 20배짜리30배짜리가 각각 1개씩이라고 함


일본 언론 보도에서는 이 발견의 의의를 20배, 30배짜리에 초점을 맞춰서

십진법 도량형체계가 야요이 중기의 일본에서 쓰이고 있었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는데

나는 이게 완전히 엉뚱한 해석이라고 생각함


왜냐하면 5.85그램은 야요이 분동 단위 (8.67그램)의 거의 정확히 3분의 2이기 때문임

이것은 도량형 통일 이후의 중국에서 1근 = 16냥인 것과는 달리

그 전에는 1근 = 24냥인 제도가 존재해서 그 영향이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부까지 퍼져나갔음을 의미함


1냥 = 24수니까 1근 = 24냥인게 사실 더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게 원형이었다고 나는 추측하는 것임

이렇게 보면 창원/후쿠오카 체계의 1근의 값은 사실 동일하고, 그것을 나누는 방법만 달랐다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보면 스쿠 유적군에 왜 3배짜리와 6배짜리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신 단위계의 1수 무게가 구 단위계의 1.5배이기 때문에 3의 배수 단위를 이용하면 환산을 할수 있기 때문임


3배짜리 = 구 단위계 6수(銖) = 신 단위계 4수(銖)

6배짜리 = 구 단위계 12수(銖) = 신 단위계 8수(銖)


즉 스쿠 유적군에서 나온 유물은

24수 = 1냥 / 24냥 = 1근 / 1근 = 약 280그램이었던 창원/후쿠오카 체계에서

24수 = 1냥 / 16냥 = 1근 / 1근 = 약 280그램으로 통일 중국 도량형에 가까운 야요이 분동/무령왕릉 체계로

변화하는 전환기를 보여주는 유물이고


서기전 2세기경으로 편년되는 시기 역시 진나라의 중국 통일 직후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과 합치됨

이를 통해 우리는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무게 단위의 변화사를 알 수 있다



구 단위계 (전국 시대) - 후쿠오카 스쿠 유적군 단위계에서 역산


1수 = 0.488그램 (신 단위계의 약 67.4%)

1냥 = 24수 = 11.7그램

1근 = 24냥 = 281그램


신 단위계 (진나라 통일 이후) - 무령왕릉 은팔찌에서 역산


1수 = 0.724그램 (구 단위계의 약 148%)

1냥 = 24수 = 17.4그램

1근 = 16냥 = 278그램


보다시피 같은 1근 무게를 유지하면서 1근 16냥제 → 1근 24냥제로 바뀐 것임

그에 따라 1냥이나 1수에 해당하는 무게에 1.5배의 차이가 발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