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중세시대의 결혼과 여성관이 잘 드러나있다. 그것은 주로 상인의 이야기에서 많이 언급되며 상인의 생각과 늙은 기사 재뉴어리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중세의 사랑은 종교적인 색채를 많이 띌 수 밖에 없었다. 고대 로마와는 다르게 교회는 사적 부분이었던 결혼에까지 그 통제를 뻗어나갔기 때문이었다. 결혼의 경우 고대 로마에서의 준칙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불가해소성(이혼이 불가함.)과 그것으로 인해 생겨난 일부일처제에서 차이를 보였다. 또한 고대 로마와는 달리 동성애가 상당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도시가 아닌 농촌에선 그런 종교적인 면이 도시보단 약했다.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늙은 목수가 동등한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는 대목이다. 


“이 늙은이는 배운 게 없어서, 남자는 자기와 엇비슷한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읽은 적이 없었소. 남자들은 나이와 사회적 신분이 비슷한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 법인데 말이오. 그런 것도 모르고 결혼했던 것이오.”(캔터베리 이야기, p.92)


 일부일처제는 중세시대 교회가 결혼에 관여하면서 널리 퍼진 원칙 중 하나였다. 신랑과 신부는 되도록 동등한 나이여야 했으며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이 목수의 예와 같이 도시에서 떨어져있는 농촌에까지 모두 퍼지진 않았으며 동족혼, 한국으로 치면 동성동본 결혼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농촌에서 횡행했다. 그리고 이 목수의 경우처럼 아내와의 나이 차가 클 경우 남편은 아내에게 엄격한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겸했기 때문에 남편이라 해서 의심을 한다한들 아버지라 하면 됐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젊고 발랄한 것과는 달리 자기는 늙었기 때문에 그녀가 서방질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내를 집 안에 가두어놓고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소."(같은 책, p.92)


 이에 더해 이 늙은 목수의 행위는 샤리바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샤리바리는 일종의 청년 문화이며 다양한 축제를 조직하고 결혼 질서를 위반한 자에게 집단 제재를 가하는 청년 문화를 일컫는다. 이런 샤리바리의 중심이 되는 청년회는 아내에게 매를 맞는 남편이나 나이 차가 심한 부부가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했다. 이 목수의 경우엔 매를 맞지는 않으나 매를 맞는다라는 것이 남편이 아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샤리바리라는 것 자체는 소설 속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가부장적인 풍조가 역전되는 것이 그만큼 사회에서 수치로 여긴다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고 따라서 이 목수는 그런 제재에서 오는 수치를 피하고자 그렇게 행동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래서 아내인 엘리슨에게 보다 강경한 태도, 즉 아버지와 같이 엄격한 태도를 집 안에 '가두는 것' 즉, 집안일 역할에 충실히 하게끔 한 것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 뿐만이 아니라 상인의 이야기에서도 이 점을 잘 보여주는 대사가 등장한다. 


“사실 아내보다 더 고분고분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남편이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를 막론하고, 아내처럼 충실하고 근면하게 보살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내는 행복할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남편을 버리지 않으며, 남편이 죽을 때까지 병으로 누워 있는다 해도 그를 사랑하고 섬기는 데 지치지 않습니다.”(같은 책, pp.262~263)


 이 말에는 결혼한 후 아내가 남편과의 혼인성사를 맺었기 때문에 남편이 어떻든 간에 그 성사를 파기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을 보고 중세의 결혼제도가 남성에게만 유리한 가부장적인 결혼제도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남편도 결혼을 함부로 파기시킬 수 없었고 남편 역시 아내에게 막대한 사랑을 주어야 했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면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p.265)라는 대목이 그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의 왕 헨리 8세가 그 예이다. 헨리 8세는 자신의 아내 앤 불린과 이혼하고 캐서린과 결혼하려 했으나 카톨릭이 허용하지 않아 성공회라는 왕 중심의 카톨릭을 만들었다. 종교까지 바꿔야 할만큼 카톨릭의 규율은 엄격했던 것이다. 


 이런 규율적인 면을 따라 상인의 이야기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관해 나온다. 거기서 상인은 세네카라는 성인의 말을 들어 가정에서만큼은 아내에게 주도권을 건네고 말에 순종하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로마 제정 전기 시기 정치인이자, 문학가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ka)


 “세네카가 말했듯이, 친절하고 성실한 아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카토(고대 로마 공화정 시기 정치가인 대 카토(Cato The Elder))의 충고대로 아내의 말을 참고 들으십시오. 아내에게 주도권을 건네주고 아내의 말을 참고 따르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게 마련입니다. 아내는 가정의 주인입니다.”(같은 책, p.265)


 이 말에서 보아 집안에서의 아내의 역할이 상당히 중시된 것을 알 수 있으며 다만 남편의 역할이 더 중시되었기에 여전히 남편이 아내보다 위였음은 변함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또, 중세 시대에는 아내의 말에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상인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데


 “내가 보기에, 아내의 충고대로 따르는 남자는 절대로 실수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 아내들은 슬기롭고 착하기 때문에 아내의 말을 따르는 남편은 출세가도를 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현명한 남자의 예를 따르고자 한다면 여자들이 충고하는 대로 따르십시오. 학자들이 말하듯이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어머니 리브가의 슬기로운 지혜를 배워 목에 염소가죽을 감았고, 그래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같은 책, p.265)


 이런 여성이 지혜롭다는 관념에 대해 이야기 속 상인은 성경, 즉 기독교 경전에 나온 야곱의 아내 리브가의 예를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과거 게르만족 시절의 관습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키투스가 저술한 역사서인 게르마니아에서 게르만족은 여성들이 성스러움과 예언의 재능을 지녔다고 여긴다는 서술이 등장한다. 따라서 아내가 지혜롭다는 관념은 기독교의 영향과 과거 게르만족의 관습이었다는 점도 작용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작 영국에 정착한 민족은 '앵글로 색슨'이라 하여, 민족이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앵글로 색슨도 한 분파라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중세 시대의 혼례는 현대에 비하면 상당히 종교적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상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늙은 기사 재뉴어리의 혼례에서 드러난다. 재뉴어리와 그의 아내 메이는 성당에서 혼례 성사와 결혼 미사라는 서약과 예배를 거쳐 정식으로 부부가 되게 되는데 이는 작품이 쓰여진 12~13세기 즈음 교회법이 강화되어 교회식 결혼을 신도들에게 요구한 배경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늙은 기사 재뉴어리의 경우처럼 적령기를 넘겨서 결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2세기 말 영국의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William Marshall)이 44세가 되어서야 아일랜드와 프랑스에 막대한 영지를 갖고 있던 클레어 백작의 외동딸인 17세 엘리자베스와 결혼한 것이 그 예에 속한다.


윌리엄 마셜의 무덤에 있는 마셜의 관


참고문헌


제프리 초서 저, 캔터베리 이야기, 송병선 옮김, 현대지성(2017)

유희수 저, 낯선 중세, 현대지성(2018)


삽화 출처 : 영문 위키백과(윌리엄 마셜), 위키백과(세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