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프레디 쿠베르탱 남작이 올림픽을 만들면서 같이 넣을 것을 고려한 종목.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부터 1948년 런던 올림픽까지  시행되었으며, 미술 대회의 규칙은 다양했지만, 규칙의 핵심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출품된 모든 작품은 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아야 했고, 독창적이어야 했다(즉, 대회 전에 출판되지 않음). 올림픽의 운동 경기와 마찬가지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각 대회에서 모든 메달이 수여된 것은 아니지만, 가장 높은 순위의 예술가들에게 수여되었다. 사실, 몇몇 경우, 메달은 전혀 수여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이 여러 작품을 입력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때때로 최대 수가 설정되었다. 이것은 예술가가 한 번의 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한때, 춤, 영화, 사진 또는 연극을 포함하는 제안이 있었지만, 이러한 예술 형식 중 어느 것도 메달 행사로 올림픽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브레이크댄싱은 2024년 파리 올림픽에 포함될 예정이다.


총 다섯 가지 종목이 있었다;

건축(1928년 대회부터 도입, 혼합 건축은 전부터 있었음)

문학(1924년,1932년엔 단일 종목, 1928년에 극, 서사, 시 부문 신설, 1936년에 극 부분 빠짐

음악(1936년 전까지는 단일이었다가 이후 솔로/합창, 오케스트라, 기악으로 나뉘다가 1948년에는 합창/오케스트라, 보컬, 기악/챔버로 나뉘어짐)

화술(그림) (1928년부터, 원래 단일 부문이 그림, 그래픽 아트, 그림의 세 가지 하위 범주로 나누어짐. 1932년에는 소묘화, 판화, 수채화 부문, 1936년 판화 부문 사라지고, 그래픽 아트와 상업 그래픽 아트로 대체. 1948년에는, 응용 예술과 공예, 조각/에칭, 오일/수채색 부문으로 나누어짐)

조각(조각 부문은 1928년까지 단 하나의 카테고리만 있었는데, 두 개의 별도 부문을 만듬; 하나는 동상, 다른 하나는 부조와 메달이었다. 1936년에, 부조와 메달을 따로따로 분리했다.)

이처럼 예술 쪽은 그 느낌이 의도는 좋았을지라도 점차 전문성을 추구해나가는 예술계와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는 올림픽과 충돌이 불가피했고 1949년 평의회에서 이 문제가 붉어지고 1952년에는 예술 전시회만 열렸다. 그리고 1954년에 완전히 종목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렇다 보니 비유럽권 국가들이 수상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늦게 나왔으며, 최종적으로 단 4나라만 수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올림픽 메달 기록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미국:최다 수상 국가

금: 리 블레어(유화/수채화: '로데오'), 조셉 골린킨(판화: '가위 다리'), 마헌리 영(조각/조각상: '녹다운')

은: 존 러셀 포프(건축/예술 부문: 페인 휘트니 체육관 디자인), 루스 밀러(소묘화:'몸부림'), 퍼시 크로스비(수채화/유화: '잭나이프'), 프레데릭 맥모니즈(메달: 링버그 메달)

캐나다

동: 로버트 테이트 맥켄지(메달: '선수들의 방패')


1936년 베를린

일본 제국

동: 후지타 류지(소묘:'아이스하키'), 스즈키 스자쿠(수채화:'일본의 고전 경마')


1948년 런던


남아프리카 연방

은: 에른스트 반 히르덴(시: '여섯 시들') 

동: 월터 바티스(에칭/판화: '해변 스포츠')


캐나다

은: 존 웨인츠위그(기악:'솔로 플루트와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