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높임말 체계의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하소서체.

요즘은 정통 사극을 보는 게 아니라면 잘 접해보기 힘든 옛스러운 말투 중 하나지만,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현대의 하십시오체처럼 일상적으로 쓰였던 근본 있는 문체이다.


하소서체는 적어도 통일신라 초기에 해당하는 7세기 무렵부터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무왕(재위 661~681) 때 살았던 광덕이라는 승려가 지은 향가 〈원왕생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無量壽佛前乃 惱叱古音多可支白遣賜立

* 無量壽佛 前에 닛곰다가 ᄉᆞᆲ고시셔

무량수불 앞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願往生願往生 慕人有如白遣賜立

* 願往生 願往生 그릴 사ᄅᆞᆷ 잇다 ᄉᆞᆲ고시셔

"원왕생, 원왕생" 하며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소서. 


보다시피 문장의 끝부분에 '~賜立(사립)'이 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賜는 전통적으로 높임의 의미를 가지는 '샤' 혹은 '시'를 음차하기 위해 쓰여온 글자이며

立의 훈은 신라 중기의 인명 사부지(徙夫智)와 입종(立宗)의 대응을 통해 *sye-로 문증되므로

실제 발음은 현대 및 중세의 어형과는 약간 다른 '~샤셔' 혹은 '~시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하단의 고려시대 차자표기 기록을 보아하니 당시에는 앞에 붙은 遣只(곡)까지 한 세트였던 듯하다.


今日部頓部叱懺悔 十方叱佛體閼遣只賜立

*오ᄂᆞᆯ 주비 ᄇᆞᄅᆞᄇᆞᆺ 懺悔 十方ㅅ 부텨 알곡시셔

오늘 무리 모두가 참회함을 시방의 부처님은 알아주소서.

《균여전(1075)》 中 〈참회업장가(~973)〉


大王下 當只 知古只賜立 我隱 今爲隱 衰老爲良 身隱 重疾良中...

*大王하 반ᄃᆞ기 곡시셔 나ᄂᆞᆫ 엳ᄃᆞᆫ 衰老ᄒᆞ야 모ᄆᆞᆫ 重疾아ᄒᆡ...

대왕이여, 반드시 알아주소서. 나는 지금 노쇠하여 몸은 중병에...

《대방광불화엄경소(12세기)》 35권 10:17


汝隱 今爲隱 有斗奴隱 所乙 悉良 當只 我衣中 與爲古只賜立

*너는 엳ᄃᆞᆫ 두논 바ᄅᆞᆯ 다 반ᄃᆞ기 나의긔 ᄒᆞ곡시셔

그대는 지금 있는 바를 다 반드시 나에게 주소서.

《대방광불화엄경소(12세기)》 35권 10:07~08


한편 북송의 사신 손목(孫穆)은 1103년에 고려를 방문한 뒤 계림유사》라는 기행문을 집필했는데,

여기서도 당시 고려 언중들이 사용했던 하소서체를 엿볼 수 있다.

대략 이 시기 즈음부터 첫 음절이 '시' 또는 '샤'에서 '쇼'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이며,

구어체에서는 문어체와 달리 앞서 언급한 遣只(곡)이 이미 생략되어 있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約明日至曰轄載烏受勢. 凡約日至皆烏受勢.

내일 보자고 약속할 때는 할재 오수세(轄載 烏受勢: 하제 오소서)라 한다. 언젠가 보자고 약속할 때는 모두 오수세(烏受勢: 오소서)라 한다.

※ 계림유사에서는 '내일'에 해당하는 고려 어휘를 轄載(할재)라고 수록하고 있다.


延客入曰屋裏坐少時. 語話曰替里受勢. ... 借物皆曰皮離受勢. ... 相別曰羅戲少時

손님을 모실 때[延客入]는 屋裏坐少時(옥리좌소시: 올라주소서)라 한다. 말할 때[語話]는 替里受勢(톄리수세: 들으소서)라 한다.

... 물건을 빌릴 때[借物]는 모두 皮離受勢(피리수세: 빌리소서)라 한다. ... 서로 헤어질 때[相別]는 羅戲少時(라희소시: 여의소서)라 한다. 


이후 조선 초기인 15세기에 한글이 창제됨에 따라 하소서체가 쓰인 자료의 양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월인천강지곡(1447)》, 《석보상절(1446)》, 《월인석보(1459)》 등의 문어체 자료뿐만 아니라

《번역노걸대(~1517)》,  《번역박통사(~1517)》, 〈이응태 묘 출토 언간(1586)〉 등의 구어체 자료에서도

하소서체가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하소서체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世尊ㅅ 일 ᄉᆞᆯᄫᅩ리니, 萬里外ㅅ 일이시나 눈에 보논가 너기ᅀᆞᄫᆞ쇼셔

세존의 일을 사뢰리니, 만 리 밖의 일이시지만 눈에 보는 듯 여기시옵소서. 

《월인천강지곡(1447)》 기2곡


目連이ᄃᆞ려 니ᄅᆞ샤ᄃᆡ 도라가 世尊ᄭᅴ 내 ᄠᅳ들 펴아 ᄉᆞᆯᄫᆞ쇼셔

목련이더러 이르시되, "돌아가 세존께 내 뜻을 펴서 사뢰소서."

《석보상절(1446)》 6권


不知道下處 不曾得望去 大舍休怪 

브리여 겨신 ᄃᆡ 몰라 보ᅀᆞ오라 가디 몯ᄒᆡ야 잇대이다 얼우신하 허믈 마ᄅᆞ쇼셔

묵고 계신 곳을 몰라 뵈러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이여, 탓하지 마소서.

《번역박통사(~1517)》 상권


나ᄂᆞᆫ ᄭᅮ믈 자내 보려 믿고 인뇌이다 몰래 뵈쇼셔

나는 꿈에 자네를 보리라 믿고 있노이다. 몰래 보여주소서. 

〈이응태 묘 출토 언간(1586)〉


이후 근대 국어에서도 하소서체는 여전히 각종 기록에서 빈번하게 쓰였지만,

19세기 이후 등장한 하십시오체에 밀려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고풍적인 문체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