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 수사가 현재 한자어 수사에 점차 밀리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하나(1)부터 아흔아홉(99)까지의 수사는 다들 기본 상식으로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국어에 좀 더 관심이 있는 자라면 현재는 쓰이지 않는 온(100)과 즈믄(1000)도 알고 있을 테고.


이들 수사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신라 향가부터 고려의 석독구결 및 차자표기 자료,

조선의 훈민정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문증되는 확실한 한국어 수사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1,000에 한 자리를 더 추가해본다면 어떨까?


아쉽게도 10,000에 대응되는 고유어 수사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전하는 소수의 기록을 살펴본다면 유력한 후보로 제기되는 어휘가 하나 있기는 한데,

바로 "골"이라는 1음절짜리 단어이다.


국어학에 조예가 있는 이들에게도 이 단어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여지가 존재하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현재 '골'을 언급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까닭이다.

이 글의 제목에서 '고유어'가 아니라 '어쩌면 고유어일지도 모르는 어휘'로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해당 단어가 문증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은 12세기의 자토석독구결 자료 《대방광불화엄경소》 35권이다.

당시의 구결은 여말선초 이후의 순독구결과 달리 실질 형태소를 고유어 훈으로 읽고 어순도 우리식으로 고쳐 읽었는데,

이를 불경 원문을 해석하여 읽는다고 해서 석독(釋讀)구결이라 칭하는 것이다.


  阿僧祇 陀羅尼  眷屬 {爲}[三]
阿僧祇ㅅ 陀羅尼ᄅᆞᆯ ᄡᅥ아곰 眷屬 사ᄆᆞᄂᆞᆯ ᄒᆞ며
백만 아승기의 다라니를 써서 권속 삼은 것을 하며
《대방광불화엄경소(12세기)》 35권


구결은 어디까지나 한문으로 된 원문에 토를 달아 읽기 쉽게 하는 것이기에,

어떤 체언이나 용언을 고유어로 읽으라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 향찰처럼 마지막 음소나 음절만을 첨기해 두었다.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 百(백) 뒤에 隱(은)의 구결 약자인 을 달아놓아 '온'의 받침 ㄴ을 표기한 것도 그 예시이다.


그렇다면 바로 옆에 붙은 '萬'는 무슨 뜻일까?

고대 국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라면 알고 있듯이, 尸(시)는 받침 ㄹ을 표기하기 위한 음차자로 쓰였다.

여타 차자표기 자료에서도 '道尸(길)', '日尸(날)', '蒜尸(마늘)', '十尸(열)' 등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萬(만) 뒤에 받침 ㄹ을 나타내는 尸(시)의 구결자 형태인 ''를 첨기하였다는 것은

곧 당시 10,000을 일컫는 고유어가 /-l/로 끝났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음 첨기만으로 완전한 어형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보다 확실한 자료가 필요했다.


머리를 싸매던 학자들은 끝내 최남선이 1915년 편찬한 《신자전》이라는 책에서 실마리를 발견하였다.

당시에도 잘 쓰이지 않던 옛말이 많이 수록된 해당 서적에서는 '萬 數命十千 골'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萬(만)자는 1,000의 10배에 해당하는 수를 일컫는 글자이며 우리말 훈은 '골'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10,000의 옛 고유어를 '골'이라고 상정한다면 석독구결의 '萬尸'와도 맞아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신자전》은 《대방광불화엄경소》와 편찬 시기가 800여 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두 기록을 서로 연관짓기에는 다소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아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는데, 바로 조선 중기에 간행된 《광주천자문(1575)》의 이본(異本)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본이란 흔히 알려진 도쿄대학 오구라문고 소장본이 아닌 대동급문고본을 지칭하는데,

좀 더 이른 시기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본에서는 萬(만)자의 훈을 '구룸 만'으로 적고 있다.


당시 중세 국어에서 '구룸'은 주로 구름[雲] 또는 구르다[轉]의 명사형으로 쓰였는데,

이들은 전부 숫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므로 당시에도 '구룸[萬]'이 옛말 취급을 받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마치 현대에 이르러서도 '山 뫼 산', '李 오얏 리' 등에서 한자의 훈으로 사어를 존치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골'과 '구룸'은 분명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자음이 어느 정도 일치하므로, 후자가 전자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자료들로 미루어 보아, 10,000에 해당하는 옛 고유어는 '골' 또는 '구룸'이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전하는 자료가 극히 적기 때문에, 조선시대 이후로는 그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