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임진왜란,도요토미의 야욕으로 인해 조선의 국토는 폐허가 되었고 임금이라는 사람은 도망치기에 바빴고,백성들은 살기위해 뛰었지만 추격해오는 왜군들에 죽임당하게 된다.

 

토사(고치현의 옛이름)의 다이묘이자,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가한 무장들 중 한 명인 쵸소카베 모토치카는 경주성을 지키고 있던 진해현감의 손자인 박호인을 포로로 잡아둔다. 그리고 그가 만든 두부를 맛보게된다.

쵸소카베:띠용? 처음먹어보는 건데 맛있네!? 

 

박호인이 만든 두부를 극찬한 쵸소카베는 그를 포함한 30명의 조선인 포로들을 데리고 토사(일본 고치현의 옛지명)로 돌아오게 된다.

 

박호인은 외국인 마을인 도진마치에서 두부를 만들며 지내오다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아들 박원혁(아키즈키 타네노부)를 얻게된다.

 

박호인은 1617년에 조선통신사를 따라서 조국에 돌아왔지만,그의 자손들은 '아키즈키'라는 성씨로 지금까지도 두부를 만들고 있다.

고치현의 두부 포장지

한반도에서 전래되었다는 그림이 나와있다.



후손은 아직도 두부장사 잘 하고있음.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