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테리악은 그렇게 몰락했지만, 이를 개발했던 안티파트로스와 갈레노스 등은 당시 정식 의학 교육을 이수한 엄연한 권위자였지 단순한 돌팔이이자 사기꾼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중세 시기에도 존재했던 떠돌이 약 상인이나 여성 약초사였던 마녀들은 오히려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심지어는 단순 사기꾼 취급을 받아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근대 시기가 오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비약’ 자체는 정규 의사가 아닌 사이비 의학을 내세운 사기꾼들에 의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로 이런 풍조는 더욱 심화되어서 만병통치약의 존재 자체는 이제 사기꾼의 돈벌이로 전락해 버렸다.

 

산업혁명 시기 가장 악명높은 약장수로 손꼽히는 인물이 바로 제임스 모리슨(James Morrison)이라는 이름의 인물이다. 그는 스코틀랜드 애버딘 출생으로 리가에서 사업을 시작하다가 서인도 제도까지 이동했고 수익을 얻다가 풍토병에 걸려 유럽으로 돌아와 보르도에 정착했다.

 

희대의 사기꾼 제임스 모리슨. 인류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희대의 약장수였다.


그는 이 시기에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어 서인도제도에서 걸린 병부터 모든 병을 치료했다는 주장과 함께 그 비결은 자신이 만든 비법 알약과 레몬수 한 잔을 취침 전에 복용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의 명성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일명 모리슨 식물정제(Morrisons Vegetable Pill)의 탄생이었다.

 

그의 약은 1825년 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프랑스와 잉글랜드 서부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3년 뒤에는 아예 영국 보건 대학에서 보증했다는 사기꾼의 전형적인 행동 중 하나인 다른 권위있는 존재 내지 권위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존재를 내세우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는 중세 의학에서 그랬듯이 ‘나쁜 피’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주장했고 자신의 약을 복용하고 항문을 통해 모조리 배출시키는 것이 진정한 치료법이라고 설파했다. 실제로 모리슨 식물정제의 정체는 당시 의사, 약사들이 지적했듯이 대황(Rhubarb)을 주성분으로 한 그저 강력한 설사 효과를 내는 화합물질에 불과했다. 중세 의학에서 나쁜 피를 빼내는 치료법처럼 이번에는 ‘배설’이라는 레퍼토리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모리슨 식물정제의 경이적인 효험!(Extraordinary Effects of Morrisons Vegetable Pills!) 이라는 풍자화. 없어진 다리가 약을 먹고 다시 자라났다는 듯이 자랑하는 남자를 통해 마치 '무안단물' 드립을 연상시키게 한다.


인종 드립 풍자화로, 흑인이 이걸 먹으면 백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대량구매하겠다고 약사에게 말하는 내용이다. 이 비극은 Dear Heart Cream이라는 납 성분이 함유되었던 아프리카에서 유행한 피부를 하얗게 바꿀 수 있다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화장품이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유행하는 것으로 재현된다.


그 당시 지식인들은 이런 유행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하거나 고발하는 등 모리슨의 사기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사업을 더욱 번창시켰다. 그는 그 수익을 통해 저택과 농장을 샀지만, 실제로는 파리에서 살면서 자신이 만든 약을 파는 데에 분주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부에 의약품 판매 신고와 허가를 받는 데만 6만 파운드의 거금을 지출했음에도 그 몇 배의 수익을 올리며 승승장구했지만, 1836년 이것을 복용한 사람이 사망하여 판매자가 법정으로 기소되는 시점부터 비로소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 시작했다.


모리슨 식물정제의 부작용. 실제로 온 몸에 발진이나 사마귀가 돋아 나는 등 마치 매독이나 천연두 환자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다수의 경우 얼굴에 붉은색 또는 검은색 발진이 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럼에도 불티나게 팔렸다나...


모리슨의 무덤. 그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처벌도 없이 오히려 지지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그러나 1840년, 그가 결국 천수를 누리고 죽은 이후에도 모리슨 식물정제는 독일, 미국까지 퍼져나가 19세기동안 만병통치약의 대명사로 다시 한번 이름을 남겼다. 이 약을 애용한 사람이 처음으로 사망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재판을 통해 약의 정체가 드러나고 복용자들이 부작용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등 사기꾼의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모리슨의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대중에게는 ‘박해받는 선지자’ 그 자체였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사이비 종교같이 복용자들이 모리슨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저주하고 되려 그들이 사기꾼임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1만여명의 서명이 적힌 탄원서를 몇 차례나 의회에 제출하기까지 하는 등 사회적으로 악영향이 컸다.


이런 사이비 의술이 미국에서 더욱 유행한 이유는 정규 의학이 비싸고 위험하며 때로는 불쾌한 치료법(당시 서양 의학에서 수술은 팔, 다리를 톱으로 환자가 과다출혈로 죽지 않도록 가급적 빠르게 잘라내고 봉합하는 것이 대다수였다)이라고 해서 기피되었으며 오히려 정식 의학이 아닌 대체 처방을 선호할 정도였다. 만병통치약을 내세운 사기꾼들이 흥행한 이유는 바로 이런 시대를 잘 타고난 탓이 크다.

 

거기다가 저렴한 인쇄물과 신문, 행상인들의 등장과 서부개척시대는 이런 풍조를 더더욱 부채질했다. 대부분 서부 개척민들의 경우 고립된 공동체와 도시와는 머나먼 위치의 특성상 선진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처지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도 이에 한몫했다.

 

이는 미국의 특허매약제도(Patent Medicine)라는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경우도 있는데 이 제도는 원래 의약품을 의사의 처방에 따라 즉석에서 조제하는 것이 아닌 특허권을 얻고 나서 미리 조제해 만들어 파는 약품을 가리킨다. 모리슨 식물정제나 어린이용 물약으로 악명높은 윈슬로 부인의 진정 시럽 같은 시대를 풍미한 유명 약품들이 대표적이었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등장인물인 가짜 빌지워터 공작(프랑스 왕자라고 주장하는 노인과 사기꾼 드림팀을 만든다)도 이전에는 치석을 제거하는 약을 만들어 팔았다가 치아가 녹아버리는 부작용으로 인해 쫓기는 끝에 도피하는 신세였다는 묘사도 나온다.

 

1790년대에 최초로 시행된 이 법은 1840년대에는 70여종의 특허매약품이 존재했고 남북전쟁 시기가 되면 600여종으로 늘어나 군인이나 민간인 가리지 않고 그들의 지갑을 털어갔다. 아예 하나의 ‘비즈니스’로 정착했을 정도.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규제가 없는 과대광고’가 한 몫을 했는데 지방 신문과 잡지, 심지어 종교 분야의 인쇄물조차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는 묻지마 약물 광고를 싣고 그것을 주 수입원으로 삼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은 역설적이게도 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터무니 없는 폭리와 과장된 선전이 이제는 대중과 지식인들의 분노와 반발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언론인들이 이것을 앞장서서 레이디스 홈(Ladie's Home)이라는 잡지에 '미국의 거대한 사기'라는 특집으로 특허매약과 돌팔이 약장수들을 지독하게 까는 폭로가 연재되었다. 결국 미국 정부에서 1906년 역사상 최초로 식품의약품법을 제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기사였으며 난무하던 사기꾼들에게 법적 철퇴와 규제와 심판이 내려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미국의 가정주부를 타겟으로 한 오래된 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 사기꾼의 시대를 끝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