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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해[편집]

혹자는 "독립운동가들은 존경하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은 쓸데가 없었다"고 생각하거나, 이를 근거로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니며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독립하지 못했다. 당장 류큐 왕국(지금의 오키나와)만 봐도 독립 운동이 없었기에 일본 패망 이후 한국과는 다르게 오키나와를 독립 시키지 않았다.[25] 반대로 대만 역시 독자적인 국가로 독립하려는 의지 없이 그저 중화민국의 영토로 편입되는 데 만족했고, 대만 독립운동 담론이 불거지는 것은 2차대전 종전 이후 한참 지나서였다.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연합국 지도부는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일본이 점령한 영토 및 식민지 반환을 결의한다. 그런데 이렇게 된다면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 이전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은 해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카이로 회담에 참석했던 당시 중화민국 국민정부 주석 장제스가 "한국인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유의하여 연합국은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에 한국을 독립시킬 것이다."라는 조항을 카이로 선언문에서 확정될 수 있도록 강력히 주장한다. 그렇다면, 장제스는 왜 이러한 주장을 펼쳤는가? 이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장제스가 한국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제스는 실제로 윤봉길의 의거를 극찬하고 그의 유족들에게 '장렬천추'라는 휘호를 보내기도 하였다. 또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도 밀접한 관계였다. 특히 김구는 장제스에게 카이로 회담에 가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받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고, 장제스도 이를 받아들였다. 장제스는 뒤이은 얄타 회담에서 다시 한 번 다른 연합국 지도부를 상대로 한국의 독립을 확인받는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통해 장제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긴 것이 결국 대한민국을 독립으로 이끌었다는 사실 또한 객관적인 사실이다. 물론 장제스가 선의에서만 한국 독립을 지원한 것은 아니고, 정치적으로는 독립한 한국이 중화민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올 것을 계산한 행보이기는 하지만, 그가 이런 행보를 보인 것 역시 적어도 한국민들이 독립을 원하며 그 독립이 항구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견적이 나오고, 서방 측에게 이를 설득할 근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일본은 5년 후 6.25 전쟁이 터지자 미국에게 '한국의 재식민화' 같은 소리를 당당히 늘어놓을 정도였다. 미국에서 플랜카드 내걸고 시가행진하며 미군에 자원입대하던 재미교포들의 행보를 루스벨트가 귀동냥으로라도 들어보지 않았다면 과연 극동 어느 조그만 식민지를 무조건 독립시켜야 한다는 말에, 그것도 연합국의 일원 영국 국가수반, 처칠이 대놓고 싫은 티 내는 판국에[26] 귀를 기울였겠는가? 당시 세계정세 및 판도 상황, 강대국들이 전황에 따라 재빨리 주판알을 굴리는 등의 외부 영향이 컸다고는 해도, 이런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소금처럼 쌓인것도 카이로 회담 등에 일조한것 역시 부정할수 없다.

그리고 이를 떠나서도, 독립운동가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애국의 상징이고 민족의 번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우리가 감사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