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파일 만개 작업하느라 개노가다 하고 있고 교수한테 메일 보내면서

인간성이 상실되 가는 것 같은 시간을 보고 있는데,

이럴 때는 망상을 하면 힘이 되니 내가 생각하는 고대 한국어 모음 발달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 AD 100? Proto-Koreanic

medial r의 시대


Cr- CCr- CCCr- 같은 consonant cluster가 떼를 지어 다니던 consonant cluster의 시대

가끔가다 지가 모음을 밀어내고 r이 모음 행세까지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밝다는 *prrk-tarp < *prak-tarp < 白*brag? 이런 식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증거는 상고한어 외래어하고 조금하고 거기서 유도되는 phonological rule이 전부.

이 시기는 차자표기도 안 남았는데, 여기서 더 논할 필요는 없을 듯 보인다.

다만 medial r의 잔해는 초기 고대 한국어 徒 *nyi < *nri < *nruri/*mruri 같은 단어들에만

doublet 형식으로 남은 듯. 그나마도 현대 한국어까지 -yV 형태가 남은 *-ri가 전부

그리고 자료의 부족으로 실제 단모음 개수는 모른다. a i u 3 모음으로 복원하지만 어디까지나 편의상이고,

a의 유래가 복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AD 100 - AD 600 초기 고대 한국어


이 시기에는 medial r이 죄다 모음화되기 시작해서 y로 변하게 된다.

여기서 *-yV 형태들은 원시 음성 모음으로서 후기 고대 한국어부터 음성 모음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대부터는 a i u y 4 모음 체계로 발전하게 된다.

다만 차자 표기의 불확실성으로 많은 것을 논할 수는 없으나 -에를 矣로 적은 것을 보면 *-yi였던 것 같고

중세 한국어에서 -ㅓ를 가지는 단어들이 u o i 등의 모음에 가까운 한자로 적힌 경우가 많은데,

이는 -yV에서 V가 탈락된 형태로 보이고 金物(금물) *kym-myr? < *kyam-myr?

骨矣(골의) *kyTSi-? < *kyaTSi-가 그 예시가 아닌가 한다.

역시 실제 단모음 개수는 모른다. 차자 표기가 돌궐어 차자표기 보면 ø를 3등운으로 적었다 1등운으로 적었다 막장이고,

대놓고 [+back]을 啓民(계민) 4등 3등으로 적어버리는 막장이라 실제 단모음 개수는 알 수가 없다.


AD 600 - AD 1000 후기 고대 한국어


이때부터는 중세 한국어하고 모음 체계가 별로 차이가 없게 되는데 아직 마지막 남은 medial r의 잔해를

음성모음들이 ᶣø나 ᶣu 같은 형식으로 가지고 다닐수도 있다. 이 시기에 아래아가 등장했다.

y 일부가 ǝ로 분화했다고 보고 있다.

이 시기의 증거는 한자음인데 일단 3등운 내에서도 陽韻(양운)과 같이 [+cor] glide를 가지는 양성모음으로 반영되는데,

이 시기에 이미 ᶣø나 ᶣu의 구분은 단모음의 특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고, 鐘韻(종운) 역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하겠다.

反(반)이나 發(발)이 오히려 이전 한자 기층의 반영으로 보이는데 모종의 이유로 y가 소실된 원시 음성모음 유래로 보인다.

이 말고도 覃韻(담운) 일부가 아래아로 반영된 것 보면 아래아가 이 시기에 등장한 것으로 보이며

-i로 끝나는 diphthong일 경우 아래아 반영이 더 많다.

다만 覃韻의 일부만 아래아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아직 y와 ǝ가 완전히 분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모음 체계는 이토 치유키의 주장대로 거의 중세 한국어와 비슷한 모음 체계가 성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 이후로는 국어학계의 정설을 그대로 따라가니 더 논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이 이후는 중세 한국어 시기로 조선세종 시기와 약간의 차이 이외에는 모음 이동조차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차자표기는 이두에서도 보듯이 일부 초기 고대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반영했던 게 있는 것 같다.

이 시대부터는 중세 한국어의 a, ǝ, i, o, u, ɨ, ɑ의 모음 체계가 음가는 다소 다르지만 완성된 시기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이후로는 국문학계의 정설을 따라가니 망상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