冠山縣 本冠縣(一云冠文縣) 景徳王攺名 今聞慶縣

관산현(冠山縣)은 본디 관현(冠縣){한편 관문현(冠文縣)이라고도 한다}이니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문경현(聞慶縣)이다.


문(文)은 산(山)임. 당시엔 *more[모레]나 *moro[모로]로 읽었으니 앞의 관(冠)을 어떻게 읽는지 찾아보면



고려사

聞慶郡本新羅冠文縣(一云冠縣 一云高思曷伊城) 景德王 改名冠山 爲古寧郡領縣

문경군(聞慶郡)은 본디 신라의 관문현(冠文縣){한편 관현(冠縣)이라고도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이라고도 한다}이니 경덕왕이 관산(冠山)으로 이름을 고쳐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더 찾아보면, 후삼국시대(10세기)에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으로 나오는데, 이때는 후기 고대 한국어에서 전기 중세 한국어로 넘어가던 시점임. 고대의 행정력이 으레 그렇듯 8세기에 경덕왕이 이미 지명을 한화(漢化)했지만 널리 미치지 못했고 또 이때는 지방색이 강하다 보니 중앙에서 "너희 지명은 이제부터 이렇다" 하여도 자기들이 옛부터 읽던 대로 그냥 읽었음



후기 고대 한국어로 고사갈이(高思葛伊)를 재구하면 *kosikari [고시가리]가 되는데(10세기엔 *koskari일 수도 있음), 이건 후기 중세 한국어(15세기)의 곳갈(kwoskál)임. 현대 한국어론 고깔(고깔모자의 고깔)



후기 중세 한국어의 언해를 보면 곳갈로 읽었음


客卽掛冠至

나그내 곧 곳가ᄅᆞᆯ 걸오 오니

나그네가 곧 고깔을 걸고 오니


冠毋免ᄒᆞ며 勞毋袒ᄒᆞ며

곳갈을 밧디 말며 ᄀᆞᆺ바도 메왯디 말며

고깔을 벗지 말며 가빠도 웃통을 벗지 말며


결정적으로 한자 새김을 보면


광주천자문 : 곳갈 관(冠)

훈몽자회 : 곳갈 관(冠)

석봉천자문 : 곳갈 관(冠)

신증유합 : 곳갈 관(冠)



있다(有)의 후기 중세 한국어는 이시다/잇다 쌍형어로 나타나는데, 고대에 이시다 하나였다가 축약이 일어난 잇다라는 꼴이 등장한 것으로, 고깔도 이러한 축약을 겪은 것임



이를 따르면, 문경(聞慶)의 원래 이름이었던 관산(冠山)(=관문)은 후기 고대 한국어로 *kosikarimori [고시가리모리] 또는 *kosikarimoro [고시가리모로]로 재구할 수 있음. 현대 한국어로는 고깔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