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新羅爲亰師時 有世達寺(今㒷教寺也)之莊舎在溟州㮈李郡(按地理志 溟州無㮈李郡 唯有㮈城郡 夲㮈生郡 今寧越 又牛首州領縣有㮈霊郡 夲㮈郡今剛州 牛首州今春州 今言㮈李郡未知孰是)

옛날 신라가 서울이었을 적에(지금의 흥교사다), 세달사(世達寺)의 장사(莊舍)가 있어 명주(溟州)의 나리군(㮈李郡){지리지를 살피면 명주에 나리군이 없고 다만 나성군(㮈城郡)이 있을 뿐이니, 본디 나생군(㮈生郡)으로 지금의 영월(寧越)이다. 또 우수주(牛首州)의 영현에 나령군(㮈靈郡)이 있으니, 본디 나기군(㮈己郡)으로 지금의 강주(剛州)이다. 우수주(牛首州)는 지금의 춘주(春州)이다. 지금 말한 나리군은 무엇인지 모른다.}에 있었다.



夲寺遣僧調信爲知莊 信到莊上恱□守金昕公之女惑之深 屢就洛山大悲前潛祈得幸 方數年間其女已有配矣

본사에서 중 조신(調信)을 보내어 지장(知莊)으로 삼았다. 조신이 지장 일을 하던 중 태수(太守) 김흔(金昕) 공의 딸을 사랑하여 홀림이 깊어 낙산의 대비(大悲 , 관음보살) 앞에 자주 나아가 행운을 얻기를 그윽이 빌었으나 수년 사이 그 딸은 이미 짝이 있였다.



又徃堂前㤪大悲之不遂已哀泣至日暮 情思倦憊 俄成假寢 忽夢金氏娘容豫入門 粲然啓齒而謂曰 児早識上人於半面心乎愛矣 未甞暫忘 迫於父母之命 強従人矣 今願爲同穴之友故來爾 信乃顛喜 同敀郷里計活四十餘星霜有児息五

또 불당 앞에 가 대비가 (바램을) 이루게 하지 않음을 원망하여 날이 저물도록 울었다. 정사(情思)로 지쳐 이윽고 잠시 잠드니 문득 꿈에 김씨의 딸이 의젓하게 문에 들고 산뜻이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일찍이 상인(上人 , 승려의 높임)의 얼굴을 알아 마음으로 사랑하였으니 일찍이 잠시도 잊지 못하였으나, 부모의 명에 다그쳐져 억지로 다른 사람을 따랐습니다. 지금은 [죽어서] 한 무덤에 묻힐 벗이 되고자 원하여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조신은 엎어질 듯 기뻐하며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사십여 년의 세월을 살고 자식 다섯을 두었다.



家徒四壁 藜藿不給 遂乃落魄扶携 糊其口於四方 如是十年周流草野 懸鶉百結亦不掩体 適過溟州蟹縣嶺 大児十五歳者 忽餧死 痛哭收瘞於道

집은 한갓 네 벽 뿐이요 변변찮은 밥도 먹지 못하였다. 마침내 낙심하여 서로 부축하고 이끌며 제 입에 풀칠하려 사방을 다녔다. 이 같이 10년을 두루 초야를 떠도니 누더기옷을 꼬매도 몸을 가릴 수 없었다. 마침 명주(溟州)의 해현령(蟹峴嶺)을 지날 때 열 다섯 살의 큰 아이가 홀연히 굶어 죽었다. 통곡하며 거두어 길에 묻었다.



從卛餘四口到羽曲縣(今羽縣也) 結茅於路傍而舎 夫婦老且病飢不能㒷 十歳女児巡乞 乃爲里獒所噬號痛卧於前 父母爲之歔欷泣下数行

남은 네 자녀를 거느리고 우곡현(羽曲縣){지금의 우현(羽縣)이다.}에 이르렀다. 길가에 띠풀을 묶어 집을 지었다. 부부는 늙고 또 병들고 굶주려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열 살 딸 아이가 돌아다니며 빌었는데, 이에 마을 개에 물려 앞에 누워 아픔을 호소하니, 부모가 흐느끼며 한숨 짓고 눈물을 계속 흘렸다.



婦乃□澁拭涕倉卒而語曰 予之始遇君也 色羙年芳衣袴稠鮮 一味之甘淂與子分之 数尺之煖得與子共之 出䖏五十年 情鍾莫逆恩愛綢繆 可謂厚縁 自比年來衰病歳益深 飢寒日益迫 傍舎壺漿 人不容乞 千門之耻 重似丘山 児寒児飢 未遑計補 何暇有愛恱夫婦之心㦲 紅顔巧笑草上之露 約束芝蘭柳絮飄風 君有我而爲累 我爲君而足憂 細思昔日之歡 適爲憂患所階 君乎予乎奚至此極 與其衆鳥之同餧 焉知隻鸞之有鏡 寒弃炎附 情所不堪然 而行止非人 離合有數 請從此

아내가 이에 말을 꺼리다가 눈물을 닦고 급작스레 말하길, “내가 처음 당신과 만난 적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고 옷도 많고 아름다웠습니다. 맛 좋은 음식도 나누어 먹고, 몇 자의 옷도 나누어 입으면서 함께 산지 50년, 정은 한결같이 막역하고, 사랑은 얽히고 묶여 가히 두터운 연분이라 하겠습니다. 근년부터는 늙고 아픔이 해가 더할수록 심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는 날로 더욱 절박해지니 곁방살이와 한 병의 마실 것도 사람들이 비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수많은 집에서의 부끄러움이 산더미 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은 춥고 굶주려 면하게 할 수 없으니 어느 겨를에 부부의 마음을 사랑하며 즐거워 함이 있겠습니까? 젊은 얼굴에 예쁜 웃음은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芝蘭)의 약속은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 같습니다. 당신은 제가 있어 지침이 되고 저는 당신이 있어 족히 시름합니다. 옛날의 즐거움을 자세히 생각해 보니, 마치 우환에 나아가는 바가 되었습니다. 당신과 제가 어찌 이 극(極)에 이르렀는지요? 뭇새가 같이 굶어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새가 거울을 보며 서로 그리워함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 버리고, 좋을 때 가까이 하는 일은 인정으로 차마 못 할 바이겠습니다만, 행하고 그치는 것은 사람이 어찌할 바 아니며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명이 있으니, 청컨대 이 말을 좇으십시오.”라고 하였다.



信聞之大喜各分二兒将行 女曰 我向桑梓 君其南矣 方分手進途而形開 殘燈翳吐 夜色将闌

조신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 아이 둘 씩 나누어 장차 가려고 할 제 아내가 말하길, “저는 고향으로 향하겠습니다. 당신은 남쪽으로 가시지요.”라고 비로소 서로 잡은 손을 놓고 길을 나아가려 하니 꿈에서 깼다. 남은 등불이 흐려져 가고 밤빛은 장차 다하려 했다.



及旦鬢髮盡白 惘惘然殊無人世意 已猒勞生如飫百年辛苦 貪染之心洒然氷釋 於是慚對聖容懴滌無已 歸撥蟹峴所埋兒乃石弥勒也 灌洗奉安于隣寺 還京師免荘任傾私財創淨圡寺 懃修白業 後莫知所終

이른 아침에 미치니 살쩍과 머리털이 세었고, 멍하게 거의 인간 세상에 뜻이 없어졌다. 이미 고달픈 삶에 염증이 남이 백 년의 쓰라림을 겪은 듯 하였고, 탐욕하는 더러운 마음도 깨끗이 얼음 녹듯 하였다. 이에 성용(聖容 , 부처)를 대하기 부끄러이 여겨 뉘우치고 씻어내어 마지 않았다. 해현(蟹峴)으로 가 (꿈에서) 아이를 묻은 곳을 팠더니 곧 돌미륵이었다. 씻어서 이웃 절에 봉안하고, 서울로 돌아가 지장의 직을 벗고 사재(私財)를 기울여 정토사(淨土寺)를 세우고, 부지런히 백업(白業)을 닦았다. 후에 죽은 곳을 알지 못한다.

 이에 부처님을 대하기 부끄러워졌고 참회하며 씻어낼 마음도 멈출 길이 없었다.




議曰 讀此傳掩卷而追繹之 何必信師之夢爲然 今皆知其人世之爲樂欣 欣然役役然 特未覺尓 乃作詞誡之曰 

논하여 말하노라. 이 전기를 읽고 책을 덮고 궁리하여 풀어보니, 어찌 반드시 조신 스님의 꿈 뿐 그러하랴? 지금도 모두 그 세상의 즐거움만 삼을 줄 알고 흔연히 애쓰며 그러하니, 다만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에 시를 지어 경계하노라.


快適湏臾意已閑 / 暗從愁裏老蒼顔

不湏更待黄粱熟 / 方悟勞生一夢間

治身臧否先誠意 / 鱞夢蛾眉賊夢藏

何似秋來清夜夢 / 時時合眼到清涼

쾌적하여 잠시 뜻은 이미 한가롭더니 / 그윽이 시름 속을 좇다가 늙어 파리하도다

모름지기 다시 메조 익음을 기다리지 말지어다 / 비로소 고달픈 삶이 한 자리의 꿈임을 깨달았도다

몸 다스림의 잘잘못은 먼저 참뜻에 있거늘 / 홀아비는 미인을 꿈꾸고 도둑은 창고를 꿈꾸는도다

어찌 가을에 맑은 밤의 꿈에 오는 듯 하리오? / 때때로 눈감고 청량(淸凉)에 이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