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 권120 > 열전 권제33 > 제신> 김자수 > 성균생원 박초 등이 불교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리다

성균생원 박초 등이 역시 상소하여 말하기를, “엎드려 생각해보건대 우리나라는 태조께서 창업한 이래 금지옥엽 같은 자손들께서 대대로 계승하면서 그 계통이 계속되어온 것이 거의 500년간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 국가는 경인·계사년 이전에는 유학의 이름난 선비가 중국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에서는 군자의 나라라고 하였고 송에서는 문물과 예악의 나라라고 하여 본국의 사신이 말에서 내리는 곳을 소중화지관이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경인·계사년 이후로는 전쟁에서 죽지 않으면 산중으로 도피하여, 유학에 통달한 선비가 100에 1,2명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불교를 공부하는 어떤 자가 비로소 사악한 설을 만들어 위로는 신하들을 속이고 아래로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기만하여 태조 9세 전생의 초상을 만들고는, ‘태조의 전신인 아무개는 무슨 원주이며, 누구는 어떤 탑을 지었고 또 다른 아무개는 어떤 불경을 조성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몇 대 전생 태조는 어떤 절의 소였는데 몇 대 생을 거쳐 왕위를 얻었고 돌아가신 뒤에는 이제 보살이 되었다.’라고 하며 이를 글로 만들어 목판에 새긴 다음 깊은 산에 간직하고 영원토록 속이려고 하였습니다.
현릉 공민왕께서 이것을 보고 깊이 공경하고 믿었습니다. 이에 내불당의 법석과 연복사의 문수회에서 강경하고 반승하였습니다. 심지어 임금의 존귀함을 낮추어 중에게 절을 하고 스승으로 삼아 직접 제자의 예를 집행하였지만 갑인년에 이르러는 부처를 섬긴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신 등은 모르겠습니다만, 태조 9세상은 석가와 달마가 동방에 다시 태어나서 직접 태조를 천당 불찰에서 친견하고서 이 초상을 만든 것입니까? 

또 태조의 전생에 소로 있을 때나 원주로 있을 때 직접 본 것이 어떤 중이었습니까? 저들이 거짓말로 임금을 속여 태조가 소였다고 하니, 성자신손인 임금께서 어찌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아아! 올바른 학문이 드러나지 않고 인심이 바르지 못한데도 덕을 닦지는 않고 오로지 복만 구하며, 도를 알지 못하고 오로지 괴이한 것을 들으려 하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상소가 올라가자 왕이 크게 노하였다.


태조의 몇 대 전생이 소였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서 공민왕도 이를 믿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