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관직의 이벌찬(伊伐湌)부터 나마(奈麻)까지 재구해 보았는데, 이만해도 11가지라 상하(上下)로 나누었음


신라의 관직 순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 이사금의 기록을 따르면 다음과 같음

~ 一伊伐飡 二伊尺飡 三迊飡 四波珍飡 五大阿飡 六阿飡 七一吉飡 八沙飡 九級伐飡 十大奈麻 十一奈麻 ~

~ 첫째는 이벌찬(伊伐飡)이요, 둘째는 이척찬(伊尺飡)이요, 셋째는 잡찬(迊飡)이요, 넷째는 파진찬(波珍飡)이요, 다섯째는 대아찬(大阿飡)이요, 여섯째는 아찬(阿飡)이요, 일곱째는 일길찬(一吉飡)이요, 여덟째는 사찬(沙飡)이요, 아홉째는 급벌찬(級伐飡)이요, 열째는 대나마(大奈麻)요, 열하나째는 나마(奈麻)요 ~


上에선 이벌찬(伊伐飡)부터 아찬(阿飡)까지, 下에선 일길찬(一吉飡)부터 나마(奈麻)까지 적고자 함.

재구음만 보고 싶으면 마지막에 요약해 놓았음






1. 이벌찬(伊伐飡) *ceporkan [제볼간]


신라 금석문에는 일벌간(一伐干)

삼국사기에는 서발한(舒發翰), 각찬(角湌), 각간(角干), 주다(酒多)

중국 양서(梁書)에는 자분한지(子賁旱支), 수서(隋書)에는 이벌간(伊罰干)

일본서기에는 조부리지간(助富利智干) 등등 다양한 표기가 존재함


중국 측의 기록 자분한지(子賁旱支)의 지(支)는 고대 한국어 *ke 접사로, 자분한(子賁旱)만 읽으면 *ceporkan[제볼간]이 됨

삼국사기의 서발한(舒發翰)은 시간이 좀 지난 발음인 *seporkan[세볼간]이고 각간(角干)이라는 표기는 고대인들이 뿔 각(角)을 *sepor[세볼]로 읽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후기 중세 한국어 spúl[ᄲᅳᆯ]의 고대어로, *cepor[제볼] > *sepor[세볼] > *sipor[시볼] > *spor[ᄲᅩᆯ] > spúl[ᄲᅳᆯ]의 변화를 거쳤다고 유추가 가능함


다른 표기인 주다(酒多)는 재미있는 점이 보임

許婁不恱 王謂許婁曰 此地名大庖 公於此置盛饌羙醞 以宴衎之 冝位酒多 在伊湌之上 以摩帝之女 配太子焉 酒多後云角干

허루(許婁)가 마뜩잖게 여겨, 왕이 허루(許婁)에게 일러 가로되, "이 지명은 대포(大庖)로, 공이 여기에 진수성찬과 맛있는 술을 차려 잔치를 여니, 마땅히 벼슬을 주다(酒多)로 하여 이찬(伊湌)의 위에 있게 하겠소"하며, 마제(摩帝)의 딸을 태자와 짝하게 하였다. 주다(酒多)는 나중에 각간(角干)이라 하였다.



벼슬 이름을 잔치의 음식과 술을 잘 차린 것에 따와 만들었다는 것인데, 언뜻 보아도 후대에 각색된 듯한 느낌이 듦


주(酒)는 '술'이니 현대 한국어를 구사하는 우리는 왜 저런 발상이 가능한지 잘 모르나, 술은 후기 중세 한국어로 '수울/수울'이라는 꼴이었고, 12세기(초기 중세 한국어) 계림유사를 보면,


酒曰酥孛

술은 수발(酥孛)이라 한다.


고로 당시 중국어 발음대로 재구하면 *수블이었을 테니, ᄲᅳᆯ이나 수블이나 발음이 비슷하여 딱 봐도 만들어진 이야기임을 알 수 있음.


또 삼국사기를 보면,


豊夫城 本肖巴忽

풍부성(豊夫城)은 본디 초파홀(肖巴忽)이다.


술은 당시에 초기 고대 한국어로 *separ[세발]이었음. 그러다가 후기 고대 한국어에서 *sopor[소볼]이 된 것이니 본디 다르지

풍부(豊夫)의 부(夫)는 말음첨기로, 이사부, 거칠부 같이 *r이 숨겨져 있는 독법임(이사부 *isipore[이시보레])


뒤의 다(多)는 많다의 옛말인 '하다'의 활용형 '한'일 테니 아마 이 설화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수블한 ~ *ᄲᅳᆯ한이라 발음했을 듯

비록 후대의 창작이나 여기에 시사점이 있는데 이 당시 *kan[간]*han[한]으로 약화되었다는 점과 뿔과 술의 발음이 비슷했다는 점임


나중엔 대각간(大角干)이라는 관직도 나오는데, 초기 고대 한국어식으로 읽으면 *hanceporkan[한제볼간]






2. 이척찬(伊尺飡) *erekan [에레간]


신라 금석문에는 일간지(壹干支), 일척간(一尺干), 을찬(乙粲)

삼국사기에는 이찬(伊飡)

중국 남사(南史)에는 일한지(壹旱支)

일본서기에는 예찬(翳湌) 등의 표기가 존재함


일본서기의 예찬(翳湌)은

在昔難波宮治天下天皇崩時 遣巨勢稻持等 告喪之日 翳金春秋奉勅

옛날 난파궁치천하천황(難波宮治天下天皇 , 효덕천황)이 붕어하셨을 때, 거세도지(巨勢稻持) 등을 보내어 상을 알린 날에 예찬(翳湌) 김춘추가 칙서를 받들었다.


김춘추의 관직이 예찬(翳湌)으로 나오며 중국 사서를 보면,


구당서

二十二年 眞德遣其弟國相伊贊干金春秋及其子文王來朝

22년, 진덕여왕이 그 아우 국상(國相) 이찬간(伊贊干) 김춘추 및 그 아들 문왕을 보내어 내조케 하였다.


김춘추의 관직이 이찬간(伊贊干)으로 나옴. 한 관직을 두고 여러 표기가 나온 것인데 이걸 재구하면 *er[e]kan[에레간]이 됨

그럼 이척간(一尺干)이란 표기는 무엇이냐? 후술하겠지만 척(尺) 자가 들어간 관직명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ㄹ 음가를 가지고 있음. 이 이척찬에 일간지(壹干支), 일척간(一尺干), 을찬(乙粲), 일한지(壹旱支) 같이 ㄹ이 있다고 대놓고 알려 주고 있음


3가지의 가정을 들 수 있는데,

1. 척(尺)은 고대에 ㄹ을 표기한 시(尸)의 오자이다.

2. 진(珍), 훼(喙), 탁(啄)이 전부 *tor[돌]로 읽히듯, 척(尺), 시(尸)는 통자이다.

3. 척(尺)은 시(尸)보다 더 오래된 표기며, 척(尺) 또한 어떠한 글자에서 따온 표기다.


종래의 학자들은 관직의 마지막에 간(干)이 아닌 찬(湌)으로 된 이표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척간(尺干)에서 ㅈㄱ이 ㅈㅎ으로 되어 마침내 ㅊ(찬)이 되었다는 식의 변화를 주장하거나 받아들였는데, 나는 이를 견강부회에 가깝다 여기고 앞서 말한 *tor[돌]처럼 이표기로 보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듦


뜻은 미상이나 추측은 가능함. 신라의 시조 혁거세가 태어난 나정(蘿井)의 이표기로 나을(奈乙)이 있는데(나정은 나을보다 후대의 표기로 보임) 여기서 우물을 뜻하는 정(井)을(乙)이 서로 통하는 것을 알 수 있음.


삼국사기 지리지에도

泉井口縣 一云於乙買串

천정구현(泉井口縣) 한편 어을매곶(於乙買串)이라 한다.


泉井郡 一云於乙買

천정군(泉井郡) 한편 어을매(於乙買)라 한다.


어을매(於乙買)는 *e > *o를 겪은 *oremer[오레멜]이고 한화(漢化)된 이름은 역시 순서가 바뀌어 정천(井泉)이 아닌 천정(泉井)이 되었음


또 일본서기에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을 伊梨柯須彌(イリカスミ , irikasumi)라 기록하였고 이 iri도 동원임. 산(山)이 *more[모레]에서 *mori[모리]*moro[모로]로 분화한 것처럼 같은 변이를 겪은 듯



나는 이 어을매(於乙買) *oremer[오레멜]이 후기 중세 한국어 우믈(wumúl) 현대 한국어 우물의 고대형이지 않을까 싶은데, 우믈은 *울믈에서 ㄹ이 탈락한 꼴이 아니겠냐는 것. 뭐 움 + 물 = 움물 > 우물로 보는 어원풀이도 있기도 해서 나도 확실하진 않음


아무튼 이척찬의 이척(伊尺)은 우물과 관련되어 보인다는 해석임. 재미있는 점은 한강을 백제에서는 욱리하(郁里河)라 부르고 고구려에서는 아리수(阿利水)라 부르고 신라에는 왕봉하(王逢河)라 불렀음. 또 백제의 위례성(慰禮城)도 이에 속해 보이는데, 이 재구음은 *were[웨레] > *ere[에레] > *ore[오레]로 우물의 고대어와 비슷한 소리임. 아마 혁거세가 우물이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는 고대에 우물과 royal을 뜻하는 *ere[에레]가 서로 소리가 비슷하여 만들어진 설화로 보임. 위의 이벌찬의 이표기인 주다(酒多)처럼 ㅇㅇ






3. 잡찬(迊飡) *cep(V)-kan [제ㅂ간]


이건 뜻 유추도 힘들 뿐더러 재구하기도 가장 까다로움

다른말로는 잡간(迊干) 잡판(迊判) 소판(蘇判) 잡간(匝干) 등이 있음


자료들을 참고해 보면, 확실한 건 시대적 표기는 잡간(迊干) > 소판(蘇判)으로 소판(蘇判)은 후대의 표기임을 알 수 있는데, 한국측 자료나 일본서기에서나 소판(蘇判)은 후기 고대 한국어 시기에 등장하기 때문. 애초에 잡간(迊干)은 금석문에서 나온 것이라 앞선 표기일 수 밖에 없기도 함.


잡(匝/迊) 같은 건 당시에 *cop[좁]이라 읽었으니 이벌찬의 *cepor[제볼] > *sepor[세볼]처럼 *cop-[조ㅂ] > *sop-[소ㅂ], 즉 ㅈ > ㅅ의 변화를 거친 것이니 음운적으로도 후대의 표기임을 알 수 있음


이보다 앞선 발음은 *cep-[제ㅂ]인데 중국측의 기록에서 제한지(齊旱支) *cep(V)-kanke[제ㅂ간게]라 나오기 때문






4. 파진찬(波珍飡) *patorkan [바돌간]


파진찬은 문증되는 자료가 풍부하고 중세 한국어에도 그 구성된 단어가 이어 내려온 것이 보여 이미 예전부터 재구가 완료된 관직임

진(珍)은 *tor[돌]로 읽으니 파진(波珍)은 *pator[바돌]이 되고 일본서기에서도 波珍干岐(ハトリカンキ , patorikanki)라 새김을 적어 놓았음. 이 *pator[바돌]은 후기 중세 한국어에 바ᄅᆞᆯ(palól)이 되었고 지금도 제주도 사투리엔 바를이라는 단어가 존재함






5. 대아찬(大阿飡) *hanarekan [한아레간]


대아찬(大阿飡)은 대(大) + 아찬(阿飡)이니 아찬(阿飡)을 조사해야겠지


신라 금석문에는 아간지(阿干支), 아척간(阿尺干), 아간(阿干) 등으로 나오는데, 여기에도 척(尺)이 보이네? 얘도 ㄹ이 있나 다른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 양서(梁書)에는 알한지(謁旱支) *arekanke[아레간게]로 적혀 있음. 또 고려사의 후삼국시대 기록을 보면 알찬(閼餐)으로 표기하였는데, 얘도 ㄹ이 있지


삼국유사에 아질간(阿叱干)으로 나온 사례가 있으나, 딱 이 하나에만 나타나는 표기고 다른 문헌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표기라 오자로 보는 것이 합당함. 아마 후대에 ㄹ 음가의 시(尸)와 ㅅ 음가의 질(叱)을 헷갈려 적은 듯 함. 고려 후기엔 尸가 왜 ㄹ 음가를 가지는지 이미 천 여년 가까이 지나서 이유도 몰랐음. 그저 력(力)과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 ㄹ이라 읽었을 것이다~ 란 추측을 하기도 했고 ㅇㅇ


뜻은 잘 모르겠는데 알천(閼川), 阿利那礼河(アリナレカハ , arinarekapa), 알영(閼英)/아리영(娥利英)의 *are[아레]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임






6. 아찬(阿飡) *arekan [아레간]


위와 동일






요약

1. 이벌찬(伊伐飡) : *ceporkan [제볼간]

2. 이척찬(伊尺飡) : *erekan [에레간]

3. 잡찬(迊飡) : *cep(V)-kan [제ㅂ간]

4. 파진찬(波珍飡) : *patorkan [바돌간]

5. 대아찬(大阿飡) : *hanarekan [한아레간]

6. 아찬(阿飡) : *arekan [아레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