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방어성공에 별로 기여한거 없고 명나라가 다했다 명일전쟁이다 이순신은 전쟁판도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런 평가가

일단 적어도 1차사료에 근거한거 맞는거 아님?

예를 들면


이번 왜란의 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중국 군대의 힘이었고...

선조 실록 135권, 선조 34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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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가 조선(朝鮮)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중국(中國)과 조선(朝鮮)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관백(關白)(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죽고서야 화란(禍亂)이 비로소 종식되었다.

명사(明史), 조선열전(朝鮮列傳), [萬曆] 26년(A.D.1598; 朝鮮 宣祖 31) 11월

(실제로 히데요시는 죽기전까지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사령관으로 다시 북진을 명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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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로의 군사가 패전하다

이때 동로(東路)의 중국 군사는 2만 4천 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5백 14명이며, 중로(中路)의 중국 군사는 2만 6천 8백 명이고 우리 군사는 2천 2백 15명이며, 서로(西路)의 중국 군사는 2만 1천 9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9백 28명이며, 수로(水路)의 중국 군사는 1만 9천 4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7천 3백 28명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10여만 명이었다. 군량과 무기도 이에 비등했는데, 삼로(三路)의 군대가 흔적도 없이 무너지니, 인심이 흉흉하여 보따리를 싸 가지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05권, 선조 31년 10월 12일 갑자 7번째기사

(사로병진작전에서 조선의 병력보다 명군의 병력이 훨씬 많은 걸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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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서는 이렇게 비하하고 있는데


물론 이것들은 본 문서의 내용 선에서 전부 반박되는 내용들이지만 주장하는 당사자들이 소위 일뽕이나 역센징이라고 불리는 역갤 계통의 제식갤 출신 및 뉴라이트 신봉자들이라 반박하는 의미가 없다. 몇번 대화해보면 자세한 지식은 전혀 없거나 편향되어 있으며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든 주장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뉴라이트 계열의 교수 이름을 들먹이며 권위에 호소하려는 걸 볼 수 있다. 이마저도 대화가 통할 때의 이야기며 대부분은 엉뚱한 소리로 대화 자체를 회피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1차사료를 근거로 들이대는 사람들을 저렇게 비하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맨 윗줄의 의견이 틀렸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틀렸고 뒷받침 가능한 1차사료는 무엇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