坐曰阿則家囉

앉다(坐)는 阿則家囉(아즉가라)라 한다


먼저 '-가라'는 선어말어미 '-가-'와 '-라'가 붙은 꼴임. 阿則(아즉)이 곧 '앉다'의 어간인데, 보다시피 阿則(아즉)엔 ㄴ받침이 없음. 후기 중세 한국어(15세기)에도 '앉다'는 앉다(anc-)였으니 12세기 초기 중세 한국어와 15세기 후기 중세 한국어의 3백년 사이에 ㄴ받침이 추가된 것임


'앉다'의 쌍형어로는 '얹다'가 있음. 이 '얹다'는 후기 중세 한국어로 엱다(yenc-)였고 석보상절13:17a에는 옂다(yec-)도 나타남


典은 尊ᄒᆞ야 여저 둘씨니 經을 尊ᄒᆞ야 여저 뒷ᄂᆞᆫ 거실ᄊᆡ 經典이라 ᄒᆞᄂᆞ니라

典(전)은 높여 얹어 두는 것이니 經(경)을 높여 얹어 두어 있는 것이므로 經典(경전)이라 하느니라


한국어는 ㅈㅊ 같은 파찰음 앞에 비음이 삽입되는 경우가 있는데, '넌출, 감추다, 멈추다, 던지다' 같은 단어들은 원래는 각각 '너출, ᄀᆞ초다, 머추다, 더디다'였음. 이러한 현상은 후기 중세 한국어 시기에 이미 시작했고 근대 한국어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났음


이로 미루어, '앉다'는 초기 중세 한국어로 *앚다(ac-)로 재구 가능


또 논외로, '-가라'는 후기 중세 한국어에도 여럿 보임


巖頭ㅣ 見徳山ᄒᆞ야ᄂᆞᆯ 一喝ᄒᆞᆫ대 便禮拜ᄒᆞ니 是ᄂᆞᆫ 知恩耶야 報恩耶아

巖頭ㅣ 德山ᄋᆞᆯ 보아ᄂᆞᆯ ᄒᆞᆫ번 喝ᄒᆞᆫ대 (喝ᄋᆞᆫ 헥 ᄒᆞᆯ씨니 ᄇᆡ호ᇙ 사ᄅᆞᄆᆡ 혜아료미 다 ᄠᅥ러디긔 우리틸씨라) 곧 절ᄒᆞ니 이ᄂᆞᆫ 恩ᄋᆞᆯ 알아라 ᄒᆞ니야 恩ᄋᆞᆯ 갑가라 ᄒᆞ니야

암두(巖頭)가 덕산(德山)을 보거늘 한 번 갈(喝)한대 (喝은 허! 하는 것이니 배울 사람의 헤아림이 다 떨어지게 울리게 소리치는 것이다) 곧 절하니 이는 은(恩)을 알아라 한 것이냐 은(恩)을 갚아라 한 것이냐?


我有浣花竹 題詩須一行

내 浣花앳 대ᄅᆞᆯ 뒷노니 글 스라 모로매 ᄒᆞᆫ 번 녀가라

내 완화(浣花)엣 대(竹)를 두어 있노니 글 쓰러 모름지기 한 번 가라






借物皆曰皮離受勢

물건을 빌리는 것은 다 皮離受勢(피리수세)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이건 '빌다'로, 후기 중세 한국어로 빌다(pǐl-)였음. 악센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더 이전 꼴은 *pirV-[비ㄹ다]였는데 계림유사에서 *비리다라고 알려주고 있고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에도 祈以 *piri-[비리다]라는 표기가 있긴 함 (다만, 以는 조사로 쓰일 땐 '로'로도 읽히는지라 이에 견강을 하면 *비로다라는 꼴이 존재하였을 수도 있음. 고대에 메(山)는 *mori와 *moro, 누리(世)는 *nori와 *noro 등의 쌍형어가 존재했듯이 ㅇㅇ 그렇다면 알렉산더 보빈의 만주어 firu- / 한국어 '빌다'의 짝이 맞음. 더 나아가 초기 고대 한국어로는 *p[e]re-[베레다]로 재구 가능하고)


이와 같은 예시로, 삼국유사엔 원효와 사복이 암소를 묻은 활리산(活里山)이라는 곳이 등장하는데, 이는 살다(sǎl-)의 후기 고대 한국어 *사리다를 말음첨기한 표기로 활리산(活里山)은 당시에 *sarimori[사리모리] 또는 *sarimoro[사리모로]로 읽었을 것임


'빌다'는 원래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는 빌다(祈, 하늘에 빌다), 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호소하여 구걸하는 빌다(乞, 밥을 빌다),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는 빌다(借, 돈을 빌다) 3가지가 있었는데 3번째는 나중에 '빌리다'가 되었음. '빌리다'의 옛 꼴은 '빌이다(빌 + 이 + 다)'로 원래는 '빌려주다'라는 뜻이었는데 시나브로 뜻이 바뀐 것. 허나 '이 자리를 빌어~' 같이 화석화된 표현이 남아 있지. 나무위키에는 *빌리쇼셔라 재구했던데 이건 잘못이고 *비리쇼셔가 맞음






여담으로


倡曰水作

倡(노릇바치)를 水作(수작)이라 한다


尺曰作

尺(척)은 作(작)이라 한다


같은 기록을 보면, 고려 시대엔 尺 = 作인 것 같은데, 결국 水尺 = 水作이니 水作(수작)은 무자이를 나타낸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