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중반부터 연해주 지역의 고려인들이 아닌 밤중에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만약 일본과 전쟁이 벌어질 경우 이 고려인들이 일본군에 호응할지도 모른다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 때문에요.

그런데 소련의 고려인 탄압은 강제추방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아예 스탈린을 비롯한 수뇌부가 직접 '노예 지침' 이라고까지 불리는 5개조의 고려인 탄압정책을 비밀리에 명문화했기 때문입니다.

그 노예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려인은 일본 탐정에 매수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서 소련 공민증을 회수하고, 정치적 불순분자로 이주한 후에도 내무기관의 감시하에 있을 것

2. 고려인의 이동의 자유를 박탈할 것

3. 고려인의 거주를 특정 지역으로 제한할 것

4. 고려인은 소련 군대에서 모두 제대시키고, 앞으로 고려인을 징병하지 말 것

5. 소련 철도에서 일하고 있는 고려인들을 전부 해임하고, 앞으로 그들의 취업을 불허할 것

한마디로 고려인들은 소련에서도 '비국민' 취급을 받을 거라고 선포한 겁니다.

기껏 소련의 사회주의 정책에 협조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많았는데, 돌아온 건 비국민의 낙인과 중앙아시아로 끌려가는 노예 취급이었습니다.

이 낙인이 있는 한 고려인들은 직업 선택이나 거주 이전의 자유가 철저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고려인의 러시아군 - 소련군 입대는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나름 활발하여 이를 계승한 소련군도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놈의 일본군 내통 혐의 하나때문에 출신이 고려인이라는 이유로 전부 군대에서 쫓겨난 겁니다.

심지어 몇몇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일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숙청당하는 일도 있었죠.

고려인 입장에선 정말 억울했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다른 소수민족도 별 같잖은 이유로 강제이주 당하거나 굴라그로 쫓겨나고, 군대에서도 대숙청이 벌어지는 중이라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죠.

이후 독소전쟁이 벌어지며 비로소 고려인들의 군 입대 금지령도 해금되고 위의 '노예 조항' 들도 완화되어 고려인들의 생활은 약간이나마 나아졌습니다. 고려인 특유의 협동정신과 끈기로 중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집단농장(콜호스)를 만들어내는 등의 성과도 보여 소련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죠.

그러나 이런 억울한 탄압을 당했다는 호소는 스탈린이 죽고 나서도 철저히 비밀로 유지해야 했고, 소련 붕괴 이후에서야 비로소 진상이 밝혀지게 됩니다.

애초에 저 '노예 지침' 도 철저한 기밀문서 속에나 존재했던지라 일반 고려인들은 그 진상을 알 길도 없었죠.



출처: 네이버 블로그 무수천.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injune98&logNo=222840453701&referrerCode=0&searchKeyword=%EB%9F%AC%EC%8B%9C%EC%95%84%20%EC%A0%9C%EA%B5%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