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수구다라니, 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 특별전        

          
           경주 남산 출토본으로 전해져온 ‘수구다라니’의 범자 본 일부분. 수년간의 보존처리를 마치고 24일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언론에 공개된 본이다. 범어 글자들로 둘러싸인 여백 부분에 금강역사신상이 꿇어안은 이(관리로 추정)의 머리를 만지는 그림이 보인다. 꿇어앉은 이 옆에 ‘~叱知(질지)’라는 추정 관직명이 적혀있어 눈길을 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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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1300년 전 신라 사람들이 몸에 품고 다니며 간절히 소망을 빌었던 국내 최고의 부적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 지금도 한국인들에게 마법의 주문으로 친숙한 ‘수리수리마수리…수리수리마하수리’를 떠올리게 하는 8~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주문 부적인 ‘다라니’의 출현이다.

         

고대 인도 글자로 적힌 주문의 글귀들과 함께 불교수호신 금강역사가 관리의 모자를 쓴 중생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축복하는 그림까지 그려진 통일신라시대 밀교계통 경전 부적인 ‘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隨求卽得大自在陀羅尼, 이하 수구다라니)’와 이 경전을 담았던 금동경합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선보인다. 24일부터 경내 특별전시관에서 시작하는 특별전 ‘수구다라니, 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내년 1월28일까지)이 그 무대다. 

         

          
           국립경주박물관이 100여년만에 처음 공개하는 통일신라시대의 불교경전 부적 ‘수구다라니’의 범자본 전체 모습. 범자(산스크리트 문자)로 채워진 부적문 조각 한가운데에 금강역사로 보이는 불교신이 관리로 추정되는 이의 머리를 만지면서 축복을 내리는 듯한 도상이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노형석 기자           
         

이날 공개된 수구다라니는 현재 필사본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시기가 이른 다라니 부적으로 역사적 가치가 지대한 일급 유물이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돼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로 추정되어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다라니 관련 유물로 꼽힌다. 1919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당시 박물관 산하 고적 조사위원회의 위원 김한목(1872~1941)에게서 사들인 것을 해방 뒤 국립박물관 쪽이 넘겨받았으나 70여년간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수장고에 묻혔다가 수년 동안의 분석 및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이번에 처음 관객 앞에 신비스런 모습을 선보이게 됐다. 

         

수구다라니 유물들의 내력은 지난 2020년 12월 미술사가인 한정호 동국대 경주캠퍼스교수의 추적 연구로 처음 드러났다. 한겨레는 이와 관련해 당시 한 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기록들을 탐문한 끝에 박물관에서 100여년간 수구다라니 관련 유물들을 공개하지 않고 소장해온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을 단독보도(2020년 12월10일치 17면)로 세상에 알렸다. 한 교수는 한겨레 보도 뒤인 12월11일 한국미술사학회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경주 남산의 어제와 오늘’ 학술대회에서 관련 유물들의 전모와 내력 등을 밝힌 논고를 발표했다. 

         

          
           한자문장으로 채워진 수구다라니 부적문. 범자 수구다라니와 함께 내보이게 된다. 노형석 기자           
         

          
           수구다라니 경문이 들어있던 금동제 경합. 무기 든 신상이 측면 사방으로 오목새김되었다. 노형석 기자           
         

          
           수구다라니 경문이 들어있던 금동제 경합. 무기 든 신상이 측면사방으로 오목새김되었다. 노형석 기자           
         

수구다라니경은 원래 인도에서 산스크리트(범어) 문자로 쓰여졌던 밀교 계통의 염송용 부적 경전으로 ‘수구즉득다라니(隨求卽得陀羅尼)’를 줄인 말이다. 부처가 불교신인 대범천왕에게 전한 진리의 주문인 다라니를 범어 발음대로 외우는 즉시 바라는 바를 모두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인도와 티벳에서 나온 원본을 중국의 고승들이 번역해 동아시아의 한반도와 일본에 전했는데, 중국 당나라 때 보사유(寶思惟)가 693년에 한역한 ‘불설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신주경(佛說隨求卽得大自在陁羅尼神呪經)’을 비롯한 여러 한역본이 전하고 있다. 

         

다라니경은 8~9세기께 신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자로 된 경전을 몸에 지니고 주문을 외거나 탑과 무덤에 넣으면, 재액을 물리치고 복덕을 얻는다는 믿음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이땅에 널리 퍼져 조선시대까지 호신용 부적처럼 쓰였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태자 보천이 울진 장천굴(성류굴)에서 수구다라니경을 밤낮으로 염송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남 합천 해인사 길상탑에서 나온 통일신라시대 탑지에도 수구다라니경을 같이 넣었다는 문구가 보여 당대에 이 경전이 선조들 사이에서 복을 비는 부적으로 널리 활용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장에 나온 수구다라니는 두가지 종류다. 외우거나 옮겨쓰는 즉시 소원이 이뤄진다는 주문의 여러 내용을 한자와 고대 산스크리트 글자(범자)로 각각 따로 옮겨 적었는데, 불교의 신이 중생을 축복하는 도상과 연꽃 도상 등을 광물성 안료로 채색해 그려 넣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범자본 ‘수구다라니’는 너비 31.3㎝, 길이 44㎝의 직사각형으로 가운데 부분에 네모진 여백을 두고, 오른손에 금강저를 든 금강역사상이 관을 쓴 채 무릎 꿇고 앉은 사람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관을 쓴 사람은 발원한 관리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도상 옆 오른쪽에 발원자 이름으로 추정되는 먹글씨 ‘…叱知(질지)’가 쓰여 있다. 아직 두 글자의 정체가 명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으나, ‘질’(叱) 자는 신라 인명에 자주 쓰인 글자이고, ‘지’(知) 자는 이름 또는 존칭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한자본은 31×31㎝의 정사각형으로, 외곽 사방에 연화좌 위 정병이 배치된 도상을 그렸고, 주변에 다양한 법구와 연꽃 수염 등을 묘사한 게 특징적이다. 그림 자체로만 보면 중국, 티벳 등지의 수구다라니 부적의 그림과 큰 차이가 없으나 주문을 쓰고 그림을 그린 종이를 분석한 결과 한반도산 닥종이라는 사실이 확인돼 신라화가와 승려가 중국에서 전래된 부적의 주문과 도상을 옮겨쓴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신라 화가의 실물 그림은 5~6세기 신라고분 천마총의 천마도와 리움이 소장한 8세기의 대방광불화엄경의 보살도에 이어 세번째. 종이에 그려진 채색화로는 국내에서 가장 이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다라니경이 신라 최고의 다라니경 부적으로 알려졌으나 10여년 전 석가탑 내 묵서지편 기록이 발굴되면서 석가탑 다라니경이 고려시대 지진 피해로 탑이 붕괴되고 수리할 때 봉안됐을 것이란 견해가 확산되고 있어 이번에 공개되는 수구다라니가 앞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다라니 부적으로 등극할 가능성도 있다.

         

금동경합 사방 측면에 무기를 든 신장상의 갖가지 모습과 연꽃 등을 정교하게 새긴 뛰어난 금속공예품이다. 한정호 교수의 논고를 보면, 일제강점기인 1941년 구시 타쿠신이란 일본인이 간행한 ‘도설조선미술사’에 이 경합이 남산 출토품이며 ‘내부에 붉은 칠로 불보살상을 그리고 범어와 한자로 다라니를 쓴 종이가 들어있었다’고 소개됐다. 

         

          
           24일 언론에 공개된 특별전 전시장. 안쪽 중심 공간에 두 개의 진열장을 놓고 ‘수구다라니’의 범자본과 한자본, 두 부적을 넣었던 경합을 각각 선보였다. 진열장 공간 앞에는 수구다라니의 내용을 확대한 미디어영상이 펼쳐지고 있다. 노형석 기자           
         

          
           24일 언론에 공개된 특별전 전시장. 안쪽 중심 공간에 두 개의 진열장을 놓고 ‘수구다라니’의 범자본과 한자본, 두 부적을 넣었던 경합을 각각 선보였다. 진열장 공간 앞에는 수구다라니의 내용을 확대한 미디어영상이 펼쳐지고 있다. 노형석 기자           
         

          
           특별전 ‘수구다라니…’의 전시포스터.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특별전의 전시품은 단 석점이다. 보관함인 경합과 그 안에 들어있던 범어와 한자로 된 다라니 경문들만 한가운데 공간의 진열장에 전시되고 나머지 공간은 영상과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 촉각 다라니 그림 등의 체험공간으로 꾸려졌다. 박물관 쪽은 “신라 불교문화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만큼 다라니 유물 석점만 집중 소개해 학술적 성과와 유물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 했다”며 “전시도록 대신 지난 수년간의 연구와 보존복원 성과를 담은 학술조사연구자료집을 낸 것도 같은 취지”라고 밝혔다.

         

박물관 쪽은 수구다라니를 널리 알리기 위해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한다.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다라니, 소원을 말해봐’ 프로그램이 11월 21일~12월 12일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선착순 100명으로 진행한다. 옛 사람들의 소원이 담긴 수구다라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 감상 활동물을 받아서 나의 소원 카드를 쓰면서 다라니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경주/글 ·사진 노형석 기자 [email protected]




신라시대 매우 희귀한 자료 ㄷㄷ 복식 그림도 그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