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 족단의 충주 기원설을 보고 좀 더 공부하고 싶어서 강정훈 교수의 저서를 빌려서 읽어보는 중임. 꽤 일관적이면서도 탄탄한 내러티브를 재구성해놓아서 재미삼아서라도 한번 쯤 읽어볼만 하더라. 다만 꺼무에도 적혀있듯 충주 거수국은 고고학적으로 까고보니 마한 세력이더라 같은 부분이 존재하는지라 현 시점에서는 내러티브에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임. 애초에 2000년에 출판된 서적이니. 읽은게 이 책 한권밖에 없는 상황이라 반박 및 의문점에 대응 제대로 못할 점은 양해 부탁.


1 : 저자는 3개 족단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중요시되며 전승되었을 계보는 왜곡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고 제위 년도만을 수정하는 식으로 기년 수정을 시도함. 그 방식은 기록이 정확한 것으로 교차검증된 진흥왕과 약간의 오차만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증왕 대에서 자연스러운 수명과 자식을 몇살에 낳았을 지 그 정황증거 등을 고려하여 제위 상한선을 역산하는 방식. 그 결과 혁거세가 2세기~3세기 초, 탈해가 3세기 중반, 아달라가 3말 4초경, 첨해가 4세기 중엽, 미추~내물이 4세기 후반에 몰려있는 것으로 추정해냄. 저자는 이러한 재구성이 상당히 잘 맞아 떨어지나 3세기 말 ~ 4세기 초에 재위했을 아달라 이사금기 중국 사서에 3세기 중반 인물로 언급된 히미코가 등장한 점을 의문점으로 여기는데, 이를 당시 왜에 한동안 히미코를 계승한 여왕이 제위했을 가능성이 높고 일본 군주의 이름이 히미코를 제외하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원문에는 왜 여왕이라고 적혀있던 것을 중국 사서를 참고한 후대 사관이 히미코로 윤색했을 가능성을 생각함.


2 : 백제-신라의 전쟁 기사가 처음 등장하는 탈해 이사금대가 3세기 중반으로 내려오며 해당 전쟁이 실존했을 가능성이 삼국사기 연표보다는 높아지긴 했으나 역시나 탈해기부터 백제와 직접 충돌 가능할 정도로 신라가 진한 지역에 지배력을 굳혔을 가능성은 낮아보임. 하지만 김씨 왕계에서 중요한 구도갈문왕이 대백제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또한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완전한 사료 창작은 절대 아닐 것 같고 소백산맥 일대의 소국의 기록이 섞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음.


3 : 신라 왕계에 기록이 깊숙히 끼어 들어간 점을 미루어보아 박석김 삼성중 하나가 소백산맥 소국 당사자일 가능성이 높아짐. 그 가능성을 하나하나 분석해보자면 박씨는 여러 정황증거상 사로국을 최초로 세운 세력이 맞을 것으로 보이고 석씨는 탈해 신화를 보아하면 김해 혹은 바다를 거쳐서 울산과 경주 동부의 철산지에 최초 정착했을 확률이 높음. 따라서 남은 건 김씨밖에 없음. 기존 통설 상 김씨는 알영이랑 엮여서 경주 토착세력으로 많이들 해석했으나 알영 설화에서 지모신의 이미지를 제외하면 토착 세력이라 해석할 여지는 미미하니 알영과의 연관관계가 김씨가 외부 세력인 점과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을 저자는 주목함. 박씨의 분가가 소백산맥에 남아있던가 소백산맥에서 온 벌휴가 바다로 온 탈해의 이미지를 이용하기 위해 석씨를 자청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학설도 존재하나 저자는 김씨 토착설에 매몰되어 신빙성 낮은 가설을 주장한 것으로 일축함.


4 : 저자는 이에 더해 김알지 설화에 의문을 던짐. 신비한 출생을 빼고는 벼슬을 한게 전부인 김알지가 시조로 숭상 받는건 이상한 것 같다고. 차라리 초대 김씨 이사금인 미추가 시조 취급 받는게 저 자연스럽지 않냐고. 금석문에서는 성한왕, 즉 김세한이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타 지역의 왕이었던 성한왕을 시조로 숭상했고 김알지는 필요성에 의해 윤색된 결과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지 않냐고 주장함.


5 : 그럼 김씨 소국의 위치를 비정해야 하는데 여기서 소지 마립간기 시조의 출생지인 나을에 신궁을 건설했다는 기사를 주목함. 보통 나을은 혁거세 탄생지 나정으로 비정되는데 과거부터 비슷한 형태로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우물이라는 단어를 을로 등차시키긴 어렵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날이군, 나령군이라고 불린 영주 지역을 성한왕의 출생지로 보는게 맞지 않냐고 주장함. 소지마립간이 얽힌 파로 설화는 영주로 자주 행차한 증거라고 보면서. 다만 영주는 백제와의 직접 충돌이 적을 위치이다보니 발원지는 영주여도 소국 위치는 소백산맥 인근으로 보이는데 저자는 여기서 진흥왕기 충주가 국원으로 불렸고 서라벌 시민들이 사민된 점을 보며 충주 지역을 김씨 왕실이 중요시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며 충주 소국설을 제기함.


꽤 재밌는 가설이고 개인적으론 상당부분 타당하다고 여기나 충주를 콕 집어 지목하는 부분에서 증거가 많이 엷다고 느낌. 차라리 영주 비정 쪽이 논지나 증거가 더 탄탄해보였음. 아직까진 일정 부분은 심증적 확신까진 안듬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