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


고려사 > 권4 > 세가 권제4 > 현종 13년 > 7월 > 우산국 피난민을 호적에 편입하다

음력 1022년 7월 8일 병자,
양력 1022년 8월 8일

가을 7월 병자 도병마사가 아뢰기를, “우산국 백성 중에 여진에게 노략질 당하여 도망쳐온 자들을 예주에 거주하게 하고, 관청에서 밑천과 양식을 제공하여 영원히 호적에 편입하도록 하십시오.”라고 하자, 이를 허락하였다.



탐라국


고려사 > 권44 > 세가 권제44 > 공민왕 23년 > 7월 > 제주 토벌군을 편성하고 교서를 내리다

음력 1374년 7월 26일 기축,
양력 1374년 9월 2일

교서에 이르기를, “탐라국은 바다 가운데에 있으면서 대대로 우리에 공물을 바친 지 500년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목호인 석질리필사·초고독불화·관음보 등이 우리 사신을 살육하고..."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명실록 > 『태조고황제실록』권215 > 원나라 양왕의 손자를 고려 탐라로 보내다

음력 1392년 1월 14일

명하여 옛 원나라 양왕의 손자 애안첩목아를 고려로 보내게 하고 초 50정을 하사하여 여비로 삼게 하였다. 또한 고려에 명하여 그를 탐라국으로 보내 그 친족들과 같이 하게 하도록 하였다.


추가로 음력 1004년 3월 일본 이나바노쿠니에 도착하여 다시 돌아간 우산국인 11명 중 한 명인 절긍열과 헤어지면서 후지와라노 아리쿠니가 지은 송별시 중 일부임


고려 번도 중에는 신라국 우릉도인인 절긍열이라는 자가 있다. 그 글은 훌륭하지는 않지만 시편을 꽤 잘 알고 있어 헤어지는 날...


울릉도를 이미 멸망한 신라국 소속으로 간주하면서도 고려 번의 하나라고 한 점이 흥미로운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