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시대 헤이안쿄 성내에는 도지와 시지라는 두 절 외에는 결코 다른 절은 성내에 건설되는것이 허가되지 않았다. 현재 이는 천황가가 나라시대까지 융성하던 불교새력을 억제하고 신토와 천황의 권력을 높히기 위한 법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때문에 당시 헤이안쿄 성내에는 라쇼몽의 동쪽과 서쪽의 도지와 시지 말고는 사찰이 들어서지 않았다. 하지만 헤이안쿄의 외곽은 어땠을까?

당시 불교새력을 억제하려고 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천황가는 완벽하게 불교새력과 결탁하지 않는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의 300여년 넘게 일본 정권의 기틀을 잡아온 새력으로서 쉽게 단절하기 어려운 종교였기 때문. 때문에 천황가의 지원을 받은 사찰들 여러곳이 헤이안쿄 외곽지역에 세워졌으며, 그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것은 헤이안쿄 동교의 시라카와구에 존재했던 여섯사찰인 육승사(호쇼지, 손쇼지, 사이쇼지, 엔쇼지, 죠쇼지, 엔쇼지(앞의 엔쇼지와는 한자가 다르다.))였으며, 이중에서도 호쇼지는 일본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사찰이다.

1076년 시라카와 천황의 지원으로 건립된 호쇼지는 중앙의 팔각 목탑 1기를 중심으로 금당, 강당, 식당이 1렬로 배치되어있는 1탑 1금당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절의 규모는 동-서 약 220m,  남-북 약 330m로, 상당히 넓은 면적을 지니고 있었으며,(참고로 황룡사가 동-서288m, 남-북 281m다.) 금당에는 3장 2척(10m)의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했다고 한다.

특히 호쇼지의 팔각 목탑은 평면의 크기와 기록을 대비해서 측정해본 결과 약 80m라는 황룡사 9층목탑과 비견될 정도의 거대한 목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곳 일본에서 사라진 목탑들을 포함해도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건립이후, 수많은 시련이 호쇼지에 닥쳤다. 1185년에는 큰 지진이 헤이안쿄를 덥쳐, 아미타당과 삼면의 담장이 무너지고, 팔각목탑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1208년에는 탑이 벼락을 맞아 전소되어 재건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1342년과 1349년의 화재로 사실상 절의 전부가 소실되어 이때부터는 그저 소규모 사찰로서 사맥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기록에서 잠깐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게되는데, 1418년에 이미 심하게 황폐해진 모습으로 묘사되었다고 하며, 1468년 오닌의 난 중에 서군에 의해 불타버렸다.

이후 호쇼지가 있던 자리에는 동물원과 료칸이 들어서게 되며, 헤이안 시대의 위용은 전혀 남기지 못한체 역사속으로 쓸쓸하게 사라지게된다.

어느 일본 아마추어 모델러가 호쇼지 목탑의 3D 모델을 원래 자리에 CG복원해본 모습. 저 탑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교토 시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