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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 제1권 / 무신년-1488, 성종 19 윤1월

6일

큰 바다 가운데서 표류하였음.
이날은 날씨가 흐렸으나 풍파는 조금 그쳤으므로, 비로소 김구질회 등을 독려하여 조각이 난 돗자리를 기워서 돛을 만들고, 장대를 세워서 돛대를 만들고, 그전 돛대의 밑둥을 잘라서 닻을 만들어 바람을 따라 서쪽을 향하여 떠나갔습니다. 돌아다 보니, 큰 파도 사이에 물건이 있는데 그 크기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것이 물 위에 나타난 것은 기다란 행랑집과 같고, 거품을 뿜어 하늘을 쏘는데 물결이 뒤집히고 놀라서 움직였습니다. 사공이 배 안의 사람들에게 경계하여 손을 흔들어 말하지 못하게 하고, 배가 이미 멀리 지나간 후에 사공이 큰소리로 말하기를,
“저것이 바로 고래입니다. 큰 것은 배를 삼키고 작은 것도 배를 뒤엎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다행히 서로 만나지 않아서 우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였습니다.


12일

영파부의 경계에서 도적을 만났음.

이날은 잠깐 흐렸다가 잠깐 비가 오기도 하더니, 바다 빛깔이 도로 허옇게 되었습니다. 신시-오후 4시 전후에 큰 섬에 도착하였는데, 섬이 잇닿아 병풍처럼 되었습니다. 바라보니, 그 속에 배 두 척이 있는데 모두 거룻배를 매달고서 신의 배를 똑바로 향하여 왔습니다. 정보 등이 신의 앞에 죽 꿇어앉으며 말하기를,
“무릇 일에는 경상도 있고 권변도 있는 것이니, 청컨대 상복을 벗고 임시 변통으로 사모와 단령을 착용하고서 관인의 위의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은 반드시 우리를 겁적이라 비웃고 또 욕을 보일 것입니다.”
하였으나, 신은 말하기를,
“해상에서 표류하게 된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고, 여러 번 사지를 겪고도 다시 살아난 것도 하늘이 시킨 일이고, 이 섬에 도착하여 이 배를 만난 것도 하늘이 시킨 일이다. 천리는 본래 정직한 것인데, 어찌 천리를 어기면서 거짓을 시행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조금 뒤에 두 배가 점차 가까워져서 서로 만났는데, 한 배에 10여 명이나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검은 솜바지를 입고 짚신을 신었으며, 그중에는 손수건으로 머리를 싸맨 사람도 있었고, 대나무 잎으로 만든 삿갓과 종려 가죽으로 만든 도롱이를 입은 사람도 있었는데, 요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전부 중국 말이었습니다. 신은 그들이 중국 사람인 줄 짐작하고 정보를 시켜서 종이에 글을 써서 보내기를,
“조선국 신 최부가 왕명을 받들고 해도에 갔다가 부상을 당하여 급히 돌아가는 중에 바다를 지나다가 바람을 만나 표류해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이 어느 나라의 고을 땅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그 사람이 회답하기를,
“이곳은 곧 대당국-중국 절강성 영파부 지방입니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본국에 가려면 대당에 도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정보가 손으로 자기의 입을 가리켜 보이니 그 사람들은 먹을 물 두 통을 가지고 와서 주고는 노를 저어 동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신은 배 안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노를 저어 한 섬에 들어가서 의지하게 하였습니다.
또 배 한 척이 있어 거룻배를 달았으며 군인 7, 8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의복과 말소리는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았는데, 신의 배에 와서 맞이하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므로, 신은 또 정보로 하여금 앞서 한 말과 같이 대답하고 이내 묻기를,
“이곳은 어느 나라인가?”
하니, 그 사람은 그 섬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곳은 곧 대당 영파부의 하산이다. 바람과 수세가 좋으면 이틀 동안에 돌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다시 말하기를,
“타국 사람이 바람을 만나 사경을 헤매던 나머지, 다행히 대국의 지경에 도착되니 다시 살아날 땅을 얻게 된 것이 기쁘다.”
하고, 또 그의 성명을 물으니,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나는 중국의 임대이다. 네가 만약 대당으로 간다면 데리고 갈 것이니, 너에게 보화가 있으면 내게 주어야 한다.”
하므로, 신은 대답하기를,
“나는 봉명사신이요, 장사하는 무리가 아니다. 또 바다에 표류하여 물에 떴다 가라앉았다 한 뒤인데, 어떻게 보화가 있겠는가?”
하고 곧 쌀을 덜어 주었더니, 그 사람은 받고 나서 다시 말하기를,
“이 산에 배를 맬 때는 서북풍은 겁나지 않지만 다만 남풍이 좋지 않으니, 나를 따라와 배를 매라.”
하고, 신의 배를 인도하더니, 배 맬 만한 섬을 가리키면서,
“이곳이 배를 맬 만하다.”
하므로, 신은 그의 말대로 곧 가서 배를 매었는데, 과연 바람이 없었으며 온 섬 안이 배를 맬 만한 곳이었습니다. 그 서쪽 언덕에는 두 채의 초옥이 있었는데 포작한-어물을 절이거나 말리는 사람 집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배를 초옥 아래에 매었습니다. 배를 동승한 신의 일행은 오랫동안 굶주리고 목마르고 노고하고 잠자지 못한 끝에 밥을 얻어먹게 되고, 바람 잔 곳을 얻어 피로를 풀게 되었으므로, 서로 배 안에서 베개를 삼고 잤습니다. 
밤 2경쯤에 이른바 자칭 임대란 자가 그 무리 20여 명을 거느렸는데, 그들은 혹은 창을, 혹은 작도를 가졌고, 활과 화살은 없이 횃불을 잡고 옹위해 이르러 신의 배 안에 함부로 들어왔습니다. 도적의 괴수가 글로 써 보이기를,
“나는 관음불이라 네 마음을 환히 보고 있다. 네게는 금은이 있으니 곧 찾아보겠다.”
하므로, 신은 대답하기를,
“금은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애초부터 가지고 온 것이 없다.”
하였더니, 도적의 괴수는 말하기를,
“네가 벼슬아치라면 어찌 금은을 가지고 오지 않았겠는가? 내가 자세히 찾아보아야겠다.”
하였습니다. 당초 신 및 정보ㆍ이정ㆍ김중ㆍ손효자 등은, 제주도는 바다 밖의 땅이라, 갔다 오는데 일정한 기일이 없다고 해서, 사철 의복 몇 벌을 갖추어 갔었는데, 이때 와서 도적의 괴수는 곧 그 무리들을 큰소리로 불러서 신 및 배리들의 보자기 속에 있는 의장과 배 안 사람의 양식과 물건을 죄다 수색하여 그들의 배에 싣고 갔으니, 그들이 남기고 간 것은 오직 바닷물에 흠뼉 젖은 옷과 여러 가지의 서책뿐이었습니다. 도적 가운데 애꾸눈인 자가 있었는데, 더욱 악독하였습니다. 정보가 신에게 말하기를,
“도적이 처음 이르렀을 적에는 보기에 조용한 듯하였는데, 우리의 형세가 약한 것을 보더니 점차 큰 도적으로 변합니다. 청컨대 한번 후려쳐서 사생을 결단하도록 합시다.”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우리 일행은 모두 굶주리고 목말라서 거의 죽게 된 뒤에 도적에게 겁이나서 기운이 쑥 빠진 까닭으로, 도적이 이러한 형세를 이용하여 포악한 짓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과 서로 싸운다면 우리들은 모두 도적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행장을 모조리 주어서 살려 주기를 비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습니다. 도적의 괴수가 또 신이 가졌던 인신과 마패를 빼앗아 그의 소매 속에 넣으므로, 정보가 그 뒤를 따라가서 돌려 주기를 청했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신은 말하기를,
“배 안에 있는 물건은 죄다 가져가도 되지마는, 인신과 마패는 곧 나라의 신표라, 사사로이 쓸 곳이 없으니, 나에게 돌려 주는 것이 좋겠다.”
하니, 도적의 괴수는 인신과 마패를 돌려 주고 봉창-배의 창문을 나서자마자, 그 무리들과 뱃전에 죽 늘어서서 한참 동안 떠들고 있다가 배 안으로 도로 들어와서 정보의 웃옷과 바지를 벗기고 매질을 하였으며, 그 다음 작도로 신의 옷 매듭을 끊고 옷을 벗겨서 알몸을 만든 뒤, 손을 뒤로 젖히고 다리를 굽혀 결박하더니, 몽둥이를 가지고 신의 왼팔을 매질하여 7, 8번 때리고 난 뒤에 말하기를,
“네가 만약 생명을 아낀다면 얼른 금은을 내놓아라.”
하므로, 신은 큰소리로 부르짖기를,
“몸뚱이가 문드러지고 뼈가 가루로 될지라도 어느 곳에서 금은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였으나, 도적은 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신의 결박을 풀고 의견을 쓰도록 허용했습니다. 
신이 즉시 의견을 썼더니, 도적의 괴수는 노하여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리고는 정보를 가리키면서 큰소리를 지르고, 신을 가리키면서 큰소리를 지르고 나서 곧 신의 머리털을 끌어당겨 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달고는 작도를 메고 신의 목을 베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작도가 마침 오른쪽 어깨 위에 잘못 내려와서 칼날이 뒤집혀 위에 있게 되니, 도리어 다시 작도를 메고 신의 목을 베려고 하매, 한 도적이 와서 작도를 메고 있는 팔을 잡아 이를 저지시키므로 도적의 무리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러 크게 부르짖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때에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두려워서 본성을 잃고 달아나 숨어서 몸 둘 곳이 없는 듯하였는데, 다만 김중ㆍ최거이산 등만은 손을 모아 절하고 꿇어앉아서 신의 목숨을 살려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도적의 괴수가 신의 몸뚱이를 짓밟고,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공갈 위협하고는 그 무리들을 이끌고 나가면서 신의 배의 닻ㆍ노 등 여러 가지 기구를 끊어서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들의 배로 신의 배를 끌어 큰 바다 가운데 놓은 다음 그들은 배를 타고 도망해 버렸는데, 밤은 이미 깊었습니다.


16일

우두의 외양에 이르러 정박하였음.
이날은 흐리고 바다 빛깔은 검붉었으며 속은 완전히 탁하였습니다. 서쪽으로 바라보니, 연한 산봉우리와 겹친 산봉우리가 하늘을 버티고 바다를 둘러쌌는데 인가의 연기가 있는 듯하였습니다. 동풍을 타고가 이르니, 산 위에 봉수대가 죽 늘어서 많이 있었으므로, 다시 중국의 경계에 도착한 것이 기뻤습니다. 오후에는 풍랑이 너무 세고 비가 자욱하게 내리는데, 배는 바람이 모는 대로 잠깐 동안에 갑자기 표류하여 두 섬 사이에 이르러 언덕을 따라서 지나가니, 중선 6척이 죽 늘어서 정박한 것이 바라보였습니다. 정보 등이 신에게 청하기를,
“전일 하산에 이르렀을 때엔 벼슬아치의 위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도적을 초래하여 거의 죽음을 면하지 못할 뻔하였으니, 지금은 마땅히 권도를 따라 관디를 갖춰서 저들의 배에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너는 어찌 의리를 해치는 일로 나를 인도하는가?”
하니, 정보 등은 말하기를,
“지금 죽음이 박두했는데, 어느 여가에 예의를 차리겠습니까? 우선 권도로 살길을 취한 후에 예절로 상사를 치르더라도 의리에 해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신은 이를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상복을 벗고 길복을 입는 것은 효도가 아니고,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은 신의가 아니다. 차라리 죽는 지경에 이를지언정 효도와 신의가 아닌 일은 차마 할 수 없으니, 나는 마땅히 정도로 순응하겠다.”
하였습니다. 안의가 와서 청하기를,
“내가 우선 이 관디를 착용하여 벼슬아치처럼 보이렵니다.”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안 된다. 저 배가 혹시 전일에 만났던 도적과 같다면 오히려 가하거니와, 만약 좋은 사람의 배라면 반드시 우리 무리를 몰아서, 관부에 나아가 공사를 받을 것인데, 너는 장차 무슨 말로 답변하겠느냐? 조금이라도 혹시 정직하지 못하면 저들은 반드시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니, 정도를 지키는 것보다 못하다.”
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이른바 여섯 척의 배가 와서 신의 배를 둘러쌌는데 한 배에 8, 9인이 있었고, 그들의 의복과 말소리는 또한 하산에서 만났던 해적과 같았습니다. 글을 써서 신 등에게 보이기를,
“보아하니 그대들은 다른 나라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 온 것이지?”
하므로, 신은 정보를 시켜 또한 글을 써서 대답하기를,
“나는 조선국 조신으로 왕명을 받아 해도를 순찰하고, 친상을 당하여 급히 돌아가면서 바다를 건너다가 바람을 만나 이곳에 왔는데, 이 바다가 어느 나라의 지경인지 알지 못하겠소.”
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이 바다는 곧 우두의 외양으로서, 지금은 대당국 태주부 임해현의 경계에 예속되어 있소.”
하였습니다. 정보가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키니 그 사람이 물통을 가져와서 주고, 또 북쪽에 있는 산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 산에 샘물이 있으니, 그대들이 물을 길어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소. 그대들에게 호초가 있으면 우리에게 두세 냥 정도 보내 주오.”
하므로, 신은 대답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호초가 생산되지 않으므로, 애초부터 가지고 오지 않았소.”
하니, 그 사람들은 마침내 노를 저어서 신의 배를 포위한 것을 점점 풀어 뒤로 물러가 죽 늘어서서 닻을 내리므로, 신의 배 또한 언덕을 의지하여 정박한 다음 안의ㆍ최거이산ㆍ허상리 등에게 명령하여, 배에서 내려 산에 올라 인가를 바라보게 했더니, 과연 이것이 육지와 잇닿은 곳이었습니다.


17일

배를 버려두고 육지에 올라갔음.
이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날이 샐 녘에 이른바 여섯 척 배가 좌우로 옹위하고 와서 신 등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을 보니 호인이요. 나를 따라갑시다. 그대들에게 기이한 물건이 있으면 조금만 나에게 보내 주오.”
하므로, 신은 대답하기를,
“바다에 표류한 지 이미 오래라, 가졌던 물건은 모두 바다에 버렸소. 만약 우리의 살 길을 지시해 준다면 타고 온 배와 노는 모두 그대들의 소유로 하도록 하겠소.”
하고, 이내 인가가 먼 곳에 있는가 가까운 곳에 있는가를 물으니, 그중의 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은 관부에 가까우니 그대들이 가려면 무방할 것이오.”
하고, 한 사람은 말하기를,
“앞으로 1리만 지나가면 곧 인가가 있을 것이오.”
하고, 한 사람은 말하기를,
“여기는 인가가 먼 곳이니,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오.”
하였습니다. 신은 또 관청으로 가는 길이 먼가 가까운가를 물으니,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태주부는 이곳에서 180리나 떨어졌소.”
하고, 한 사람은 말하기를,
“150리요.”
하고, 한 사람은 말하기를,
“240리요.”
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이 서로 어긋났으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시끄럽게 하면서 신의 배에 다투어 들어오더니, 눈에 보이는 것은 비록 조그마한 물건일지라도 억지로 빼앗아가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신 등에게 말하기를,
“우리와 같이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땅히 성을 낼 것이오.”
하였습니다. 안의는 배를 버려두고 그 사람들의 배에 타고서 그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기를 청하고, 이정은 그중 한 사람을 쳐 죽여서 그들을 물리치려고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너희들의 계책은 모두 그릇된 것이다. 저들을 살펴보건대, 그 말이 성실하지 못하고 물건을 겁탈한 것 또한 심하니, 진실과 허위의 얕고 깊은 것을 알 수가 없다. 
저들이 전일 하산 해적의 종류와 같다면, 안의의 계책대로 저들을 따라가면 저들은 반드시 노를 저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이르러서는 우리를 물에 빠뜨려 죽이고는 그 자취를 없애버릴 것이고, 
저들이 혹 어선이나 방어선이라면, 이정의 계책에 따라 쳐 죽이면 저들은 반드시 그들이 한 짓은 숨기고 도리어 우리를 이국인이 와서 폭력을 써서 사람을 죽였다 할 것이니, 그렇다면 대국의 변경이 시끄럽게 되어 우리를 무함하여 도적으로 인정할 것이다. 말도 서로 통하지 않아서 변명하기가 어렵게 된다면 반드시 모두가 변장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니, 너희들의 계책은 모두 자기가 죽을 길을 취하는 것이다. 임기응변의 말을 하여 그 형세를 살펴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는, 신이 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바다를 건너온 지 시일이 오래되어 배고프고 목말라서 피곤함이 극도에 달했으니, 위태한 목숨이 겨우 한 오리의 실처럼 간신히 유지하고 있소. 청컨대 밥을 지어 먹여 시장기를 면하고 난 후에 같이 가기로 하겠소.”
하니, 그 사람들은 다시 말하기를,
“그대들은 조금 머물렀다가 천천히 가기로 하오.”
하고는, 즉시 노를 저어 2, 3리 가량 조금 물러갔다가 뒤돌아와서 신의 배를 둘러싸고 정박했는데, 비가 내린 때문에 모두 선창 속에 들어갔으므로, 거동을 바라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신은 같이 배를 탄 사람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들의 언어와 행동거지를 보니, 매우 거칠고 주책이 없는데, 이 산을 보건대, 이미 육로에 잇닿아 있으므로, 반드시 인가에 통할 것이니, 이때에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의 목숨은 그들의 손에 달려 있어 마침내는 반드시 바다 한 모퉁이의 귀신이 되고 말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배리 등을 거느리고 먼저 배에서 내리고 여러 군인들도 잇따라 내려서 비를 무릅쓰고 숲 사이를 뚫고 도망해 두 고개를 지났는데, 고개는 모두 바다를 베고 있으며 돌이 용도-양쪽에 담을 쌓은 길처럼 있었습니다. 6, 7리를 가서 한 이사-마을의 지신을 받들기 위해 마련한 사당을 찾았는데, 신은 배리와 군인들에게 말하기를,
“이러한 생사의 괴로움을 같이함은 골육의 친족과 다름이 없으니, 이로부터 서로 보호한다면 몸을 보전하여 돌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만약 환란을 만난다면 함께 구조하여 한 그릇의 밥을 얻으면 나누어 먹고, 질병이 있으면 함께 구조하여 한 사람도 사망함이 없어야 될 것이다.”
하니, 모두 말하기를,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신은 또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본디 예의의 나라이니, 비록 표류하여 군박한 중에 있더라도, 또한 마땅히 위의를 보여 이 땅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예절이 이 같은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무릇 도착하는 곳에 배리들은 나에게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고, 군인들은 배리에게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아, 틀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또 마을 앞에서든지 혹은 성안에서든지, 떼지어 와서 구경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읍하는 예의를 차리고 감히 함부로 쏙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니, 모두 말하기를,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 마을에 이르니, 마을 안의 남녀노소가 다투어 신 등을 괴이하게 여겨, 구경꾼이 담처럼 둘러서 있었습니다. 신이 종자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 읍하니, 모두 소매를 합치고 몸을 굽혀 답례했습니다. 신은 즉시 조선에서 온 이유를 알리니, 용모가 보통 사람과 다른 두 사람이 있어서 신 등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이 조선국 사람이라면 무슨 이유로 우리나라 경계에 들어왔소? 당신들이 혹시 도적질 하는 사람인지, 혹시 진공하는 사람인지, 혹시 바람을 만나 정처 없이 표류해 온 사람인지, 낱낱이 사유를 써 오면, 본국으로 체송-여러 곳을 거쳐서 전해 보냄 하겠소.”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나는 본디 조선국 신하로 왕명을 받들고 해도에 갔다가 친상을 당하여 급히 돌아가던 중, 바다를 건너다가 바람을 만나 표류하게 되어 해안에 도착하여 배를 버려두고 육지를 따라 인가의 연기를 바라보고 찾아 왔으니, 원컨대 대인께서는 관부에 알려서 거의 죽어가는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하고, 곧 가졌던 인신ㆍ관디ㆍ문서를 그들에게 보이니 그 두 사람은 보고 나서, 신의 앞에 진무ㆍ배리 등이 차례로 늘어 꿇어앉고, 말단 군인들도 차례로 부복한 것을 가리키면서 신에게 말하기를,
“귀국이 예의의 나라임을 들은 지 오래였는데, 과연 들은 바와 같습니다.”
하고 곧 가동을 불러 미장과 다주를 가져다 접대케 하는데, 군인들에게까지 두루 미쳐 마시는 대로 맡겨 두었습니다. 마을 앞의 불당을 가리키면서,
“당신들은 이 불당에 가서 편히 쉬시오.”
하므로, 신은 불당에 이르러 젖은 옷을 벗어서 바람을 쏘였습니다. 얼마 후에 그 두 사람은 또 밥을 지어 와 접대했으니, 과연 모두 충후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관직과 성명은 잊어버렸습니다. 조금 후에 그 두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당신들이 떠난다면 당신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리겠소.”
하므로, 신은 묻기를,
“좋은 곳이 몇 마을이나 되오?”
하니, 그 두 사람은 속여서 말하기를,
“두 마을이 있소.”
하였습니다.
“그 지명은 무엇이오?”
하니,
“서리당이오.”
하였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길이 진흙길이고, 때가 또 저물어 가는데 어찌하겠소?”
하니,
“가는 곳이 멀지 않으니 근심할 것은 없소.”
하였습니다. 신은 그 말에 따라 종자들을 거느리고 길을 떠나니, 
마을 안 사람들이 혹은 몽둥이와 칼을 가지고, 혹은 징과 북을 쳤습니다. 앞길에서 그 징과 북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큰소리를 지르면서 돌진, 좌우 전후를 옹위하여 차차로 번갈아 호송했는데, 앞마을에서도 뒷마을에서도 다 이와 같이 하였습니다. 50여 리를 지나니 밤이 벌써 깊었습니다.


실화 그 자체인 표류기 중에서 초반부가 ㄹㅇ 스펙타클한 듯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