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드라마의 잘못된 묘사, 위인전이나 어린이용 만화를 통해 순화되거나 각색(?)된 묘사를 통해 원균에 대해 '그냥 그저 그랬던 인물' 정도의 평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난중일기를 비롯한 실제 기록들을 살펴보며 그런 묘사들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순신 장군은 분명 우리 역사의 성웅이시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도 불세출의 영웅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내용이 꽤 많은데 이순신 장군은 인물평에 대단히 엄격했다. 이순신 장군이 그런 엄격함으로 비판받지 않는 것은 스스로에게는 남들에게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했기 때문이다. 좌우간 그런 엄격한 인물평을 내리는 이순신 장군이 일기에 남긴 원균에 대한 묘사 일부를 보자. 이하 일기 내용은 나무위키에서 얻었다.



"원 수사가 와서 보았다. 그 음흉함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1593년 2월 23일


"김해강 아래쪽 독사이항으로 향하는데 우부장(김득광)이 변고를 알려왔으므로 여러 배들이 돛을 달고 급히 가서 작은 섬을 에워싸고 보니 경상 수사 군관의 배와 가덕 첨사(전응린)의 사후선(척후선) 등 2척이 섬에서 들락날락하면서 태도조차 수상하므로 묶어서 원 수사에게 보냈던 바, 수사가 크게 성을 내는 것은 그 본의가 군관을 보내어 고기 잡는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오는 데 있었던 까닭이다."

-1593년 2월 28일


"선전관 박진종(朴振宗)과 선전관 영산령(寧山令) 복윤(福胤)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같이 왔다. 그들에게서 명나라 군사들의 하는 짓을 들으니 참으로 통탄스러웠다. 내가 우수사의 배로 옮겨 타고 선전관과 이야기하며 술을 두어 순배 나누고 있을 때 영남 수사 원균이 와서 술주정을 부렸는데 온 배 안 장병들로 분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속이고 망령됨은 말할 길이 없다."

-1593년 5월 14일


"원 수사가 허위 내용으로 공문을 돌려 대군을 소동케 하였다. 군중에서조차 속임이 이러하니 그 고약스러움을 말할 길이 없다."

-1593년 5월 21일


"경상 우수사와 정 수사가 한꺼번에 와서 적을 토벌할 일을 의논하는데 원 수사의 하는 말은 극히 흉측하고 말할 수 없는 흉계이다. 이러하고서 일을 같이 한다면 뒷걱정이 없을까?"

-1593년 7월 21일


"원균이 포구에서 수사 배설(裵楔)과 교대하려고 여기에 이르렀다. 교서에 숙배하라고 했더니 불평하는 빛이 많더라고 한다. 두세 번 타일러 억지로 행하게 했다고 하니 너무도 무식한 것이 우습기도 하다."

-1595년 2월 27일


"늦게 충청우후 원유남(元裕男)이 한산에서 와서 원의 못된 짓을 많이 전하고 또 도(道)와 진(陣)에 속한 진중의 장졸들이 모두 다 (원균을) 배반하므로 앞으로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1597년 5월 5일


"(전략) 이경신(李敬信)이 한산에서 와서 원흉(元凶)의 일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였다. 또 말하기를 그가 데리고 온 서리(書吏)에게 육지로 가서 곡식을 사오라며 내보내 놓고는 그의 처를 겁탈하려고 하자 그 여자가 악을 쓰며 듣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고함을 질렀다고 하였다. (중략) 원이 온갖 계략을 다 써서 나를 모함하려 하니 이 역시 운수 탓인가. 그가 바치는 뇌물 짐이 서울로 가는 길을 연달아 잇고 있으면서도 날이 갈수록 나를 헐뜯고 있으니 그저 때를 잘못 만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1597년 5월 8일



이건 진짜 극히 일부다. 난중일기를 읽다 보면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원균을 싫어했는지 체감이 되며 보면 알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원균에 대한 호칭이 비하적으로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거지 같은 상황에도 원 수사, 경상 우수사 등 직함으로 써주는 등 점잖게 표현했으나 1595년부터는 그냥 원균이라고 이름만 두 글자 적었고 1597년부터는 '원' 이라고 성만 달랑 적어놓는가 하면 아예 원흉, 흉측한 자라 써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이름을 막 부르지 않았으며 이렇게 이름을 막 부르거나 성만 적는 건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상대로나 있는 일이었다.


뭐 원균의 행동은 무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았기에 욕 먹어도 싼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혐오스러웠으면 어쨌든 관직에 있는 사람을 이렇게 적었을까. 특히 원흉이나 흉측한 자라는 호칭은 한자로 써놔서 점잖아 보이는 거지 현대 한국어로 풀면 '개X같은 X발 원가놈' 수준의 쌍욕에 가까운 말이다. 


이런 인간이랑 1592년부터 1597년까지 마주하며 골치를 썩였을 것을 생각하면 이순신 장군은 밖으로는 일본군과 싸웠고 안으로는 원균 같은 내부의 적들과 싸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끝내 나라를 지켜냈으니 성웅이라 불리는 것일테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에게 있어 너무 가혹한 일들의 연속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