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리학이란 뭘까? 


유령을 연구하고 텔레파시를 측정하는 학문이 있다면 믿겠는가? 놀랍게도 이 학문은 현실에 존재하는 학문이다. 바로 초심리학이라고, 거창한 이름까지 지닌 학문이시다. 역사도 깊어서 뿌리를 따지자면 180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이 해괴망측한 학문의 정의는 뭘까? 

나도 모른다. 

정확히는, “초상현상” (영어로 진짜 paranormal 이라고 부른다) 혹은 “초자연현상” (phychical phenomena) 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범위도 꽤나 넓어서, 최초의 초심리학 연구기관인 초자연현상연구회에서는 초심리학의 연구 과제를 예언, 염력, 텔레파시, 유령, 등으로 폭넓게 분류했다.아무튼 이상한 현상이면 다 연구한다는 사이비 과학으로 보면 되시겠다. 

초심리학의 시작

초심리학의 시작을 찾아보려면 우선 1800년대 심령주의 (spiritualism) 를 알아야 한다. 심령주의는 일종의 믿음이자 사상으로, 사후세계와 유령의 존재를 믿고 영매들을 통해 교령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그런 믿음이다.

당연하게도 이 힙스터스러운 믿음은 딱히 크게 붐이 오진 않고 한구석에 짜져있었는데, 1849년즈음 이 판도를 바꿀 인물이 오게 되니…



폭스 자매들의 사진.


폭스 자매들 (Fox sisters) 이다.


돌아이같은 행동을 일삼던 이 자매들은 리아 폭스, 매기 폭스, 케이트 폭스 세 명으로, 어느 날, 이 자매들의 엄마가 집 안에서 계속 노크 소리가 들린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단다. 그 직후, 이 자매 중 두 명인 케이트 폭스와 매기 폭스는 노크 소리를 듣고 “영적 능력” 을 각성하여 교령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자매가 물어보면 유령이 노크를 통해 네, 아니요를 대답하는 식으로.


자매들은 이 기현상이 계속되자 뉴욕에 가서 공연을 하기로 결정한다. 실제로 1849년에 뉴욕 중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등, 꽤나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사람들은 이 자매들의 교령회를 보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심령주의 붐의 시작을 불러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 또한 영매이며, 사후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몇 명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책상을 들어올렸고, 죽은 알베르트 아우구스트의 "유령" 을 소환해서 빅토리아 여왕의 별명을 알아맞추기까지 했다.


심령주의의 열기는 엄청나게 강력해서, 1888년 폭스 자매들이 모든 교령회가 사실상 트릭을 이용한 사기였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나서도 여전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열기에 경도된 것은 대중만이 아니었으니...


과학자들이 열광하다



SPR의 로고.


1882년, 영국심령주의협회 건물에서는 엄청난 회의가 열리게 된다. 바로 이 심령주의에 관심이 간 과학계 인사들이 첫 연구조직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회의이다. 정확히는, 트리니티 대학의 윤리철학 교수였던 헨리 시그윅을 비롯해서 순수한 과학적 열망으로 심령주의 및 초상현상들을 살펴보고자 했던 과학자들이 모여 회의를 연 것이다. 몇 번의 의논 끝에 세계 최초의 초심리학 연구조직이 생겨나게 되니, 그 이름은 바로 SPR, Society of Psychical Research (초심리학연구협회) 이다. 놀랍게도 이 조직은 아직도 살아있다.

심령주의가 그 절정에 달했던 때에 설립된 조직답게, SPR은 "초심리학" 보다는 심령현상에 더더욱 집중했다. 이들은 우선 유령이라는게 정말로 존재하는지, 유령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소통하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데이터 수집에 주력했고, 여러가지 의미로 광범위한 조사를 하게 된다.



1. 초심리학연구협회 학술지. 2. "생자의 환령"


우선, 초심리학연구협회는 학술 저널을 출간했다. 이 저널에서는 당연하게도 초심리학적 연구와 그 결과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여러 부 만들어진 저널은 여러 곳을 돌며 초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함을 세상에 알렸다. 또한, "Census of Hallucinations" (환상통계조사) 프로젝트를 실시해서 영국 전역의 사람들이 어떤 환상을 보았는지, 그 내용은 어떠하였는지, 얼마나 구체적이었으며 얼마나 "우연하게 일어나기 어려운지" 에 대한 정보를 조사했다. 

몇 차례의 조사 이후에는 연구집 또한 출간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Phantasms of the Living" (생자의 환령) 일 것이다. 말 그대로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이 겪은 환상을 조사한 이 연구집은, 여러 귀신과 심령의 목격 사례를 언급하며 "우연-확률 이론" 을 주장했다. 그 논지는 대략 이렇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사 및 주변 일들과 너무나도 자세하게 연관된 환령을 볼 때가 있다. -> 이런 현상은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일어났다. ->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자세한 환영이다. -> 영혼은 존재할 수도 있다.

지금 보면 어디 유튜브 구석 오컬트학자가 얘기할법한 유사이론이지만, 당시에는 이 내용이 책으로 출판될 정도로 연구된 시점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여기에 설득당했고, 대부분의 과학계 인물들은 당연히 이 이론을 뒤지게 깠다. 당시 출판된 서적의 한 구절을 보도록 하자.

Every generation, in its own way, seeketh a sign, and the spiritualists believe that a sign has been given; that the door is opened; the veil lifted; the silence of the ages broken by voices from the Beyond. 
- "If a man dies, shall he live again?" Job XIV 14. A brief history and examination of modern spiritualism" pg. 266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라이까 : 현대에 존재하는 심령주의의 역사와 분석" 이라는 책에 나온 말이다. 에드워드 클로드라는 인류학자가 쓴 책인데, 저 구절을 읽어보면 말 그대로 초심리학자, 즉, 심령주의자들은 자신이 숨겨진 지식을 찾았고 선구자라는 믿음에 빠져있다고 까는게 보인다. 그러니까, 이 당시에도 주류 학계에서는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을뿐더러 먼지나도록 맞은 학문이 바로 초심리학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때문에 SPR도 뒤지게 까였다.

이 이후로 딱히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 한 SPR은 서서히 시들어가다가 1900년대가 되자 대부분의 주요 멤버들이 은퇴한 상태가 된다. 그렇게 반쯤 시체 상태로 살아가던 이 초심리학은 어느 날 완전히 다른 곳에서 생명을 얻는데...

초심리학의 중심지, 미국이 되다

그렇다. 무언가가 모이는 곳 하면 빠질 수 없는 미국에서 또 초심리학이 떠오르게 된다. 



J. B 라인과 듀크 대학 동료들.


무려 식물학자이자 하버드 대학 심리학부 졸업생이라는 개쌉오버스펙을 가진 상상남자 J. B 라인이라는 사람이 초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식물학자라는 직업을 조금 희생하면서까지 심리학 연구에 전념하는데, 그 도중 윌리엄 맥두걸이라는 듀크 대학 심리학 교수와 친분을 가지게 된다.

이 인맥을 기회삼아 몇 번의 대화를 한 그 둘은, 기어코 듀크 대학에 들어가 초심리학 연구조직을 하나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1930년 그것이 실행되어 나온 결과가 바로 듀크 대학 초심리학 연구소 (The Duke Parapsychology Laboratory) 이다. 라인은 우선 연구팀을 꾸려서 초자연적 현상을 측정할 정확한 방법론을 만들었고, 연구소의 연구과제 또한 정했다.

듀크 대학 초심리학 연구소는 SPR과 달리 심령현상보다 초심리학적 능력들의 분석에 더욱 집중했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염동력, 텔레파시, 예언, 투시 등이 전부 이 연구소의 연구과제였다. 이를 위해서 라인과 맥두걸은 뼈대있는 연구를 하는 일에 가장 집중하게 된다. (물론 여론을 가꾸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듀크 대학 자료실을 보면 무려 칼 융과 라인이 주고받은 친목 편지가 남아있다.)

가장 유명한 실험으로는 역시 제너 카드 실험이 있겠다. 혹시 이 문양을 본 적이 있는가?



제너 카드.


제너 카드란 이 5개의 문양이 그려진 카드를 5개씩 섞어서 만든, 25장의 카드로 이루어진 실험 도구이다. 라인은 이 카드들을 이용해서 ESP, 즉 초감각 능력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 방법이 뭐고 하니...



실험을 하는 사진.



바로 무식하게 카드 맞추기만 몇 만번씩 하는 것이다. 

제너 카드 실험은 실험자와 피험자 사이에 장막을 두고, 실험자다 뽑은 카드를 피험자가 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정말로 그게 다다. 이 실험의 정확도와 피험자 범위를 높히기 위해 라인은 별 짓거리를 다 했는데, 듀크 대학 물리학부와 협업해서 카드 섞는 기계를 만들거나 홍보 가능한 미디어를 이용해 실험 참여자 모집 어그로를 끄는 등 광범위한 노력을 했다.

여기서 "어그로" 라고 언급하는 이유는, 진짜로 듀크 대학 초심리학부가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이다. 다른 연구단체와 다르게, 듀크 대학 초심리학부는 연구결과를 학술 잡지가 아닌 다른 잡지 등에도 출판했는데, 대부분 "나에게도 예지 능력이 있을 수 있다??? 삐슝빠슝뿌숭" 식의 내용으로 내놨다.



당시 출판되었던 잡지 중 하나. 왼쪽 중하단에 "E.S.P. Do You Have It?" 이라고 써진 것이 보인다.


제너 카드 실험은 무척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모든 초심리학 실험 도중 가장 메이저한 실험이었던 만큼, 완료되자마자 초심리학계에 큰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1934년, 초심리학 연구소 설립 4년 이후, J. B. 라인은 "Extra-Sensory Perceptions" (초감각적 인지능력) 이라는 연구집을 출간한다. 이 연구집은 그 때가지 진행했었던 제너 카드 실험의 모든 결과를 종합해 나온 결론과 분석이 들어있었다.

라인이 연구하던 중 단 두 개 정도의 "특별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A. J. 린즈메이어와 허버트 피스라는 피험자였는데, 이 두 명의 사람들은 놀랍게도 8705번의 실험 중 3049번의 카드를 정확하게 맞추거나, 25번 하면 10번을 무조건 맞추는 등, 진짜로 초능력이 존재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이 책에서, 라인은 이 둘의 사례를 이용해서 나름대로 이 일이 불가능학 확률을 계산했고, 결론적으로 장거리 텔레파시는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그 내용을 나타내는 사례가 매우 적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ㅈㄱㄴ


당연하게도 주류 과학계는 라인을 다시 먼지나게 두들겨팼다. 그 내용 중 하나는 라인의 제너 카드 실험이 실질적 문제가 많았다는 주장이었다. 실험 도중 카드 뒷면이 어딘가에 비춰보이거나, 정황상 실험자가 피험자에게 데이터 조작을 위해 정보를 알려줬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명의 사람들에게서 부적절한 실험에 관련된 증언이 나오기도 했었다. 프린스턴 대학의 W. S. 콕스는 아예 실험의 재현가능성을 보기 위해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모방했고, "134명에게 25,064번 시도를 했으나, 결과가 라인의 실험과는 완전히 다르다" 는 점을 지적했다.

라인은 그 이후에도 염동력 실험, 예지 실험 등을 지속했었지만, 그리 큰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염동력 실험은 제너 카드 실험과 유사하게 "주사위를 던지면서 나오게 할 숫자를 상상하는" 행위를 엄청 반복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꽤나 관심을 끌었지만, 현대에는 똑같은 주사위 몇 개만을 계속해서 사용했다는 점에서 실험의 정확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게 듀크 대학 초심리학 연구소는 1965년, 라인이 은퇴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다시 시체가 된 초심리학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활하게 되는데...

현대 초심리학

사실 은퇴하고 나서도, 라인은 초심리학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1969년, J. B. 라인은 초심리학협회 (The Parapsychological Association) 을 설립하게 된다. 이 조직은 설립 이후 미국 과학진흥협회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살아있다.)



초심리학협회의 로고.


그리고 1970-1980년, 뉴에이지 운동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뉴에이지 운동을 들어본 사람들도 있을건데, 대충 오컬트나 심령현상 이런 것들에 대한 인식이 대중으로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보면 된다. 


여하튼, 이 분위기를 따라 초심리학도 떡상하기 시작한다. 많은 초심리학자들이 아직 살아있던 초심리학 기관, 특히 초심리학협회 아래로 모이기 시작한다. 초심리학협회 또한 국제적 협력과 네트워크 형성을 목표로, 다양한 학자들을 모으고 내부 회원 구조를 설립한다. 


초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일종의 융합학문으로 발전해나가는데, 수면학습이나 가사상태 체험, 그리고 전통적인 심령에 대한 연구들을 개별적인 인물들이 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서, 1967년, 버지니아 대학교에는 Division of Perceptual Studies (인지연구과) 가 설립되고, 초심리학과 생물학, 신경학적 방법을 이용해서 "가사 상태" 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 분과는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현상유지 상태가 몇 년이 지난 것이 바로 현재의 초심리학이다. 다른 조직도 여럿 나오고 이론도 나왔지만 딱히 큰 일은 없었다. "뼈대 있는 사이비 과학" 이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오늘은 제너 카드를 맞춰보면서 자신의 안에 있는 타입-블루의 소질을 깨워보는건 어떨까?

아님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