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당의 난


명종파의종파
명종-고려국왕 왕호
서북면병마판사 행영병마 겸 중군병마판사 정중부
대장군 전중감 겸 집주 이의방
장군 이의민
산원 박존위
남로선유사 이춘부
남로선유사 두경승
그 외 지지자들
의종-전 고려국왕 왕현
동북면병마사 간의대부 김보당
동북면지병마사 한언국
남로병마사 장순석
남로병마사 유인준
서해도병마사 배윤재
녹사 이경직
남쪽 지방의 많은 고을 수령들
그 외 지지자들


고려사 > 권128 > 열전 권제41 > 반역 > 정중부 > 정중부 등이 김보당의 반란을 진압하다

동북면병마사 간의대부 김보당은 담력이 있었는데, 정중부와 이의방이 이를 꺼림칙하게 생각하였다. 다음 해, 김보당이 정중부·이의방을 토벌하고 의종을 다시 세우려고 녹사 이경직·장순석과 함께 모의하고서 장순석·유인준을 남로병마사로 임명하고, 배윤재를 서해도병마사로 임명하여 군사를 내게 하고, 동북면지병마사 한언국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서로 호응하는 작전을 세웠다. 

장순석과 유인준 등이 거제로 가서 의종을 받들고 계림에 있도록 하였다. 

정중부·이의방이 이 소식을 듣고 장군 이의민, 산원 박존위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서둘러 남로로 가도록 하고, 또 군사를 서해도로 파견하여 반란을 저지하게 하였다.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권12 > 명종광효대왕1 > 명종 3년 > 9월 > 김보당의 무고에 따라 문신들이 많이 처형되다

음력 1173년 9월 미상

9월. 한언국을 체포하여 죽였다. 안북도호부에서는 김보당과 이경직 등을 잡아 개경으로 보냈는데, 이의방은 영은관에 있으면서 죄를 물어 조사하고 저자에서 그들을 죽였다.


고려사 > 권100 > 열전 권제13 > 제신 > 두경승 > 두경승이 김보당의 난을 진압하다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이 반란을 일으키자 남쪽 지방도 모두 호응하니, 이의방이 그의 종형인 낭장 이춘부와 두경승을 남로선유사로 임명하였는데, 이춘부는 성품이 포학하여 고을의 수령들을 많이 죽였다. 두경승이 조용히 일러 말하기를, “명령을 받던 때에는 변방의 진들이 반역을 도모하고 주·군들도 호응하여 화란이 끊이지 않아 평정하기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공의 위엄과 덕에 힘입어 괴수가 이미 섬멸되었고, 우리 군사가 도착한다는 소문만 듣고도 손을 묶고 명령만을 요청하고 있소. 적도들을 이미 많이 처단했으니 지금부터는 모두 관대하게 처분하고, 만약 반역의 형상이 있다면 정황과 증거가 명백히 드러난 이후에 벨 것을 요청하오.”고 하니 이춘부가 그 말을 따랐고, 남쪽 지방이 기뻐하며 복속해왔다. 

선유사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 이춘부가 두경승에게 말하기를, “처음에는 공을 어리석고 비겁한 사람으로 여겼었는데, 지금은 공이 너그럽고 신중하여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겠소. 지난번 공의 계책이 아니었더라면 아직도 반역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나로 하여금 불의에 빠지게 했을 것이오.”라고 하며, 생사를 같이하는 소중한 벗을 맺게 되었다.


고려사 > 권128 > 열전 권제41 > 반역 > 이의민 > 이의민이 김보당의 반란 때 경주에서 의종을 살해하다

이의민 등이 계림에 도착하니, 어떤 사람이 길을 가로막고 말하기를 “전 임금이 여기에 온 것은 이곳 사람들의 뜻이 아니라 장순석과 유인준 등의 뜻입니다. 그 무리들은 수백에 불과하며 모두 오합지중이니, 그 우두머리를 없앤다면 나머지는 모두 흩어져서 도망갈 것입니다. 청하건대 조금만 머물러 계시면 제가 돌아가서 그들을 없앨 것이니, 경주 사람들에게는 죄주지 마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이의민이 말하기를 “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마침내 경주로 들어가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면서 말하기를 “장순석의 무리는 지금의 임금이 파견한 사람이 아니므로, 그를 죽인다고 해서 무슨 해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밤에 군사들로 포위를 하고 그들을 공격하여 수백 명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머리를 길 좌우에 늘어놓고 이의민이 오기를 기다렸으며, 의종을 객사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서 지키면서, 이에 이의민 등을 인도하여 성에 들어오도록 하였다. 

의종을 곤원사 북쪽 연못가로 불러내어 술을 여러 잔 올렸다. 그때 이의민이 의종의 척추를 꺾어 버렸는데, 손을 놀리자 소리가 나니 이의민이 크게 웃었다.

박존위가 의종의 시체를 이불에 싸서 가마솥 두 개와 함께 묶어서 연못 가운데로 던져 넣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크게 불고 모래먼지가 일어나니 사람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며 흩어졌다. 

절의 승려 중에서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가마솥만 건져내고 시체는 그대로 버려버렸다. 

시체가 며칠 동안 떠 있어도, 물고기·자라·까마귀·솔개 등이 감히 해치지 못하였다. 전 부호장 필인 등이 몰래 관을 마련하여 시신을 물가에 묻어주었다. 이의민은 스스로 공을 내세워 대장군 벼슬을 받았다.


김보당의 난은 한국사에서 손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의 복위 운동이라서 그 시작은 일본의 남북조시대가 연상될 급인데 너무 허무하게 끝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