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같은 전설적인 전설의 대륙 떡밥만큼 잘 알려져 있지도 않으나 레무리아는 사실 무우대륙이니 아틀란티스대륙이니 하는 전설상의 대륙이 아니다. 그리고 아틀란티스 전설처럼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며 사실 무우대륙과 같이 근현대에 나온 이야기다.

사실 호사가들도, 철학가나 문학가가 창작한 이유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주창한 학설로서 등장한 이론상의 대륙중 하나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레무르(여우원숭이)라는 동물의 화석이 인도아대륙 남부와 호주 서부 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와 인도아대륙은 현대기준으론 어마무시하게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고 중간에는 인도양이라 불리는 대양이 가로막고 있었다.

당연히 여우원숭이따위가 죽었다 깨어나도 지 혼자서 저기를 선사시대에 가로지를리는 있을수가 없으니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게 이른바 육교설이었다. 사실 고생물학이 발전하고 근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화석발굴이 시작되면서 현대의 대륙과 대양분포 기준으로 도저히 서로 대륙 반대편에 있는 곳에서 나올래야 나올수가 없는 같은 동물들의 화석이 출토되자(이를테면 히말라야산맥 정상에서 발굴되는 조개라던가)당대 학자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연히 근대 과학혁명은 서양에서 시작되었으니 이때에도 성경을 뒤지기 시작하였고 곧 해답을 찾았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의 흔적인 것이다. 그높다는 아라라트산 정상까지 물이 찼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면서 화석기록은 모두 과거 대홍수의 흔적이라는 해답을 제시한 것이었다. 홍수때문에 떠밀려 갔거나, 홍수때 방주에 타지못해 모두 죽었다는 것으로 모든것을 설명하려 한것이었다. 이를 수성설이라 부른다. 

이러니 결국 과학자들이 수성설에 기반하여 머리를 맞대고 꺼내든 카드가 육교이론이었고 이 육교이론에 의해 탄생한 인도양에 존재했다는 가상의 대륙이 바로 레무리아 대륙인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예쓰라고 할때 노(盧아님 ㅋ)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사람이 베게너였다. 

이러한 기조에서 탄생한것이 육교론이었다. 하지만 베게너는 어느날 세계지도를 보다가 아프리카와 남미의 해안선이 놀랍도록 닮았다는걸 확인했고 지도에서 두 대륙을 잘라 맞대보니 완벽히 일치했다. 이후에도 지구상에 이렇게 몇몇곳이 딱 들어맞는 해안선을 가진 대륙들이 있었고 이들을 하나로 합쳐보았다. 그렇게 초대륙 판게아를 반결한것이다. 그리고 화석기록들을 대조해보았다.

베게너가 대륙 이동설을 주장할 무렵인 20세기 초는 과학의 페러다임이 급변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인류가 이해하던 세계는, 신이 창세기에서 이르는대로 6일동안 만들고 하루 쉬어서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단선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완벽한 정적인 세계였다. 이런세계관 기반에서 탄생한것이 자연발생설, 창조설, 육교설등이었다. 즉 모든 물질과 동물은 신이 빚은 완벽한 상태를 창세이후 지금까지 쭈욱 유지하는 변화없는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동안 자연발생설이 깨졌고, 다윈에 의해 진화론이 등장했으며 수성론에 대항하는 지구내부의 열에의한 지각의 변화를 논하는 화성론이 등장했다. 라듐이 발견되었으며 방사능과 반감기에 대해 인류는 알게되었다. 즉 동물을 포함하여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지금도 변해가고 있는것이었다. 단지 그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20세기 초반의 인류는 알지를 못했다. 



그래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였다. 이유는 저 거대하고 무거운 대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베게너를 포함하여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증거를 찾기위해 베게너는 북극으로 떠났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다.

아이러니한것은 인류가 대륙이동설의 증거와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는것은 핵실험을 통해서였다. 인공 지진파 연구를 통해 지각과 멘틀의 구조를 이해하고 결국 대륙이동설의 메커니즘을 밝혀낸것이다. 베게너 사후 20여년이 흐른 1950년대의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로서 육교이론과 레무리아 대륙이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되었고 그렇게 사라졌다. 인간의 이론의 산물로 만들어진 대륙이 과학계의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