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은 AI가 그려줌





로마에서 좀 산다는 어린이들은 불라(Bulla)라고 하는 부적 목걸이를 찼음. 이 목걸이를 차고 있으면 아이들을 노리는 질병과 '사악한 눈'으로부터 보호 받는다는 믿음이 존재했음. 그래서 성년식인 '토가 비릴리스(Toga Virilis)'를 치를 때 항상 목에 걸고 다니던 불라를 목에서 빼는 순서가 포함되어 있었음. 


즉 로마를 다룬 소재에서 성인 남자가 이 목걸이를 차고 있다는 것은, 조선으로 비교하자면 다 큰 어른이 성인식을 못 치러서 댕기머리를 하고 있는 거랑 똑같은 고증 재현 오류라고 보면 됨.








『박물지(나투랄리스 히스토리아)』를 쓴 대(大) 플리니우스는 "인류에 대한 최악의 범죄는 자신의 손가락에 반지를 낀 자다" 라고 말할 정도로 장신구와 그로 인한 사치를 극도로 혐오했음. 초창기 로마인들은 특이하게도 용기의 상징으로써 '철로 만든 반지'를 끼는 관습이 있었지만 당시 대 가문들의 석상에서도 반지를 낀 형태가 잘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반지를 끼는 문화가 없었음.


그러다가 로마의 5대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가 자신의 아들이 성년이 되기도 전에 적을 죽이자 자랑스러워 하면서 인장이 새겨진 금반지를 하사했고, 이 때부터 로마의 기사(에퀘스) 계급에서 금으로 만든 인장 반지를 끼는 관습이 시작됨. 평민들은 당연히 금을 구할 수 없으니까 가죽끈(Lorum)을 손가락에 반지처럼 끼우고 다녔음.








그리고 초창기에는 반지를 왼손 약지(네 번째 손가락)에 끼었지만 로마가 점차 부유해지면서 중지를 뺀 손가락 전부에 반지를 끼고 다니는 플렉스 로마인들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떤 로마인들은 새끼손가락에만 금으로 만든 인장 반지(Seal ring)를 꼈는데 검소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당시 인장 반지는 귀중해서 보통 상자에만 넣고 필요할 때만 꺼내서 착용했기 때문에 그걸 착용하고 다닌다는 건 "나 인장 반지를 착용하고 다닐 정도로 부자임 ㅋㅋ 이거 말고도 반지 많은데 느네 집엔 금반지 없제? ㅋㅋㅋㅋ" 하고 비틱질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음.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가방에 순금 인감도장을 키링으로 달고 다니는 거랑 비슷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