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의 부여 기원설은 꽤 유명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부여 기원설의 아무런 문헌적 민속학적 자료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부여 기원설은 주장한 사람들은
신채호와 정인보 등인데
이들이 딱히 문헌적 자료를 제시한 바가 없습니다
윳가락이 네 개
부여의 사출도
여기서 기인하여 추리한 것으로 보이는데 ....
문제는
과연 애초에 윷모가 네개였을까 하는 점입니다
윷놀이를 할 경우 나올 수 있는 여섯개입니다
도-개-걸-윷-모
에 뒷도
이렇게 6개이지요
이는 원래 윷가락이 네 개가 아니라 5개였을 것으로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방증자료이지요
5개면
하나 넘어지기 - 다섯게 다 넘어지기
그리고 다섯개 반대로 넘어지기
이렇게 판을 짤 수 있어
원래 윷가락은 다섯개였으리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조선 후기쯤 네 개로 줄어들고
네 개로 줄어드는 대신 경우의 수 여섯을 만들고자
뒷도를 추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모가 다섯이 되면 4출도에서 기인한 부여 기원설이 힘을 잃게 됩니다
두 번째
사출도에서 기원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보통
저가-도 구가 - 개 우가 - 윷 마가 - 모
이렇게 대응하는데 ...
일단 걸에 해당하는 양이 없네요 ..
그리고 윷 즉 소와 걸 즉 양은
한국어로는 매칭이 안 됩니다
양에 해당하는 우리 고유여는 염이고 걸은 매칭이 안 됩니다(염소의 염이 양이라는 의미입니다)
소와 윷 역시 마찬가지고요
언어학적으로 뭔가 삐그적거립니다
세 번째
도-개-걸-윷-모 중
도-개-걸까지는
확인이 가능한데 ...
중국의 저포 놀이의 첫 세 패 발음이
독-개-걸에 가깝고
헤이안 시대 일본에서 행해졌던 저포놀이에서도
독-개-모는 확인 가능합니다
이로 보면
삼국시대 삼국이 모두 저포놀이를 했고
기본적인 규칙을 공유했다고 짐작가능하고
기록상 중국이 빠르기에
중국-한반도-일본 순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저포 놀이 자체는 서약에서 발생한 것이라
중국도 서역에서 시작했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포는 본시는 주사위 놀음이었고 나올 수 있는 수가 6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주사위가 아닌 나무 모로 바뀌었고
그것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진 듯 합니다
바뀐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중국에서 주역으로 산가지 점을 치는 풍습이 있었고
저포 역시 점치는 도구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 하니
아마 산가지 점과 결합되면서 나무모로 바뀐 듯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동북아에 이식되었고
그게 한국식으로 변형된 것이 윷놀이 아닌가 짐작 가능합니다
물론 현재까지 추정 가능한 것은 여기까지고요 ...
중국 또는 서역이 기원이라도 어차피 이제는 우리의 것이 된 이상 .....
한국의 놀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