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낼래..."

"미안해, 메이 선배...브로냐...그리고 모두들..."

타앙


어두운 골목에 울리는 단 한발의 총성과 함께, 힘없이 허물어지는 몸.

새하얀 머리카락이 피로 붉게 물들며, 흐려져가는 의식과 함께 어두운 골목에서 한 소녀가 눈을 감았다.

.

.

.


"키아...나...?"

"메이 언니."


바닥에 말라붙은 피 웅덩이와, 이미 죽은지 못해도 몇시간은 되어보이는 시체.


믿기지 않는 상황에, 비틀거리는 메이가 키아나를 향해서 걸어갔다.


"하, 하하...키아나, 많이 졸렸던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곳에서 잠들면 안되지..."

"메이 언니..."

"브로냐. 키아나가 이상해. 하하...이럴리가 없는데? 잠시 잠든거겠지? 그렇지?"

"메이!"

"...아?"


브로냐의 외침에 그재서야 눈에 초점이 돌아오는 메이.

그러나 차디찬 현실을 깨달은 메이의 눈에서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아으...키...아나..."

"..."


키아나가 들고 다니는 권총은 붕괴수를 사냥하기 위한 발키리의 무기.

그런 무기가 붕괴수도 아닌 사람의, 그것도 머리를 관통했다면 살아 있을리가 없었다.

아마도 극한까지 몰린 상황에서, 자신의 안에 있는 율자를 막기 위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겠지.


"그럴리가 없잖아! 키아나가...다른 사람도 아닌 키아나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조금은 바보 같지만, 언제나 누구보다 활기찼던 소녀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되려면 대체 얼마나 몰려 있어야 하는걸까?

적어도 확실한건...마지막 순간에, 자신들은 키아나와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인적없는 차가운 골목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동안에도.


"미안...정말 미안해, 키아나...우리가 함께 있어야 했는데..."

"메이 언니...일단 함선으로 데려가죠. 적어도 이렇게 차가운 곳보다는..."

"응, 브로냐 말이 맞아...적어도...적어도 같이 돌아가자. 모두가 기다리는 곳으로..."

.

.

.


키아나의 장례식은 조용하게 소규모로 치뤄졌다.

메이와 브로냐, 그리고 사쿠라와 테레사.

후카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인지, 혹은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지 오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내 손녀가 꽤나 슬퍼하는것 같군."

"할아버지? 여기에는 왜...!"


콰앙!


"커헉...! 예상은 했지만...더 차가운 반응이군...브로냐 자이칙."

"정말 드디어 미쳐버리기라도 한겁니까? 그쪽이...그쪽이 무슨 낯짝으로 여기에 옵니까?!"


순식간에 중장토끼를 소환해 오토를 날려버리는 브로냐.

갑작스러운 공격에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 그를 보는 브로냐의 얼굴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내 정신은 매우 멀쩡하다네 자이칙 양. 이 육체는 딱히 병이나 질환은 걸리지 않으니."

"당신 때문에 키아나가...그리고 메이 언니가...!"

"카스라나의 사람을 잃는게 어떤 의미인지는 나 역시 잘 알고 있지. 어쩌면 우리는 같은 공통점이 하나 생긴걸지도 모르겠어."


장례식장 한쪽에 쪼그려 앉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개를 든 메이였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누구보다 분노할 자격이 있는 그녀의 눈에는 이제 무엇도 상관 없다는 듯이 슬픔과 무기력함만으로 가득했다.


"K42..."

"키아나입니다! 실험체인 k423가 아닌 키아나 카스라나!"

"그래, 키아나. 그녀의 일에 대해서는 나 역시 유감을 표하지. 설마 많은 공을 들인 율자가 그렇게 가버릴 줄은...인간의 정신적인 내구도 측면을 고려한다는 것을 까먹을 줄이야."

"됐습니다. 기대한 제가 잘못이죠."


그냥 죽으십쇼.



우우웅


공명음을 내며 순식간에 충전되기 시작하는 중장토끼.

곧 포신으로부터 붉은 구체가 생겨났으나,


스윽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건 제가 묻고 싶은데요, 자이칙 양?"


당장이라도 오토의 머리를 날리려던 브로냐를 멈춘 것은, 어느새 그녀의 목에 겨누어진 낫이었다.


"리타 로스바이세...당신도 키아나의 납치에 협력했었죠."

"주교님의 명이었다는 말로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만...이번 일은 저로서도 진심으로 유감이었습니다."

"..."


위이잉


잠시 후, 작아지는 구동음과 함께 사라지는 구체.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둘을 죽여버리고 싶지만.

적어도 키아나를 위한 장례식이 난장판이 되는건 그녀와 메이를 위해서라도 원치 않았다.


"...당장 제 눈앞에서 사라지십쇼."

"후후, 배려에 감사를 표하지 자이칙 양."

"..."


이내 중장토끼를 역소환한 브로냐는, 마지막으로 오토를 흘겨보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멀어졌다.


"리타, 돌아가지."

"네. 주교님."


그렇게 한바탕의 소란과 함께 돌아가는 둘.


"..."


그 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걸 확인한 브로냐는 말없이 메이의 옆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브로냐."

"네, 메이 언니."

"나는 말이야 계속해서 후회가 돼."


만약 자신이 그녀의 옆에 있었다면.

더 강했다면.

조금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이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그리고...또...


"브로냐, 내가 제일 두려운게 뭔지 알아?"

"..."

"이럼에도 키아나라면 결국 웃으면서 내 탓이 아니라고 말했을 사실을 안다는거야."

"메이 언니의 잘못이 아닙니다."

"...브로냐, 나...한숨만 자도 될까...?"

"몰론입니다 메이 언니. 나머지는 제가 맡을..."


브로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잠든 메이.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메이의 숨소리만이, 근래 몇일이나 밤을 샌 그녀가 얼마나 피곤했는지 나타냈다.


"키...아나..."

"..."


언제나 그렇듯이, 슬픔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었다.





(내가 키아나를 죽였어! 붕끼야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