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 1—[심문 기록: 4월 21일]


“…요약하자면, 엘빈, 사건 발생 당시 당신은 지원 부대의 일원으로 칼파스와 [같은 곳에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


"네… 하지만 칼파스가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는 다들 잘 아실 거예요… 이해 하시겠어요? 그가 가면을 벗었어요… 전 칼파스의 얼굴을 직시 할 수 없었어요.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았죠… 전 그저 고개를 숙이고 칼파스의 발이 끊임없이 움직이고있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그는 [걷]지도 [뛰]지도 않았어요 맹세합니다. 저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고요. 하지만 그가 어떻게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이동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붕괴수의 조각만 보였어요… 그리고 붉은 색의 무언가… 그것들은 마치 눈꽃처럼 흩날려 제 몸에… 그리고 칼파스의 신발 위에 내려 앉았습니다."


“칼파스의 신체 기능에 대해서는 우리도 대략 아는 바가 있으니 다시 되풀이해서 진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이 사건이 칼파스가 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겠네요." 


"네… 아뇨,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현장에 다른 사람이 없었던 건 맞지만… 전 사건의 모든 과정을 전혀 보지 못 했거든요." 


"당신의 진술과 우리가 조사한 기타 증거에 따르면 다른 가능성이 추리될 순 없어요." 


"아니, 제 얘긴… 그 가면을 벗은 사람이… 정말 칼파스일까요?"




파일 2—[증거물: 녹화 테이프]

“이 테이프에서 두 사람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교전하고 있는 모습을 흐릿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최대한 자세하게 재현하기 위해 우린 인근의 모든 관련 CCTV 영상을 한 동영상으로 편집했죠. 
보시다시피, 현장의 파괴 흔적 및 4분 12초 부분의 음성을 통해 양쪽의 정체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 유심히 들어보세요."


"칼파스, 네 약점이 이미 보여. 그건 좋지 않은 습관이야."

“보인다고? 하… 별도 볼 순 있다. 근데 그렇다고 네가 별에 닿을 수 있을까?”


비 장막 사이로 한 줄기의 검광이 스쳤고, 동영상은 여기서 끝났다.

“그러니까 엘리시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만족할만한 합당한 해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넌 단지 그가 독용의 멤버와 겨룰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이유로 독단적으로 그를 가장 깊은 곳으로 데려갔어. 그런데 그 남자는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그 어떠한 대가로 치를 필요가 없다는 건가?"

"흠, 난 이 테이프가 가장 좋은 해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칼파스가 상대하고 있는 건 융합 전사야. 이기진 못했어도 상대의 몸에 상처를 남겼지. 난…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는데?"

“…”

“게다가, 칼파스도 가장 깊은 곳에서 [계율]의 계약을 받았고… 잠깐, 이렇게 말해도 이해하긴 힘들겠지.”
“음… 아, 더 직접적인 증거를 보여줄게.”
“사쿠라,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그 전투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다시 한번 진술해줬으면 하는데, 부탁할게.”




파일 3—[소문: 가면]


“…일반인에게 가면이란 종종 진상과 자아를 숨기는 도구로 쓰인다.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칼파스는 가면으로 그의 진정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가면을 빌리지 않는다면, 칼파스는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해 낼 수 없다—물론, 이건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니 정확하든 아니든 정정할 생각은 없다. “

“칼파스가 기쁨을 표현하는 가면을 쓴다는 건 위험 신호니 조심해야한다—오직 전투 만이 칼 파스를 즐겁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칼파스가 부끄러워하는 가면을 썼을 땐… 다른 가면이 전투에서 파괴 됐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아무 가면이나 쓰게 된 것이다. 절대 칼파스가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그 대가는 클 테니 말이다.”

——<칼파스의 가면에 대한 백 가지 문답 : 입문에서 마스터까지>에서 발췌


“어이, 이모르, 이거 진짜야? 좀 황당한데."


“내가 어떻게 알아.”


“넌 그 칼파스의 부관이잖아, 이모르. 게다가 네 재임 기간은… 마치 기적처럼 길고.”

“네가 오기 전까지 부관직 담당이 스무 명도 넘게 바뀌었다고!”


“그게 뭐 어때서… 그 사람들이 버티지 못했을 뿐이지. 게다가 칼파스가 날 전투에 데려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어서, 오히려 편한 편이야.”


“해탈했네… 했어…”


“그래서, 아까 보여줬던 건 대체 뭐였어? 내용만 길고 유용한 건 하나도 없잖아.”


"응? 뭐야, 너 이 책 몰라? <칼파스의 가면에 대한 백 가지 문답 : 입문에서 마스터까지>, 기지에서 꽤 유행하고있는 책이야.”


“그러니까, 이런 책은 대체 누가 쓴 거냐고… 유용할 리가 없잖아.”

“아니, 오히려… 사실과는 정반대인 내용만 잔뜩…”


“음…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위의 사인은 [비화처럼 아름다운 소녀]로 되어 있어… 미스터리 컨셉이네. 아, 잠시만, 메시지 왔어."

“…”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이모르, 긴급 임무야."


“긴급 임무?”


“응… 제10 율자가 나타났어.”




파일 4—[해가 지기 전에]


황사, 열염, 핏빛의 석양. 별의 눈동자를 지닌 소녀가 드디어 이 모래 바다 중앙의 언덕에 다다랐을 때, 모래 자갈에는 지배의 열쇠가 백 개도 넘게 꽂혀 있었다. 

그것들은 아이가 망가뜨린 장난감처럼 전부 부서져 있었으며, 손잡이 부분의 무시무시한 변형은 그것들이 겪었던 유린과 괴로움을 어렴풋이 암시하는 듯했다.

가면을 쓴 남자는 부러진 검날 사이에서 팔다리를 편안하게 늘어뜨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소녀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을 뒤덮었고, 그제서야 남자는 무심하게 눈을 떴다.


“축하해, 넌 이제 [Meta-Morph] 제제의 응합 전사 계획에서 공식적으로 제명됐어."


뱀의 눈동자를 지닌 소녀는 주위의 부러진 검을 둘러봤다. 


"이대로 가다간 너 혼자서 모든 지배의 열쇠를 망가뜨리게 생겼어."


“…아니다.”


“…그만둬. 너도 알겠지만, 이 방법으로는 융합 전사가 될 수 없어. 죽음의 위험을 느끼게 할, 널 각성시킬 수 있는 전투는 지극히 적으니까." 

"그리고 현재의 훼손 정도로 봤을 때, 이제 그들은 네게 어떤 지배의 열쇠도 분배해주지 않을 거야. 휴, 아쉽네… 그게 네 손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궁금했는데 말이야." 

"잘 가, 칼파스. 이제 [일반인]의 신분으로 계속 싸워줘. 이런 기회는… 훗, 수많은 사람이 갈망하는 기회지."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뫼비우스. 내가 널 왜 여기 불렀는지는 잘 알고 있겠지."


“…”

"물론이지. 근데… 내가 왜?"


붉은 태양이 천천히 가라 앉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핏빛과 같은 적색으로 물들였다. 

소녀의 뱀의 눈동자도, 주변의 모래 바다와 부러진 검들도, 남자의 가면도, 전부. 


"난 이 모든 걸 전부 파괴할 거니까." 


“…”

"미친놈." 

"근데 뭐… 알겠어. 널 융합 전사로 만들어 줄게 — 나만의 방식으로 말이지."

"하지만 조건이 있어." 

"네 가장 큰 비밀을 내게 알려줘, 칼파스." 

"고작 [일반인]인 네가, 어떻게 융합 전사와 대등한 힘을 갖고 있는 거지? 넌 대체… 어디서 온 거야?"




파일 5—[사사로운 싸움]


"뫼비우스 박사님… 싫어… 싫어요… 전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왜? 설마 벌써 무서워? 그때 누가 그랬는데… 조수로서 내 옆에서 보고 배울 수만 있으면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상관없다고 했었지?"


"하지만… 하지만 칼파스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랬어요, 저 사람은 전투의 여파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갈 수 있다고 했다고요…”


"뫼비우스 박사님, 제발 돌아가게 해주세요. 전 과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지만, 이렇게 죽는 건 정말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오버하지 마, 다시 말하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는 안 올지도 몰라.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는 거야. 결국엔 모두 다른 기지에 파견될 거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개안 전투 허가와 파손 유지 보수 관련 예산도 취소되겠지."


“…”

"알겠어요… 뫼비우스 박사님. 근데… 박사님 몸에 있는 보호 장치 절반만 나눠주시겠어요?"


"쉬잇… 온다."


“…”


한줄기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는 협곡의 가장 낮은 곳에서 두 남자가 서로를 향해 서 있었다.


"오늘은 좀 다를 거야, 칼파스."


'알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걸."


"그래, 마지막이다. 오늘이 지나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도 미지수지. 그러니까, 최대한 즐겁게 해줄게."


"아, 바라던 바야. 근데…"

"케빈, 네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물론."




파일 6—[소문: 조각칼]


“…아, 응. 내가 그에 관한 일을 꽤 알고 있는 건 사실이야 근데 다 소문으로 들은 거라 절대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진 마."

"적을 쓰러뜨린 후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 이건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아직도 그 자의 전투 스타일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홍미로운 얘기를 해줄게… 음, 어디 보자 아, 참. 전에 그가 한동안 다른 기지로 파견됐었을 때 내 친구가 그 사람의 짐을 옮겨줬거든. 넌 절대 상상도 못 할 거야… 그 사람의 짐 중에 절반이 온갖 인형이었어! 다른 사람이면 또 몰라, 그 야수 같은 자의 취미가 인형 수집이라니…”


"인형 무시하지 마! 소년도 인형을 좋아할 권리가 있어!"

"하지만… 엘빈, 그거 확실해? 다른 버전도 들은 것 같아서 말이야."


"아, 나무 조각상에 대한 얘기 말이지? 누군가 그 사람의 방에서 인간 모양으로 조각된 나무 조각상을 엄청 많이 봤다고 하던데… 근데 솜씨는 별로인가 봐, 인형 얼굴이 전부 엉망진창이었대. 그래도 전장에서 살육을 일삼는 사람이니까 솜씨가 서툰 것도 어쩌면 당연해."


“그러니까… 그 소문도 사실 네가 퍼뜨린 거지? 대체 뭐가 진실인데?"


"그건 물론 다 진짜지. 취미가 바뀌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잖아? 봐봐, 이 조각칼이 그 증거야. 내 친구가 짐 옮기는 걸 도와줄 때 주운… 어이! 무슨 짓이야? 돌려줘! 여와? 여와!"

"돌아와!"



파일 7—[연구 보고서]


"뫼비우스 박사, 이건 어떻게 생각해?"


"정말 흥미롭군, 역시 그건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어 융합 전사 두 명을 방으로 더 들여보내."


"박사, 안 돼! 그건 너무 위험해! 일전의 사고에서 우린 동료를 너무 많이 잃었어, 지금…"


"됐어, 됐어, 잔소리는 그만. 사고가 생기면 내가 전부 책임질게."


"박사, 저번에도 그렇게 얘기했잖아. 하지만 결국, 강등된 건…”


"아 진짜, 귀찮아 죽겠네! 내가 직접 가면 될 거 아니야."


"박사?!"


"난 절대 인간이 '태생적으로' 이렇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아. 근데 나조차도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대체 누가 한 짓이지?

"난 널 꼭 찾아내고 말 거야, 꼭…”

"잠깐, 설마… MEI 박사, 절친한 친구인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파일 8—[의료 사고]


“…멈춰, 박사. 수술은 이제 가망이 없어. 계속 이 고통을 견뎌내게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아직 안 끝났어, 수혈 계속해.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질게. 보여…? 그의 눈동자에 담긴 빛, 다른 상황에서 이런 걸 본 적 있어?


“이게 바로 그가 원하는 거야. 난 약속했어, 그리고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하지만 박사… 정말 견뎌 낸다 해도 정신 상태가 완전히 망가지고 말 거야. 저 사람이 했던 일을 벌써 잊은 거야? 넌 지금 율자급의 위협을 직접 창조하고 있어… 이곳의 보안 시스템도 일격에 무너지고 말 거야, 우리 모두가 죽을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 계속해."


서리 어린 비가 갑자기 내리듯, 남자의 목소리가 그림자 속에서 들려왔다. 그의 다리에는 한 자루의 이형 대검이 가로로 놓여있었다.


"설령 오늘 누군가가 죽는다 해도, 그건 단 한 사람밖에 없을 거야."


"뫼비우스 박사, 그의 눈동자 속에 담긴 그 빛에 대한 네 이해는 어쩌면 완전히 틀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 정말 늦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