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허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는 중원 제일의 문파인 태허검파가 위치해있었다.


그리고 태허검파의 제일 깊숙한 곳, 그곳에는 태허검기의 창시자이자 태허칠검을 만들어낸 대사부, 몇 천년을 넘게 살아왔다는 소문이 도는 여인.

정위 선인이 홀로 어두운 방 안에 무릎을 끓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도, 심지어 숨소리조차 들리지않는 방은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향의 연기를 제외하면 시간이 멈춰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불어온 냉기섞인 바람에 향의 연기가 어지러이 흔들리고 그녀의 잿빛 머리카락도 호수를 어지럽히는 파문처럼 흘러내렸다.


어지럽혀진 호수 사이로 2개의 푸른 달이 떠올랐다.


"케빈."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것이 누구인지 잘 알았기에.


"저희가 마지막으로 모인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을텐데요."


"안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냉기보다도 더 차갑고 무거운,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낮은 목소리.


한 때 이 남자에게도 희노애락이 있었을까. 화는 기억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지금의 그녀도 희노애락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5만년이 넘게 달려와도 이뤄질지 모를 거대한 목표 앞에서 모든 것은 거추장스러운 짐에 불과했다.


소중한 이와의 기억도, 그들을 추억하는 감정도.


"수가 나를 호출했더군. 너에게도 연락이 갔었나?"


"아니요. 당신들과 대화한 것은 1년전 정기보고 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렇군. 알겠다."


그저 정적만이 흘렀다. 문자 그대로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화는 그저 조용히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있을 뿐이었고, 케빈은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또 다시 반각 즈음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향의 불씨는 빛을 잃고 하얀 재로 바뀌어버린지 오래였다.


화는 잿더미속에 쳐박힌 향의 불씨를 조용히 꺼뜨리고 새 향을 꺼내들었다.


"케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저희들끼리 직접 대면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을겁니다."


케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밤의 바다와 같은 그의 눈에는 향 너머 제대에 올려진 무엇인가가 비춰질 뿐이었다.


그것은 옅은 분홍색의 모란으로 이루어진 화환이었다.


오래 전,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꽃. 케빈은 어느새 홀린 듯이 화를 지나쳐 꽃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직, 잊지 않았군."


"네. 저희가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게 된 이유니까요. 이 기억을 지워야 할 순간은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라는 말을 화는 꺼내지 않았다. 그녀도, 케빈도 알고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그래왔듯이, 언젠가 때가 되면 그녀는 이 기억들과 그녀가 행해야 할 대의를 저울에 매달고, 한쪽을 가차없이 잘라낼 터였다.


그저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달콤했던 지나간 추억들을 곰씹으며, 씁쓸한 현재를 살아갈뿐.


케빈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모란의 화환 옆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케빈. 그건..."


그것은 한 송이의 장미였다. 이 대륙에는, 아니, 이 시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래전의 기술로 태어난 분홍색의 아름다운 형태의 장미.


그녀가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 모양을 따서 수정으로 만들어 자신의 상징으로 썼었던 꽃. 


"엘리시아도, 한 명보다는 두 명이 축하해주는 걸 좋아하겠지."


화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은 사그라드는 향의 불빛 아래 비춰지는 모란의 꽃다발과 장미를 지켜보다 이내 등을 돌렸다.


뼈까지 얼어붙을듯한 냉기가 화를 스쳤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냉기보다도, 붕괴수의 피보다 차갑고 슬픈 감정이 심장을 타고 그의 몸속을 돌고 있었을 테니까.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단순히 수의 호출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잠시간의 정적 뒤, 케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화는 어쩌면 그의 한숨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필요없는 기억일테니 임무에 방해되면 지워도 좋다. 그럼."


내심, 화는 그의 입에서 '다음에 보자.' 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윽고 방 안에 내리앉은 침묵을 깨는 인기척에 화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태허검파의 대제자이자 화가 처음으로 거둬들인 소녀, 린챠오위가 있었다.


"사부. 혹시 누군가 찾아왔나요? 공기가 매우 차갑습니다."


화는 제대위의 꽃들을 바라보았다. 분홍빛의 모란의 꽃다발과, 그 꽃다발 사이에서 더더욱 아름답게 스스로를 뽐내는 한송이의 장미.


"아니오."


화는 아직 불씨가 남은 향들을 그러쥐고 조용히 부러뜨렸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


붕괴에 맞서기 위해 온갖 재능을 가진 이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신생 조직인 '불을 쫓는 나방'. 


그들 중에서도 제일 가는 재능을 가진 이를 뽑으라면 분야별로 각기 다른 이름이 나올수 있겠으나, 결국 연구 분야로 가면 답은 오직 한 명 뿐이었다.


심지어 그 오만한, 그리고 그 오만함에 어울리는 재능을 지닌 녹색머리의 박사마저 한숨을 쉬며 혀를 차다 마지못해 그녀를 지목할 것이었다.


MEI. 


인류의 지성이 전부 한 사람에게로 몰려있는 것 같은 그야말로 5만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한 규격 외의 존재.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범접하지못할 지성의 여신이 지금 허리에 손을 짚고 볼을 잔뜩 부풀린채 여고생처럼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자친구가 뻔히 있는데, 신경쓰이는 여자아이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될지 그걸 여자친구에게 직접 와서 물어보는거야?"


"그, 그게...."


케빈은 멋쩍은듯이 머리를 긁었다. 이것은 그가 '불을 쫓는 나방'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아직 앳된 소년의 티가 남았을 무렵의 이야기.


화난듯이 뾰루퉁하게 볼을 부풀리며 케빈의 이마를 콕콕 찌르던 MEI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엘리시아에게 줄 선물이지?"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파이어모스의 대원들 중 지금 생일이 가장 가까운 사람은 엘리시아밖에 없거든? 그게 아니라면 설마..."


MEI의 눈이 날카롭게 바뀌며 케빈을 노려보았다.


"진짜로, 다른 여자가 생겼다던가?"


"아, 아냐! 절대 그럴리가!"


MEI는 미소를 지으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남들 앞에서는 강한 척하지만, 자신 앞에서는 이렇게 빈틈을 드러내며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후후, 농담이야. 우리 케빈 카스라나가 그런 짓을 할리가 없지."


MEI는 등받이 의자를 끌어와 걸터앉았다. 케빈은 자신도 뭔가 걸터앉을게 없나 찾아보았지만 이곳은 MEI만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그녀를 위한 의자 외에 다른 의자가 있을리는 전무했고 케빈은 이내 포기하고 계속 서있기를 선택했다.


"엘리시아는 우리 모두가 좋아하니까. 싫어하는 사람을 찾는게 더 힘들걸? 아니, 어쩌면 아예 없을지도?"


"...그 뫼비우스 박사도?"


"하하하하! 만약 우리들의 엘리시아에 대한 호감도를 수치로 변환한다면, 그녀 혼자 자리수가 다를텐데?"


그런가. 녹색머리의 오만한 박사를 생각하며, 케빈은 고개를 기울였다. 중요한 것은 그런게 아니었다.


"글쎄...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이라고 해도, 나도 정상적인 소녀의 취향에서 조금 거리가 먼 편이니까. 그래도 일단 보편적인 리스트에서 골라볼까?"


MEI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모니터 창에 그녀가 찾던 표가 떠오르자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화장품."


솔직하게, 케빈은 그녀가 단 한번도 화장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누군가 지나가듯이 물어봤을때, 태어나서부터 화장을 안해도 되는 체질이라고 했는데, 그 분야에 문외한인 케빈이 생각해봐도 말이 안되는 소리같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기각.

케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향수."


그녀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드는 향을 흩뿌리고 다녔다. 단언컨데, 어떤 비싸고 화려한 향수를 뿌리든 그것은 그녀 본연의 향을 망칠 터 였다.

기각.


"옷."


자기 옷도 제대로 고를 줄 몰라서 이 대원복만 대량으로 발주를 넣고 같은 옷만 매일매일 갈아입는 상황인데, 여자아이의 옷을 골라준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만약, MEI가 도와준다고 해도 그녀의 일반인과는 좀 동떨어진 취향을 생각하면....


"케빈. 혹시 속으로 실례되는 생각하지 않았어?"


"아, 아니. 전혀."


"...흠, 좋아. 꽃."


꽃이라. 무난한 선택이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장미꽃도 알고있고, 화한을 가득 안은채 미소짓는 그녀는 분명히 아름다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을 거란 것이다. 장미를 껴안은 그녀는 아름다울 터지만 천장까지 가득 메운 장미에 파묻힌 그녀도 아름다울까? 물론 당연히 아름답겠지만 남들이랑 같은 선택을 하는 몰개성한 선물은 주고싶지 않았다.


"편지."


그녀는 진심을 담은 편지만으로도 감사하며 미소짓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선물로 그녀의 생일을 마무리짓고싶지 않았다.


"속옷...하, 그만하자."


MEI는 한숨을 쉬며 창을 내려버렸다.


얼굴이 붉어진 케빈에게 MEI는 장난스레 다가갔다.


"후후, 우리 케빈 카스라나씨는 속옷이란 말에 무엇을 생각했길래 이렇게 얼굴이 빨개졌을까? 혹시 엘리시아가 입은 걸 상상한걸까?"


"아니, 너가 입은거..."


케빈은 스스로 말하고도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MEI에게서 뺨이라도 맞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싶어 몸을 움츠렸던 케빈은 아무런 공격도 날라오지 않자 눈을 살짝 떴다.


MEI는 잔뜩 붉어져 김이 솟아오르는 얼굴로 말도 못하고 그저 입을 뻐끔거리고만 있었다.


그 모습에 케빈도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 그저 바닥을 쳐다볼 뿐이었다.


잠깐의 정적 뒤, 먼저 입을 연 것은 MEI였다.


"있잖아, 케빈...너무 진부한 말이지만, 선물은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담겨있느냐가 중요한거야. 무엇을 선물하느냐가 아니라."


"알아. 하지만...."


케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선물을 주든 그녀는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고싶지 않았다. 케빈은 그녀가 언제나 소중하게 지니고 있을만한, 누구나 그녀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선물을 주고 싶었다.


"흠, 그런거라면 직접 만든 악세서리 같은건 어때? 세상에서 유일한 물건일거고, 그녀에게 어울리는 물건이라면 언제나 그녀가 지니고 다닐거잖아."


"악세서리..."


그 순간 케빈의 머리 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스쳐지나갔다. 불을 쫓는 나방의 최고급 전투인력으로써 항상 불려나가는 그녀가 언제나 지니고 있어도 괜찮을만한 물건.

그녀에게 어울리는,아니,  그녀밖에 소화하지못할 그녀를 상징할 수 있는 물건. 


하지만 케빈의 능력으로는 지금 그의 머리속에 떠오른 물건을 만들 능력이 없었다.


"MEI."


"응. 알아,알아. 이번에도 도와달란거지?"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해. 도와줘. MEI"


"후후, 이렇게 될 거란걸 알고 있었지만...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종잡을수 없는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조건을 걸지 몰라 케빈은 잠시 몸을 떨었다.


MEI는 그런 케빈을 보며 그저 웃었다.


"내 조건은 다음 내 생일때 엘리시아보다 더 좋은 선물을 받는거야. 단! 역으로 엘리시아의 도움은 받지  말 것!"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녀가 어떤 조건을 걸든 자신은 받아들였을 터였다. 왜냐하면 케빈 카스라나는 MEI를 사랑하니까.


MEI는 만족스러운듯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러면 어디 우리 케빈이 무슨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 들어볼까?"


케빈이 자신의 머리속에 있던 이미지를 천천히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MEI의 눈이 점점 커지며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거면 되겠네!"



--------------------------------------------------------------------------------------------------------------------------


광활한 브리튼 섬을 가로지르는 템즈강. 그 지하에는 이 세상에서 단 3명만이 알고있는 비밀스러운 장소가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인류가 붕괴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었던 피난소. 생존을 구가했던 이들이 지은 피난소는 이제는 5만년의 세월을 넘어 바깥의 인류들을 지키기위한 전초기지로 탈바꿈해있었다.


그리고 피난소 지하의 격납고를 케빈은 혼자 거닐고 있었다.


오래 전, 이 피난소에 있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핏줄은 우리가 계획했던것처럼 현 문명에 족적을 남기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었을까? 아니면 5만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먼지처럼 스러졌을까.


격납고 안에는 그저 천계일승만이 외로이 가동되고 있을 뿐이었다.


"수. 호출에 응해서 왔다. 어디 있지?"


그 순간, 케빈을 향해 무엇인가 빠르게 날라왔다. 케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마치 캐치볼을 하듯이 그것을 가볍게 잡아냈다.

그것은 실험용 앰플 안에 담긴 보라색의 액체였다. 그리고 케빈은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CYP-630. 상온에 노출될 경우, 빠르게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며 대량의 붕괴능을 방출하는 혈청.

케빈은 어째서 이 물건이 여기에 있는지도 알았다.


"...수."


케빈은 그림자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온 오랜 친우를 보았다.


그 또한 자신처럼 오랜 세월동안 변하지 않은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마주보고 있었다.


"케빈. 전 이것을 버튼 마을에서 발견했습니다. 이 브리튼 섬에서 당신이 맡고있는 구역에서요."


수는 더 이상 눈을 감고있지 않았다. 케빈으로써도 그가 눈을 뜨는 것을 몇 년만에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100년? 1000년? 아니면, 불을 쫓는 나방에 들어간 그 순간부터?


"설명해. 당장."


분노에 가득찬 석류빛의 눈동자가 케빈에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니, 그는 다른 것을 바라고 있었다.


5만년간의 우정이, 신뢰가 변하지 않았다고 답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케빈은 끝내 그 두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수.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정답이다."


왜냐하면 수. 유감스럽게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5만년 전 그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목표는 변하지 않았어. 단 한순간도. 나는-.


"케빈. [성흔 계획]이 실행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 지 알고 있는거야? 인류가 얼마나 막대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지 알고 있냐고!"


"우리는 이미 대가를 치뤘다. 문명 하나를 통째로 말이지."


"그건 대가가 아니었어. 케빈! 우리는 기회를 만든거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운명을 선택할 권리를 준거라고! 우리는 가질 기회조차 없었던 그 선택을! "


"기회라."


케빈은 마침내 고개를 돌려 수를 마주보았다. 수는 케빈의 눈을 보았고, 이내 후회했다.


오래 전, 누구보다 희망에 차 빛나고 있던 호수같던 눈은 이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같았다. 너무나 차갑고, 너무나 어두워 모든 빛을 삼켜버리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 짙푸른 구멍.


"엘리시아가 가지지 못했던 그 기회 말인가?"


수는 무엇인가 말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끝내 언어는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입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고개를 떨군 수를 향해 케빈은 입을 열었다.


"수."


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속, 자신의 친우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케빈은 알고 싶지 않았다.


"수미개자를 써라.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


수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그저, 아무 걱정없이 자신의 친구와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어제를 이야기하고, 오늘을 즐기며, 내일을 기대하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천계일승이 만들어낸 것은 낡은 의자와 책상으로 가득하던 그 시절의 교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보리수 한 그루만이 존재하는 지평선만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평원이었다.


케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공간에 오는게 얼마만인지도 몰랐다. 오래 전, 엘리시아는 이 곳에 올때마다 너무 심심하다면서 각양각색의 꽃을 심어서 아름다운 꽃밭을 만드는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수는 그저 곤란하단듯이 웃기만 했다.


"수. 어제가 무슨 날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나?"


"....생일이었죠. 엘리시아의."


"아직 기억하고 있군."


"어떻게 잊겠어요. 케빈.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인걸요."


수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천계일승은 소유자의 뜻에 따라 그가 원하는 것을 전송해냈다.


인력(引力)을 다루는 신의 열쇠, 에덴의 별.


죽음과 삶을 다루는 신의 열쇠, 백화흑연.


"그러니 저는 당신을 여기서 막아야합니다."


수는 양 손에 쥔 신의 열쇠를 더욱 세게 쥐었다. 양 손의 무기가 더더욱 무겁게 느껴진건 단순히 그것들을 오랜만에 다뤄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엘리시아를 위해서."


케빈은 팔을 뻗었다. 그러자 무엇인가 깨지는 파공음과 함께 거대한 대검이 공간을 찢으며 날아왔다.


"그러니 나도 여기서 멈춰설 수는 없다."


케빈은 겁멸을 쥐었다. 주인의 손에 쥐인 겁멸이 낮게 진동하며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염을 피어올렸다.


"엘리시아를 위해서."


나는-, 영웅이 되어야만 해.


--------------------------------------------------------------------------------------------------------------------------


케빈은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머리가 아프다. 온 몸이 비명을 지른다. 겁멸에 기댄 몸을 일으켜 세우자, 주위에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였다.


그래, 11율자. 케빈은 대검의 아래에 깔려있는 한 때 율자였던 것의 육편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11율자를 토벌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힘도, 지혜도, 그리고 생명마저도.


케빈은 몸을 발걸음을 옮기려했지만 이내 균형을 잃고 꼴사납게 나동그라졌다.


완전히 드러누운 케빈의 눈에 티없이 맑은 푸른 하늘이 들어왔다.


나는, 또 다시 혼자 살아남았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케빈은 눈을 감았다. 한계를 넘어선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게 느껴졌다.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다. 기지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MEI도.


생존자가 있을지 이 폐허에서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애타게 찾고 있을 수도.


그리고-.


"케빈, 케빈!"


거칠게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케빈은 감았던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흙먼지로 엉망이 되었음에도 빛을 잃지 않은 핑크블론드의 머리카락이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잔뜩 눈물이 맺힌 아쿠아마린색의 눈동자였다.


"엘리시아..."


케빈과 눈이 마주친 엘리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울먹이다 케빈을 꽉 껴안을 뿐이었다.


케빈도 그녀를 껴안고 싶었지만 팔에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언제나 미소지으며 무한한 아가페를 흩뿌리고 다니던 그녀의 나약한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그녀도 케빈의 이런 모습을 보는건 처음이겠지.


그러나, 케빈은 물어봐야만 했다. 서로에게 상처밖에 되지 않을 질문임을 알고있음에도, 그는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엘리시아...몇명이나 살아남았지?"


케빈은 엘리시아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떨림이 멈추고 마침내 엘리시아가 입을 열었다.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는 채 10명도...."


채 10명도 안된다라. 케빈은 심장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 아직도 내 안에는 더 부서질 게 남아있었구나.


케빈은 살아남은 이들의 이름을 굳이 묻지 않았다. 어떤 이름이 나오든, 어떤 이름이 나오지 않든, 더 이상 케빈 스스로가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엘리시아는 조심스레 케빈을 들어올려 무너진 건물에 잔해에 기대놓았다.


겁멸은 회수하지 않았다. 케빈 외에는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저 저주받은 검은 언젠가 싸울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케빈의 손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석양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엘리시아는 말없이 케빈의 옆에 걸터앉았다.


엘리시아와 케빈은 그저 말없이 폐허 너머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다들, 생일 축하해주기로 했었는데..."


"...그래."


우리는 앞으로 몇 명의 율자를 더 쓰러뜨려야 하는 걸까, 우리는 앞으로 몇번의 지옥을 더 넘어야 우리가 바라던 미래를 맞이 할 수 있는걸까.


바라던 미래? 그건 적어도 붕괴가 끝난다한들 케빈한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그의 몸은 이미 사랑하는 연인을 안아줄수 도 없게 변해버렸으니까.


"케빈."


엘리시아가 조용히 케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케빈은 엘리시아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말라붙은 눈물과 흙먼지로 엉망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케빈, 나한테 줬던 생일선물 기억해?"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케빈이 MEI와 함께 만들어 엘리시아에게 주었던 생일선물. 그녀가 그것을 받고 보여주었던 미소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있잖아, 나. 다른 사람들이 줬던 어떤 선물들보다도, MEI랑 케빈이 줬던 선물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


나도 알고있어. 엘리시아. 우리가 준 선물을 너는 단 한순간도 잊지 않고 지니고 다녔잖아. 다른 이들이랑 화기애애하게 대화할때도, 누구보다 앞서서 붕괴에 맞설때도.


"하지만 케빈, 그건 정확히는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어. 다른 사람들이 내게 원하던 선물이었지."


엘리시아는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자신이 꺼낼 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를.


"기쁘지 않았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받고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어. 그저 남들이 주는 것을 받기만 했을 뿐. 그러니까 ."


엘리시아는 케빈을 마주보았다.


"이번 생일 선물은 내가 원하는 걸 받고 싶어."


"...무엇을 원하나."


"후훗, 안된다는 말은 안하네? 역시 케빈이야."


엘리시아는 언제 그랬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빙그르 돌았다.


방금전까지의 슬픈 모습은 어디 갔냐는 듯이 다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며 케빈은 오히려 고통을 느꼈다.


"봐. 케빈. 우리같은 사람들조차도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어. 사람들에겐 희망이 필요해. 절대로 꺼지지 않을 등불과도 같은 희망의 상징이."


엘리시아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등지고 케빈에게 미소지었다. 


석양에 가려져 케빈은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올라간 입꼬리의 실루엣만을 살짝 볼 수 있었을 뿐.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서 반짝인것이 그저 사라져가는 태양의 반사광인지, 아니면 그녀의 눈물인지 케빈은 알 수 없었다.


"케빈."


엘리시아는 알았다. 자신이 지금 그에게 할 부탁이 앞으로의 그의 인생을 어떻게 속박하게 될지.


아니,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그녀의 부탁이 바다 속 깊이 가라앉는 쇠사슬처럼 평생 그를 옭아매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란 걸.


"우리들을 위해서 [영웅]이 되어 줘."


그렇게 석양을 등지고 말하는 엘리시아의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그리고 너무나도 처참해서-.


케빈은 그 주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대신 그것을 뒤집어 썼을테니까.


"그래."


그렇기에, 케빈도 그저 처참한 미소로 답해줄 수 밖에 없었다.

--------------------------------------------------------------------------------------------------------------


"그래서, 그 이치의 코어인가 뭔가 하는거를 찾아주면 제레와 나를 이곳에서 꺼내주겠단 거지?"


[그렇다.]


제레 발레리-정확히는 그녀의 안에 있는 또다른 인격-은 홍옥같은 붉은 눈으로 양자의 바다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를 노려보았다.


"우리를 이곳에서 꺼내줄 정도의 힘이 있다면, 차라리 그 힘으로 직접 코어를 가져가지 그래?"


이번에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네, 네~ 다들 사정이 있어서 그런거겠죠~. 잘 알아요."


[한 가지는 약속하지.]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거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검은 제레는 분명히 범상치 않은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었다. 단순한 매력적이거나 듣기 좋다는 문제가 아닌, 그 존재감만으로도 군중을 사로잡고 휘두를 수 있는 힘을 지닌, 태생적으로 사람의 위에 서기 위해 태어난 카리스마.


[너희와 너희의 소중한 사람들은 안전할 거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보증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남자는 위험했다. 그런 힘을 지닌 남자가 아무 이유없이 이 양자의 바다에서 제대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헤메는 우리에게 접근할 리 없다.


"뭐, 좋아. 결국 이쪽에서도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럼, 거래 성립이네?"


이번에도 목소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인 제레는 주위의 지형에 걸터앉으며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런데 말이지, 이렇게 동맹이 성사된 기념으로 뭔가 주고받을만한 선물은 없어? 예를 들면 먹을 거라던지? 이 몸은 지금 매우 시장하거든."


사실 거짓말이었다. 이미 몇 년을 이 양자의 바다에 갇혀 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허기도, 피로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제레는 달랐다.


그녀도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피로를 느끼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니었다. 이미 몇년 간을 저 좁은 양자의 바다의 틈에 갇혀 지내면서 그녀는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망가져있었다. 간단한 것이라도 그녀를 위로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역시나. 검은 제레는 한숨을 쉬었다. 이쪽이 철저하게 매달려가는 행세인데, 이런 부탁을 들어줄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허공에서 거대한 무엇인가가 제레의 옆으로 떨어져내렸다.


"꺄아아아악!"


어찌나 놀랐는지, 내면에 있던 제레와 인격이 뒤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제레는 머리를 감싸쥐고 웅크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위를 기웃거리던 제레는 천천히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물건에 다가갔다.


그것은 자판기였다. 어찌나 높은 곳에서 떨어졋는지 외장이 완전히 박살난 자판기는 내부에 보관하고있던 음료수나 과자들을 맥없이 토해내었다.


그 수많은 과자 중 제레의 눈길을 끄는 과자가 있었다.


제레는 과자더미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들었다. 길쭉한 밀가루 반죽에 초콜렛을 얇게 입힌 과자.


"또 하나의 나, 혹시 이 과자 기억나?"


'응. 기억나지.'


"11월 11일이 되면 브로냐 언니가 몰래 방으로 가져오곤 했잖아. 그렇게 둘이서 먹고 있으면, 갑자기 로잘리아랑 릴리아가 자기들도 먹고 싶다면서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기도 하고, 신도 관심없는 척 몰래 들어와서 1,2개 가져가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가 먹을건 두 어개 정도였지만..."


'그래도, 즐거웠어.'


"맞아."


과자를 보며 추억에 빠진 제레를 깨우는 것은 허공에서 들린 목소리였다.


[11월 11일...?]


"앗! 저희는 11월 11일에는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런 과자를 전해주거든요. 혹시 목소리 씨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야! 제, 제레!'


검은 제레는 놀라서 푸른 제레를 말렸지만 그녀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과자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선물을 전해줬었다. 우리에게 그날은 기념일 보다는 누군가의 생일이었지.]


"와! 무슨 선물을 전해줬나요?"


[화려한것, 그렇지 않은 것. 비싼 것, 흔한 것. 그 무엇을 전하든 그녀는 웃으며 받아주었다.]


"정말 좋은 분이었네요!"


제레는 싱긋 웃으면서 질문했다. 


목소리의 주인인 뱀, 아니. 케빈 카스라나를 지옥같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질문을.


"그렇다면 목소리 씨는 그 분에게 무엇을 받았나요?


---------------------------------------------------------------------------------------------------------------------------


끝없이 이어진 복도를 걸으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은, 케빈 카스라나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엘리시아가 모두를 떠난 날이기도 했다.


그토록 많은 선물을 줬었는데, 그 대가로 케빈에게 돌아온 생일선물은 푸른 수정꽃이었다.


상흔처럼 심장 깊숙히 쑤셔박혀, 절대로 잊지 못할 날카롭고 차가운 파란색의 수정꽃.


선물을 받은 것은 케빈 뿐만이 아니었다.


오늘, 그녀를 믿고 만나러 와준 3명의 영웅들. 빌브이, 아포니아, 그리고 에덴.


엘리시아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기억의 증표로 각각의 색을 본딴 수정꽃을 선물로 남기고 사라졌다.


별과 달에서 내려온 신의 딸은 다시 별로 돌아갈게요. 아름다운 추억도, 잊을수 없는 기억도 전부 두고 가요. 꽃을 볼때마다 나를 기억해줘요.


동화 속 마법의 존재처럼, 그녀는 작별인사와 함께 빛이 되어 그녀가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오늘 이 자리에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은 제각각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모두의 가슴속에 남을 터였다.


"왜 그래? 다들 침울하게."


먼저 입을 연 것은 빌브이였다. 그녀는 언제나 수많은 가면들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기만하는 마술사였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니었다. 그저 [빌브이]였다.


"엘리시아가 이렇게 고개 푹 숙이고 우울해하라고 마지막에 연회를 연게 아니잖아."


"맞아."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에덴이었다. [황금]의 가희, 그리고 이 중 그 누구보다 엘리시아와 가까웠던 사람.


"엘리는 우리를 신뢰했기에 이 꽃들을 맡기고 간거야. 설령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이라도 그건 변하지 않아."


에덴의 황금빛 눈이 케빈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케빈. 우리는 여기서 멈춰서는 안돼. 설령, 엘리는 인류의 배신자가 아니야. 붕괴에 맞서 이김으로써 엘리시아가 틀리지 않았다는걸 모두에게 알려야 해."


케빈은 자신의 손에 들린 수정꽃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저 손바닥보다도 작은 악세서리일 뿐인데. 그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케빈."


아포니아가 수정꽃을 쥔 케빈의 손을 기도하듯이 감싸쥐어 가슴께로 가져갔다.


"미래를 보았어...우리의 미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無)였어."


"엥? 아포니아. 그건..."


"전부 스러져서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야. 빌브이."


아포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정말로...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그건 우리의 미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거야.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어. 케빈. 엘리시아는 틀리지 않은거야."


내가 맞이하지 못했던 미래를 만들어가. 케빈.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두와 함께했던 [진아]의 소녀가 아직도 옆에서 속삭이는 것만 같았기에.


케빈은 아포니아의 손을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손 안에서 밝게 빛나는 푸른 수정꽃을 바라보았다.


무결한 인간, 엘리시아가 케빈을 믿고 맡긴 증표.


"그래."


케빈은 수정꽃을 꽉 쥐었다. 어째서인지, 차가운 무기물일터인 수정꽃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붕괴에 승리한다."


---------------------------------------------------------------------------------------


케빈은 손 안의 수정꽃을 바라보았다. 수정꽃은 완전히 반으로 갈라져 이전같은 아름다운 푸른 빛을 다시는 찾아보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완벽하게 붕괴에 패배했다."


케빈은 힘없이 읆조렸다.


"아무것도 종언을 막을 수 없었어. 칼파스가 모두를 지키려 몸을 던졌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이내 코스마도 칼파스의 뒤를 따라갔다."


케빈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두꺼운 외벽너머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달이 있었다.


"그 외에 누가 더 죽었지? 나는 모르겠어. MEI. 내 모든 걸 다 쏟아부어도 그저 시간벌이에 불과했어. 내 몸을 챙기기도 힘든데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 그게 중요하겠어?"


케빈은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연인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대답해줘. MEI.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고,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그러나 연인에게서 대답이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이미 모든 생명반응을 멈춘 그녀의 몸은 너무나도 차갑고, 그리고 너무나도 가벼웠다..


"제발....제발 부탁이야. MEI. 대답해줘...."


케빈은 너무나도 차가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는 따뜻한 그녀의 손을 껴안으며 그저 힘없이 읆조릴 뿐이었다.


수는 완전히 무너져버린 자신의 친구를 보며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자신까지 무너져버린다면 정말로 모든게 끝이었다.


"수."


"...케빈."


"먼저 가서 만물휴면을 가동해. 곧 뒤따라가겠다."


"...그래."


수는 알고 있었다. 그의 오랜 친구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저 죄의식에 묻힌채로  역사의 한페이지가 되어 여기서 사라지는 것을 택할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한들, 누가 그를 탓하겠는가.


자신의 친구는 최선을 다했다. 그는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 친구로써, 자신이 해 줄수 있는 것은 그저 그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뿐.


수가 문을 열고 복도 너머로 사라지고 케빈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처럼 조용하고 긴 잠에 들어간 MEI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MEI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케빈은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그리고 그의 친구가 향한 만물휴면이 있는 장소와는 반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MEI와, 그리고 수많은 동료와 함께했던 추억이 서린 장소들. 기쁨, 슬픔, 환희, 회한. 그 모든 것이 존재했던 불을 쫓는 나방.


케빈은 건물을 돌아다니다가 로비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11월 11일. 엘리시아의 생일.


그 순간, 케빈의 머리속에서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과거의 낙원.


그것은 해서는 안되는 짓이었다.


모두가 후세의 인류를 위해 남겨놓은 것들을 단 한순간에 망쳐놓을 수도 있는 일.


그러나 그것은 지금의 케빈에게는 상관없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케빈은 황급히 달려나갔다.


수많은 보안이 설치된 문을 지나가, 복도 저 멀리 잊혀져 갈 기억들을 위한 낙원의 통로가 보였다.


엘리시아.


케빈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어쩌면, 자신은 뛰고있는게 아닐지도 몰랐다. 그저 알 수 없는 절규를 흩뿌리면서, 네 팔다리로 추하게 낙원을 향해 기어가고 있을 뿐일지도 몰랐다.


엘리시아. [잔아]의 영웅. 


낙원의 문이 점점 가까워졌다.


엘리시아. [잔아]의 영웅, 무결의 인간, 인류의 율자.


저 너머에 그녀가 있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엘리시아. [잔아]의 영웅, 무결의 인간, 인류의 율자. 기원의 율자, 핑크엘프 양, 모두가 사랑하는 소녀.

엘리시아, 엘리시아. 제발 부탁이야. 이제 괜찮다고 해줘. 나는 충분히 노력했다고 말해줘. 이젠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어. 제발 이제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해줘.

나는 더 이상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나를 용서해줘, 엘리시아. 나는 영웅이 되지 못했어. 제발 나를, 나를.


나를 이제는 놓아줘.


마침내 낙원의 문이 열렸다. 케빈은 평소의 그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한껏 뒤틀린 미소와 함께 문을 열어제꼈다.


그리고 그곳에서 케빈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너가 오지 않기를 바랬다."


"너는..."


그는 흑색의 코트와 함께 불꽃의 대검을 쥐고 케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케빈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온 낙원 속의 기억체. 


[구원]의 각인을 지닌 제 1위의 영웅. 케빈 카스라나.


"....비켜."


"그렇게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을텐데."


"난 무슨일이 있어도 엘리시아를 만나야만 해. 당장 비켜."


기억체는 그저 케빈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같은 그 눈에 케빈은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너는 결국 꺾여버렸군."


진짜 케빈의 몸이 움찔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기억체인 자신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곧, 그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어. 모두가 날 떠났어, 심지어 MEI마저도... 난... 난 더 이상 못하겠어. 나는 실패자야. 제발 나를 내 버려둬. 이제 모든 걸 끝내게 해줘...."


그저 엎드려 흐느끼는 케빈에게 기억체가 천천히 다가섰다.


"아니, 틀리다."


데이터로 이루어진 겁멸이 케빈의 머리 바로 옆의 바닥을 뚫고 박혀들어갔다.


"그 날, 엘리시아에게 맹세했었지 않나."


케빈은 고개를 들어 겁멸을 보았다. 겁멸에는 유약하기 짝이없는 인간 케빈이 비치고 있었다.


"[영웅]이 되겠다고 너는 그날 맹세했다. 지금 너의 모습이 [영웅]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아니, 엘리시아가 원한 영웅은 이런 모습이 아니야...."


"그래. 다시는 원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꺾여버린건가? 그렇다면 내가 너를 덮어씌워주마. 패배를 경험하기 전의 너로."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지?"


케빈은 이미 답을 알고있었다. 그는 자신이니까. 


하지만 물어봐야만 했다.


"엘리시아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원하는 생일선물을 주겠다고."


케빈은 겁멸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그곳에는 망가진 인간 케빈 카스라나는 더 이상 없었다. 그 곳에 있는 것은 [구원]의 영웅, 인류를 구원할 의무를 지닌 영웅 케빈 카스라나였다.


"이건...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그래."


기억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빈~. 선물은 어디있어? 다들 네가 이번엔 무슨 선물을 가져왔는지 궁금해한다고~."


낙원의 열린 문 안쪽에서, 그토록 듣고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빈은 잠시 움찔했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안에서는 그녀의 생일파티를 하는 중인가?"


"그래. 그녀의 생일이니까."


바람을 타고, 핑크머리의 소녀 이외에도 보고싶은, 더 이상 보지 못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러나 케빈은 더 이상 거기에 미혹되지 않았다. 이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엘리시아에게 전해주겠나? 늘 고마웠다고."


"그렇게 하겠다."


기억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고 낙원의 문은 다시 닫혔다.


케빈은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은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케빈은 가슴팍에 넣어둔 쪼개진 수정꽃에서 알 수 없는 무게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꺼내보지 않았다.


엘리시아. 나는-,


나는 [영웅]이 될게.


네가 원하던 [영웅]이.

---------------------------------------------------------------------------------------------------------------


키아나는 대검에 기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흙먼지가 가득한 구덩이를 노려보았다.


[키아나, 아직 생명반응이 느껴집니다!. 그 일격을 맞고도 아직 살아있다니..]


"알고 있어. 브로냐."


이내 흙먼지가 걷히고 구덩이에서 그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케빈 카스라나. 구문명 최강의 영웅. 붕괴에 맞서 이기기위해 현인류가 넘어야 할 최대의 벽.


케빈은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안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쿨럭.


케빈은 죽은 피를 한껏 토해냈다.


가슴을 가로지르는 상흔은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상처였다.


그러나 케빈은 달랐다. 


"...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어가기 시작한다.


케빈은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눈 앞의 소녀를 보았다.


키아나 카스라나. 자신의 머나먼 후손. 신염의 율자.


어쩌면, MEI와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있었더라면, 그 아이도 저렇게 생겼을까.


케빈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의로 손을 집어넣었다.


피로 물든 그것은 예전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는 깨진 석영의 덩어리였다.


가슴팍에 넣어둔 수정꽃의 잔해가 최후의 일격을 막아줬다, 그런 만화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저들의 일격은 치명적이었지만 케빈의 숨통을 끊을 정도는 아니었다. 단순히 그뿐인 이야기였다.


그렇다해도, 이런 상황에서 잠시나마 의식을 잃고 주마등을 보다니.


"그건..."


케빈은 다시 키아나를 보았다.


엘리시아가 남긴 유산. 그녀가 붕괴의 의지에 새기고 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상흔. 그것이 그녀들의 존재였다.


그녀는 엘리시아와 전혀 닮지 않았다. 저 반항적인 날카로운 눈매도, 새하얀 은발도, 엘리시아와는 전혀 다른 푸른 눈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빈은 그녀에게서 엘리시아를 느낄 수 있었다.


엘리시아, 엘리시아.


"그건 당신에게 소중한 물건이야?"


케빈은 잠시 손에 쥐여진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수정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힘을 주어 그것을 세게 쥐었다.


"아니."


케빈의 손 안에서 수정꽃은 덩어리진 형태마저 잃고 가루가 되어 달의 대지로 흩어져갔다.


"너희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차갑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몸을 뜨거운 붕괴수의 피가 흐른다. 엉망이 된 코트를 찢고 거대한 날개가 케빈의 등뒤에서 솓아 올랐다.


"이제 그만 끝내자."


그래, 이제 그만 끝내자. 엘리시아.


다시 한번 겁멸에서 화염이 불타오른다. 키아나도 거기에 맞서 대검에 박힌 율자코어들의 힘을 전부 끌어모았다.


모든 것이 불타오른다. 차가운 달의 대지를 두 불꽃의 뱀이 먹어치운다.


엘리시아. 이제는 된거지?


나를 놓아줘. 저 아이들을 놓아줘.


나도 이제 너를 놓아줄게.


검과 검이 맞부딪히고, 서로를 먹어치우려는 불꽃들이 어지러이 춤춘다. 


그리고 마침내 불꽃이 사그라들고, 작열하는 대지에서 걸어나온 것은-.


--------------------------------------------------------------------------------------------------------------------------



케빈 카스라나는 손 안에 선물상자를 들고 한숨을 쉬었다.


이미 엘리시아는 저 너머에서 커다란 케이크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상자들로 탑을 쌓아놓고 있었다. 


포장지만 보더라도 저 안에 자신과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나게 비싼 물건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봐, 바보 케빈. 뭐하고 있는거야?"


등 뒤에서 자신을 밀치는 감각에 케빈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떠밀려나왔다.


"어머. 케빈, MEI. 너희가 안오는줄 알았어."


"응, 엘리시아. 이 바보가 부끄러워서 못나가고 우물쭈물대고 있는걸 끌고온거야."


"후후, 케빈도 참...대체 무슨 선물을 가져왔길래?"


엘리시아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케빈을 바라보았지만 케빈은 여전히 선물을 등 뒤로 숨긴채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케빈. 같이 밤새워서 만들었는데, 내 노력까지 허사로 만들 셈이야?"


그러나 케빈은 끝내 선물상자를 내밀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케빈에게 엘리시아가 일어나서 다가왔다.


"케빈."


아름다운 하늘색의 투명한 눈동자가 케빈을 바라보았다.


"약속해. 어떤 선물이든지 비웃지 않을게. 케빈이 처음으로 내게 준 선물이니까. 소중하게 간직할게."


MEI의 속을 알 수 없는 장난스러운 보라색 눈동자와는 다른 모든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투명한 눈동자. 케빈은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엘리시아는 선물을 받아들어 무릎위에 올리고 천천히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얀 손이 섬세하게 묶인 리본을 천천히 풀어내고, 그리 비싸지는 않은 포장지를 전부 벗겨내자 작은 목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뚜껑을 열자-,


엘리시아는 숨을 삼켰다.


안에 들어있던 것은 브로치였다. 엘리시아가 좋아하던 분홍색 장미꽃을 그대로 수정으로 조각해서 만든듯한 작은 브로치.


"나는 기술만 제공하고 직접 만드는건 이 바보가 다했어."


메이의 손짓에 케빈은 부끄러운듯이 얼굴을 붉히며 뺨을 긁적였다.


"...엘리시아는 꽃을 좋아하지만 전장에 생화를 들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언제나 좋아하는 꽃을 가지고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어."


케빈은 고개를 숙였다.


"더 좋은 걸 주지 못해서 미안..."


그러나 엘리시아가 다가와서 케빈의 손을 낚아채었다. 당황하는 케빈이 손을 빼지 못하게 양손을 기도하듯이 모아잡은 엘리시아는 케빈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아. 케빈."


엘리시아는 미소를 지었다. 케빈이 지금까지 보았던, 그리고 앞으로도 볼 미소 중에서 제일로 아름다웠던, 눈물이 살짝 맺힌 환한 미소를.


"내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게."


"....그래."


케빈은 엘리시아를 따라 멋쩍은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 둘을 보며 MEI의 입꼬리도 기쁜듯이 호선을 그렸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엘리시아가 어찌나 그 수정꽃을 아꼈는지, 앞으로 그녀가 살아가면서 그녀의 마음에 드는 모든 것들에 그 수정꽃을 덧붙인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 아름다운 수정꽃이 엘리시아를, 그리고 케빈을,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면서 만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그 아름다움으로 매혹하고, 사라지지 않을 저주받은 주박으로 묶어놓는지.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생일 축하해. 엘리시아."


별과 달에서 내려온 신의 딸.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웠어.


생일 축하해.


그리고 안녕.


안녕히, 엘리시아-.






우당탕탕 엘리시아의 생일잔치 대소동 


-完-


----------------------------------------


시간대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어지러운건 최근에 '모멘토'를 재밌게 봐서 흉내내볼려고 했는데 잘 안된것 같아요.

봐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