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사장님.."


"응? 왜 그러십니까? 중장 토끼."


"저.. 이번 버그 수정, 대강 마쳤어요."


"..'대강' 마치셨습니까?"


"아, 아뇨! 아뇨! 전부, 전부 문제없어요!"

"그게.. 갑자기 업데이트를 적용해 보니.."

"고치던 버그가 사라져서 그랬던 거에요. 헤헤.."


"..흠, 좋아요. 수고 많았습니다. 중장 토끼."


"아,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신규 보스와 전용 스테이지 기믹 구상은 마치셨나요?"


"히익!"


"아직 안 끝나셨습니까?"


"그.. 그게.. 매번 일에 몰두해도 시간이 모자라서요, 헤.. 헤헤.."

"브로냐 사장님이 조금.. 도와 주신다면.."


"..저번에도 일손을 거들어달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중장 토끼."

"지금, 디자인을 맡는 건 저 뿐이니.. 중장 토끼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판단합니다."



"..우.. 우아아..."


"저, 저어어.. 퇴근은.. 언제 할 수 있나요..?"


"휴.. 그럼, 제레가 올 때까진 잠시 쉬도록 하십시오."

"컨셉 제시나 베타 버전 플레이는 제레도 도울 수 있으니까요."


"감.. 감사합니다, 브로냐 사장님.."


중장 토끼는 책상 위에 드러누워서..

익숙하다는 듯이 책상 밑면에 고정된 서랍을 발로 밀어내 열은 뒤,

안에서 푹신한 이불 한 덩이와 베개를 꺼냈어.


이불은 침낭처럼 푹신하고 두껍게 되어 있는데다,

베개가 이불 윗면에 붙어 있어 휴대용으론 몹시 실용적이었지.


중장 토끼는 피곤에 찌들은 몸을 푹신한 이불 위에 눕히자마자,

온 몸의 신경계가 찌릿한 느낌과 함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어.


'아아아..'

'너무, 행복해..'


그렇게 중장 토끼는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서서히.. 감기 시작했어.


"우음.."





"사장님! 드디어 [아라하토 : 리부트 코어]가 개발이 완성되었어요!"


"수고 많았습니다, 중장 토끼! 이제 발매 후 평가만 기다리면 됩니다!"


"1800만장, 1900만장.. 2000만장 돌파! 브로냐 사장님! 대 흥행이에요 흥행!"

"이번에야말로 전작 [아라하토]로 얻은 오명을 씻어 낼 수 있게 되었다구요!"


"네, 저도 보고 있습니다. 중장 토끼!"

"고생 많았습니다, 이건.. 이번 달 보너스입니다!"


"이.. 이... 이건..!"

검고 세련된 가죽 가방을 건네는 브로냐,

두근두근대며 가방을 연 중장 토끼는

엄청난 양의 번쩍이는 금괴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어.


"우.. 우와아아아! 눈, 눈부셔! 사장님! 이건..!"


"중장 토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몇 년간은 푹 쉬면서 요양하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정, 정말요! 야호! 브로냐 사장님! 만세---"






".. 음.. 얼추 끝..군요."


"제레가 올 때도 다.. 으니.. 이제.."



'...으응..?'


무언가 몽롱한 듯 멍한 머리.

눈 앞에 김이 서린 듯한 흐린 눈앞..


'우.. 뭐지..'

'나 분명.. 사장님의 게임이 흥행한 뒤..'

'장기 휴가를.. 떠났을 텐데..'



"...응?"


"이런, 중장 토끼. 지금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중장 토끼는 반쯤 감긴 눈으로..

누워서 브로냐를 빤히 쳐다보았어.


그러곤 엄청 기운 없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지.


"사장님..? 저, 어떻게 된 건가요..?"

"분명... 휴가랑.. 엄청난 보너스를.. 받았던 것 같은데.."



"...음.. 좋은 꿈이라도 꾸었나 보군요. 괜찮습니다."

"지금 다시 주무신다면, 그 꿈나라로 향할 수 있을 겁니다."


"..꿈..이요..?"


"아닙니다. 피곤하실 테니, 어서 주무십시오. 중장 토끼."


"아, 네에... 아아.."


중장 토끼는 피곤을 이기지 못했는지..

브로냐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어.



그러나, 아쉽게도..

중장 토끼는 그 행복한 꿈을 다시 꾸지는 못했지.


검은 화면만 보는 것처럼..

아무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시간만 지나게 되었어.





"중장 토끼. 중장 토끼."


"일어나십시오."


"중장 토끼..!"



"우.. 우으음... 사.. 사장니임.."


"조금만 더.. 자게 해 주세요..."


"지금 일어나시면 많이 피곤하시진 않을 겁니다."


"자, 중장 토끼. 일어나세요."




"우으으으으..."


어렵게 눈을 비비며.. 무거웠던 눈을 뜨는 중장 토끼.


그런데.. 뭔가 이상했어.


'어라..'

'나 왜.. 눈이 안 비벼지지..?'


열심히 손을 움직이려 해도..

마치 양 팔에 감각이 없는 듯.. 어깨 너머로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았지.



'뭐야.. 이, 이거..?'

'브로냐.. 사장님..?'


다리를 움직여서 브로냐에게 향하려 해도..

역부족이었어.


이번에는 다리조차 양팔처럼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거든.



'뭐야.. 뭐야.. 무서워..'


방법이 없는 브라우니는,

목소리라도 내어 열심히 브로냐를 불렀어.


"사.. 사장님.. 브로냐 사장님..!"


"..브로냐 사장님!!"


"앗..!"

"일어나셨군요. 중장 토끼."


다른 책상에서 컴퓨터를 매만지던 브로냐는,

중장 토끼가 있는 방향으로 또각. 또각. 걸어오기 시작했어.


중장 토끼의 눈앞엔..

무언가, 평소보다 더 커진 듯한 브로냐가 있었지.


"사장님.. 저, 눈 앞이 잘 안 보여요.."

"눈곱이 조금 낀 것 같은데.. 떼어 주실 수 있나요?"


"아, 물론이죠."


브로냐는 중장 토끼에게 다가와,

안경닦이 같은 헝겊으로 눈을 쓱쓱. 문질러주었어.


이상하게 평소 상태라면 눈 안의 습기를 천이 잔뜩 빨아들여서 아파했을 테지만,

지금은 별 거부감이 없었지.


"사장님 저, 이상해요.."

"양팔이나 다리가.. 말을 안 들어요.. 어떻게 된 거에요..?"


"아, 그건.. 이걸 보시면 될 듯 합니다."


브로냐는 곧 스탠드형 미니 거울을 하나 가져온 뒤,

중장 토끼 앞에 보여주었어.


중장 토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지만.. 그건..

평소의 귀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남성 음경 모양의 망측한.. 파란색 막대가 있었지.


"...뭐.. 뭐.. 뭐에요.. 사장님..?"


"거울입니다. 중장 토끼."


"저,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요.. 제 모습이.. 이게.."

"이게 대체.. 뭐냐구요..!!"


"으윽, 조금 조용히 하십시오. 중장 토끼."

"귀청 떨어질 뻔했습니다."


"조용히..? 조용히 하라구요?! 제 모습이 이 모양인 걸 알았는데도 조용히 하라구요?!"


"사장님,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빨리, 원래대로 돌려 놓으세요!"


"으음.. 중장 토끼. 저도 이런 건 처음 해보는 거라서,"

"상태가 어떤지 바로 알 수 있도록 대화가 가능하게 설계해둔 겁니다."

"그러니, 돌려놓을 이유는 없겠죠."


"상태가 어떠냐구요? 나빠요, 아주 나빠요!"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절 자위 기구로 개조하시는 건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혹시, 이걸 위해서 저보고 눈 좀 붙이라고 말씀하셨던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여튼, 중장 토끼. 당신이 할 일이 있기에 이런 모습이 된 건 먼저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할 일이라니, 이 모습으로 뭘 하라구요!"


"그건.. 아."


띠링--

지이이이--..


저 멀리, 기계 알림음이 서로의 대화를 끊어 버렸어.

그건 사원증으로 회원 인증을 하면서,

자동문을 여는 소리였지.


"아, 제레. 왔군요."


"브로냐 언니! 오랜만이야!"



"제, 제레.. 제레가 온 거야?!'

"제레! 도와 줘! 사장님이 갑자기 이상해져서.. 날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고!"


"어.. 중장 토끼..? 설마.."


"그래, 제레! 나 여기 있어!"

"요 이상한 물건으로 변해 버려서, 꼼짝도 할 수가 없어졌어!"

"제발.. 제발 도와줘!"


"중... 중장 토끼.."

"아.. 이.. 이건.. 이건.."



"..어떻습니까. 제레."



"..이건.."





"..생각보다 더 잘 나온 것 같아! 브로냐 언니!"



"..?!!"


"역시, 제레라면 마음에 들어할 줄 알았습니다."


"뭐.. 뭐..? 제레, 너 설마.."


"헤헤.."

제레는 중장 토끼를 보며 빙긋. 웃어보였지.


"중장 토끼. 이런 모습도 마음에 드는걸."

"기억나? 그 복실복실한 모습도.. 너와 브로냐 언니를 위해 만들어 주었던 거잖아."


"..그.. 그건.. 그건 맞지만.."


"하지만.. 중장 토끼. 네가 귀여운 몸을 가지고 나서는, 쉴 틈도 없이 일하고.."



"그래서 나도 브로냐 언니에게 부탁했거든.."

"너랑 나랑 같이 쉬어 가면서.. "

"다같이, 기분 좋아지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 그런 건 같이 놀이공원이라도 놀러 가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도 되잖아!"

"제레, 왜 이러는 건데! 대체 왜.."


"..미안해, 중장 토끼."

"실은, 또 하나의 나에게 거부감 없이.. 그.. 교육을.. 해 주고 싶었거든."


"... 스무 살이 된 지도 꽤 오래 지났을 텐데,"

"검은 제레의 성 지식 상태는 몹시 초라했습니다."

"이상한 만화나 글로 성을 배우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것들을 아예 찾아볼 줄도 모르는 건 좀.."


"으음.. 그래서, '제레'를 도와주기 위해 중장 토끼. 네 도움이 필요해."

"제레는 마음이 여려서, 분명 실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징그러워하며 질색할 게 뻔하다고."


"그.. 그러니까아.."

"그냥 평범한 성인용품을 사러 가면 됐잖아..."


"평범한 성인용품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중장 토끼."

"완전히 기계로 변한 것 같지만 이래 봬도 제레가 만들어 준 유기물 구조를 어느 정돈 유지한 채 재구성한 형태입니다."


"즉, 항온 동물의 성질. 남성 성기의 생리 작용. 심지어는 중장 토끼 자신이 쾌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 다만.. 안의 체액은 실제 체액이 아닌, 유사 외형을 가진 액체만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들으니까 더 이상하잖아요!"

"무기를 달고, 오토바이로 변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저도 엄연한 인격체라구요!"


"하하, 중장 토끼. 당신은 주민등록증도 없지 않습니까?"


"!!"


"어느 나라, 어느 도시로 가도 아직은 AI 인격이 사람과 동등해지는 곳은 없습니다. 중장 토끼."


"..너.. 너무해! 이런 건 너무하다구요! 사장님!"

"제레, 제발.. 다음에 베이킹 수업 해주러 가지? 케이크 재료도 미리 만들고 청소하는 것도 내가 다 할게. 제발 다시 생각해 줘!"


"미안해, 중장 토끼.."

"그래도.. 이번 일만 끝나면 브로냐 언니가 휴가를 주겠다고 해서.. 조금만 참아 줘."


"중장 토끼가 이번 일로 충분히 괴로워한다면, 저번처럼 몰래 도망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브.. 브로냐 언니! 그건.. 농담이지..?"


"물론, 농담입니다."


"휴, 브로냐 언니. 그런 말을 하면 중장 토끼도 겁먹는다구.."


그러면서 브로냐는 제레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 사이.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중장 토끼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살짝 지었어.


'..망했다아..'

'저번에 디저트 세트를 한정 판매하고 있어서 사장님 몰래 도망갔던 일을..'

'아직까지 삭혀 두고 있었을 줄이야..'


중장 토끼는 절망했지만,

방법이 없었지.

그녀는 이미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도 없는 상태였거든.


"자, 중장 토끼. 같이 가자."

"잠깐 어둡겠지만.. 여기 들어가 있어 줄래?"


그러면서 제레는 검은 비닐봉투를 살짝 흔들어보였어.


"으.. 으아아.. 으아아아.."

"제레, 안 돼--------!"







"으, 으아아악--!"

"허억.. 허억.. 허억... 아..."


초승달이 옅게 떠 있는 밤.


중장 토끼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어.


"하아, 하아.. 하아.. 뭐.. 뭐지..?"


"꿈.. 꿈인가..? 꿈.. 맞지..?"


중장 토끼는 본인의 휴대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했어.

오전 3시 21분.

퇴근한 뒤 곯아떨어졌다면.. 충분히 지금 일어날 법도 한 시간이었지.


눈 앞의 시간으로는 믿겨지지 않는지, 볼도 여럿 꼬집어 가며 확인했어.

"아, 아하하.. 다행이다, 하하.. 하.."


"으으으..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화장실이나 갔다 와야지.."


그러나,

중장 토끼가 미처 알지 못한 게 있었어.



왜 퇴근한 뒤 다음날 오전이 아닌..


퇴근한 후 3일 뒤가 지난 다음 일어나게 된 걸까?




..사실 진짜 제레랑 같이 하는 걸 쓸까 했는데..

살아 움직이는 중장 토끼 딜도를 표현하자니 쓰는 나도 보는 나도 미치지 않을까 싶어서 관뒀어..

대회 글에 이런 게 들어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