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나마 네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는게 느껴져... 그러니 너는 살아야......'



그 사람에게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 그것은 소녀의 가슴속 깊이 뿌리내려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개미주제에 나를 막겠다고? 어디 한번 해보라고 천명의 발키리!!"



다만 그녀의 상대는 너무나 강대했다. 상대의 말대로 소녀는 그 앞에서 개미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상대의 손짓 한 번, 눈 짓 한번에 소녀의 몸은 찢겨져 만신창이가 되어갔고 바닥은 피로 물들어갔다. 그럼에도 소녀는 검을 쥔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고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쓰러져서는 안 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발키리로서의 의무 때문이 아니었다. 세계평화니 인류의 수호이니 하는 거창한 것 또한 그녀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여태껏 자신을 지켜준 단 한 사람을 이번엔 자신의 손으로 지켜주고 싶을 뿐이었다.



"하! 눈빛만 살아서는 이제 그만 ㅈ......."



상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검이 움직였다. 상대방의 인지를 넘어선 그 움직임은 마치 동시에 3번의 검격이 날아드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의 검은 상대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그녀의 힘 만으로는 허수방벽을 뚫기는 역부족이었으리라.



"흥~ 소용없어~ 아까의 그 인간만 아니라면 너 정도는 아ㅁ......."



그녀는 이번에도 말을 다 끝마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검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아까보다 더 빠른 검격.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통하지 않는 공격. 역시 그녀의 힘은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하지만......



"소용없.........!!!!"



제2 율자는 순간의 섬뜩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볼에서 따뜻한 피가 주륵하고 흘러나왔다. 검이 날아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피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애초에 율자가 되기 이전에 평범한 여자아이였을 뿐이니 그 정도의 동체시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너....! 어떻게......!"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아.....하아...... 제 무기가 망가진 덕분에 새로운 무기를 가져온 것이 제게 행운이었던 모양이군요. 마침 보급된 검이 펄스 태도 17식이라 다행입니다."



푸른 머리의 소녀뒤로 영체로 이루어진 6자루의 검이 떠올랐다.



"사부의 공격을 완전히 막지 못했던 것을 보면 당신의 그 보호막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던 거겠죠. 그렇다면!" 



6자루의 검이 빠른 속도로 찔러 들어갔고 검을 쥔 소녀는 그보다 더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꺄악!"



총 7자루의 검으로 펼쳐진 수 십번의 검격중 허수방벽으로 막지 못한 단 한번의 공격. 그것이 제 2율자의 팔을 꿰뚫는데 성공했다.



"이......! 건방진 개미가!!!"


"무슨...!"



2율자의 분노어린 외침과 함께 소녀의 머리 위로 수많은 공간 균열이 생성되어 창과 큐브가 쏟아져 내렸다. 이를 본 그녀는 그 중 하나라도 자신에게 직격한다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그것들을 피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큭....!"



불찰이었다. 아주 작아보이는 큐브 하나를 칼로 막아 쳐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작아 보이는 외관과 달리 큐브의 질량은 상식을 벗어났다. 십년이 넘게 단련한 강인한 발키리의 육체였음에도 칼로 막는 순간 팔이 삐걱이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는 억지로 허리를 비틀어 큐브를 빗겨냈고, 이어 머리위로 떨어지는 창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찮은 개미야~ 아까의 그 자신감은 어디간거야~?" 



제 2율자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어느세 그녀의 왼쪽 팔은 검에 찔린 적도 없다는 듯이 치료되어 있었다. 아마 죽음의 율자 코어의 힘을 쓴 것 일거다. 검을 쥔 소녀는 입안에 고인 피를 퉷하고 뱉어냈다.



'이건.... 좋지 않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몸 내부에 충격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펄스 태도 17식도 아까의 충격으로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더 이상 영체의 검을 소환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특수 기능은 사라졌지만 벤다는 본연의 기능은 살아있는 검을 고쳐쥐고선 율자를 향해 돌진하였다.



"하핫~! 개미야~ 이제 포기한거야?"



쇄도하는 창들을 향해 소녀는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기회는 단 한번뿐이야....!'



소녀의 푸른 머리가 다시 한번 휘날리는 순간, 물러난 거리를 창을 피해 순식간에 좁혀 낸 소녀는 다시 한 번 검을 내질렀다.



『캉!』



맑은 소리와 함께 옆에서 날아온 큐브로 인해 검이 두동강 났다.



"안됐네~ 실☆패 야"



제 2율자는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때~? 이전에도 당한 적 있지? 익숙한 고통아냐? 그립지? 아하하하하하"



고온의 광선이 소녀의 복부를 뚫고 지나갔다. 



'아파. 아파. 아파. 뜨거워.'



소녀의 신경 하나하나를 불태우는 그 고통에 소녀는 눈앞이 하얘졌다. 검을 놓쳐버렸다는 것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소녀가 고통에 쓰러지려는 순간, 발을 내밀어 한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리셰..... 걱정하지 마세요. 사부가 왔습니다.'



"변화의 극에 달한 신일지라도....."


"응~? 뭐라고? 그게 유언이야? 재미없네"



푸른 머리의 소녀, 청 리셰는 품에서 금이 가고 이가 나간 약수를 꺼내 들었다.



"아하하하하! 뭐하나 봤더니 그 망가진 장난감으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진짜 멍청한 거 아니야?"



"만물의 아름다움은.....변형시킬 수 없다."



그 순간 망가진 약수가 짧게 빛을 내더니 순식간에 원래의 예리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예전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계곡의 투명한 물처럼 밝은 푸른빛을 내던 검신은 그녀의 머릿칼처럼 묵빛 푸른색을 내었고 검신의 길이는 그녀에게 맞춰 조금 더 길어졌다. 태허검기의 제 3온 '검의'를 얻은 것이었다. 



".......!!!"



사고를 하는 생물에게 있어 예기치 못한 신기란 모든 의식을 압도할 만큼 강력한 것이다. 놀라움, 경악, 당혹감. 어떤 감정이 들던 간에 찰나의 순간 동안 머릿속을 그 이미지가 지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율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그 현상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체 앞의 발키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모습이 변화한 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청 리셰는 그 한순간의 틈을 놓칠 만큼 무른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모아 검을 휘둘렀다.



'리셰 잘 들으세요. 태허검기는 심, 형, 의, 혼, 신 다섯개의 온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럼 신으로 가는 게 강해지는 길이며 태허검기의 목표군요!'


'아니요. 신은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으나 그것 자체가 태허검의 목표는 아닙니다. 신은 혼으로부터 오고 혼은 의로 부터 오며 형은 심으로 부터 옵니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태허검의 모든 온은 심으로 부터 오며 심이 부서지면 신도 부서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이 가장 높은 단계가 아닌가요? 높은 단계로 올라가면 강해지잖아요.'


'맞습니다. 높은 단계로 올라가면 강해지겠죠. 하지만 뿌리가 없이 열매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태허검의 모든 온은 심으로 부터 가지를 뻗어갑니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가 더 큰 과실을 맺듯이 심을 단련함으로서 다른 형, 의, 혼, 신 모두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그럼 심은 어떻게 단련하나요?'


'마음을 하나의 호수라 생각하고 천천히 늘려가는 겁니다. 하지만 늘리기만 해서는 심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넓어지기만 한 호수는 물이 부족해져 말라져 버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기에 검심결을 외우며 내공을 갈무리해 물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걱정, 근심, 증오 같은 것들로 호수가 흔들리면 물이 넘쳐버리고 맙니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게 되거나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죠. 마음속 호수의 물을 잔잔하게, 흔들림 없이 정리하는 것. 이것이 검심의 경지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이해가 잘 안가요. 어려워요.'



그 말을 들은 기억속의 사부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조급해 하지 마세요 리셰. 당신은 아직 어리니까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수련을 하다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



그녀의 일격은 허수방벽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검이 튕겨져 나오는 순간, 물로 이루어진 검이 제 2격, 3격, 4격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튕겨져 나온 반발력을 이용해 한바퀴 돌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청 리셰는 사부가 떠나간 뒤 오랫동안 무진의 경계를 넘지 못했다. 사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는 생각에 단 한 순간도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누가 알았겠는가. 겉으로는 차가워보이는 이 소녀가 속으로는 폭풍우를 맞이한 바다처럼 파도가 사납게 넘실거리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미안하구나,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하지만 희미하게 나마 네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 그러니 너는 살아야........'


'사부의 그 말에 전 너무 기뻣습니다.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단지 소중하게 여긴 것이 저 뿐만이 아니었음을 알았기에, 제가 당신을 실망시킨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저에게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습니다.'



후회와 원망이 사라지고, 성난 파도를 가라앉혀 잠잠해진 호수는 한점 흔들림없는 물로 가득 차있었다. 청 리셰가 무진의 경계를 넘어 명경의 경지로 들어선 것이다. 애초에 이 싸움은 A급 발키리가 어찌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A급 발키리중 최강이라고 불리는 청 리셰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게 제 2율자가 만들어낸 의사율자에게 조차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해보고 죽음의 문턱을 밟고 온 그녀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그 힘을 뛰어넘는 제 2율자와 대등한 싸움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심적으로나 무공적으로나 그녀가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그녀의 힘은 S급 발키리의 문턱을 밟았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부의 권은 내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 하지만 약수의 능력을 이용해 이런 속임수를 쓴다면 비슷하게 나마 재현은 할 수 있어.'



"꺄아아악!"



영체로 이루어진 6자루의 검을 사용할 때는 단 두 번의 공격밖에 유효타를 먹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제 2율자의 몸에 상처를 몇 개나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됐다!'



청 리셰의 약수가 허수의 방벽을 넘어 제 2율자, '시린'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푹.』



날카로운 날붙이가 살을 꿰뚫고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아.....?"



청 리셰가 고개를 내리자 커다란 창이 자신의 복부를 뚫고 나온 것이 보였다. 율자에게만 신경쓰고있는 사이 뒤에서 창이 날아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의 상대는 제 2율자. 공간의 권능을 다루는, 인류를 멸하기 위해 나타난 사도. 뒤쪽에 포탈을 열어 창을 쏘는 것 정도야 그녀에게 있어 숨 쉬는 것 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였다. 마치 창이 배에서 부터 자라난 뿔처럼 보였다. 무릎이 굽혀졌다. 배에 꽂힌 창은 바닥에 박혀 그녀가 편하게 눕는 것 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흐려져 가는 눈에 들어온 것은 힘없이 축 쳐진 자신의 손에 떨어져 있는 찢어진 머리끈이었다. 뒤 쪽에서 창이 날아와 박힐 때 관통한 것이 틀림 없었다.



'사부...... 머리 한번만 더..... 묶어달라고 하고 싶었는데......찢어져 버렸네...... 이러면 머리... 못 묶는데...'



그녀가 어린 시절 그녀의 사부가 묶어준 머리끈. 그때부터 그것은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되었다. 그녀의 사부가 떠난 뒤에도 그녀는 이를 바꾸지 않았고 낡은 머리끈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동기가, 선배가, 후배가 너무 낡은 끈 대신 다른 끈을 선물해줬지만 그녀는 한사코 고집을 피우며 그 낡은 머리끈만을 사용했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생명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네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는게 느껴져... 그러니 너는 살아야........'



"죄송합니다. 그 말, 못 지킬 것 같습니다. 당신과 함꼐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인 것 같아요."



'리셰 오늘 식사는 완탕면입니다. 좋은 새우가 들어왔어요. 리셰는 이 요리를 정말 좋아하네요?'



'아...... 사부...... 한 번만 더 함께, 완탕면을 먹고 싶었는데...... 저 연습도 많이 해서..... 이제 저도 맛있게 만들ㅅ...........'



"흥, 이제서야 죽은거야?"



시린이 죽음의 율자 코어의 힘으로 상처를 회복시키며 살포시 내려왔다. 



"개미가 이렇게 질길 줄은 몰랐어~ 내 생각보다 죽는 게 오래 걸렸잖아. 건방진 녀석은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알려줘야겠지 시체도 남겨주지 않을거야."



그녀는 갈망의 보석의 힘으로 불꽃을 끌어올리며 생기를 잃어버린 그녀에게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때 황금빛으로 빛나는 깃털이 시린의 옆으로 내려 앉았다.



"응? 뭐야? 하하. 너희가 남기고 간 선물이야? 정말 신기하네. 이 깃털을 사용해서 내 의식에 침입한거구나. 그럼 이 새 장난감을 시험해볼까."



새로얻은 장난감에 대한 기대감으로 제 2율자는 청 리셰에 대해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

.

.

.



"....ㄹ셰!"



푸른 눈에 파란빛이 감도는듯한 회색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짧은 외침과 함께 침대에서 눈을 떳다.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기억나지 않는 악몽이라도 꾼 듯 하였다.



"아, 깨어나셨군요. 잠시만요. 앰버님을 불러오겠습니다."



간호복을 입은 여성이 방을 나가자. 주변을 몇 번 둘러본 회색 머리칼의 여성은 자신의 코트를 챙겨 방을 빠져나왔다.




천명의 의료건물을 빠져나온 여성이 향한 곳은 신주의 태허산이었다. 그곳은 예로부터 '정위선인이 산다'고 신주의 전설로 전해져오고 있다. 


정위선인. 정위진인이라고도 불리며 신주의 수호신, 태허검의 개파사조 때로는 선각자로도 불리며, 지금 시대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이름인 Hua 혹은...... 후카. 그것이 그녀다.


그녀는 그녀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자주 기억을 잃곤 한다. 잠시 까먹는 수준의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은 그녀에게 있어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인 것 마냥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자신이 기억하는 자신의 물건, 주변 환경의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 하는 것. 그로 하여금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뭔가가 자신에게 어떤 것 인지를 대충 짐작하곤 하는 식이다.


그녀가 해둔 기록에 의하면 그녀가 태허산의 집을 비운지 몇 년이 되었다. 그런데 거미줄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정기적으로 이 곳을 청소한다는 것이다. 이 곳은 신주사람들에게도 신성시 되어 아무나 함부로 들락날락 할 만한 곳이 아니며 산세도 험하기 때문에 자신이 집에 들인 사람이 아니면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저의 지인이 이 곳을 청소해 왔다는 것이겠죠. 그것도 최근까지......'



그렇게 후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주방에서 우당탕하며 물건이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후카는 즉시 주방으로 가 문을 열어젖혔다.



"리ㅅ.....!"



그러자 푸른 제비 한 마리가 열어 젖힌 문으로 빠져나와 후카를 스쳐 지나갔다. 아마 창문이 열려있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제가 방금 뭐라고......'



후카는 한참이나 머리를 부여잡고 떠올려보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우도진 제 1정격출격의 부작용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억이 타버린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떠올릴 수 없다. 후카는 한숨을 쉬며 고민하기를 그만뒀다.



"이왕 주방까지 온 거 밥이나 해 먹어야겠습니다."



그녀는 태허산에 올라올 때 사온 식재료들을 풀어놨다. 새우가 제 철이었기 때문에 꽤나 질 좋은 새우가 시장에 있었고 그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새우도 있겠다 완탕면을 해야겠군요.'



몇십, 몇 백, 몇 천번이나 해 보았던 요리. 그녀에게는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요리였다. 



'어라? 왜 두 그릇이나 만든 거지?'



그녀는 당황했다. 자신도 모르게 두 그릇이나 만들다니. 그녀는 먹을 것 에 그리 욕심이 있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많이 먹을 리도 없었다. 이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하아...... 그렇군요. 저는 한동안 누군가와 같이 지낸 적이 있었던 것인가 보군요.'



후카는 추가로 만들어둔 완탕면을 버리지 않고 함께 식탁으로 가져왔다.



"좋습니다. 오늘은...... 같이 먹도록 하죠."



후카는 누군지도 모를 그 사람에게 말했다. 



"분명 혼자 외로웠을 테지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후카는 젓가락을 집어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완탕면의 국물은 굉장히 따뜻했으나 그녀는 어쩐지, 가슴 한 켠이 시리다고 생각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달이 떠오를 것이다. 해와 달은 같은 곳에서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달은 해를 사모했지만 영영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는 옛 이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