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iler ALERT!

 페나코니 끝까지 밀고 스토리에 빠지다보니 한번 써보고 싶었음. 여러 창작물을 보고, 그중에서 스토리를 좀 깊게 다루는 작품이 있다면, 꼭 한번씩 등장하는게 있음. '현실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고, 완벽하게 이상적인 꿈이라면 그곳이 이상향이 아닌가?' 이번 페나코니도 그런 줄기였고. 하지만 이번 붕스도, 영화쪽에서는 메트릭스도 그렇고 유명한 소설인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만 가도(이 경우는 꿈은 아니지만) 이러한 구조를 부정하고 있음. 

 근데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음? 사실 현실과 구분할 수 없으면 그냥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거 아닐까? 모든것이 충족되는 이상향이면 사실상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길이 바로 그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한번쯤은 들거임. 장난식으로 주0일제 지지합니다라고 하지만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을거임. 

 일단 이거에 대해 난 2가지 철학적 견해와 그걸 통해 반박을 한번 해볼거임. 사실 나도 제대로 이해는 못해서 깊게는 못하고 이걸 보고 한번 고민하는 재미를 느껴봤으면 함. 

 일단 첫번째는 우리가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한번쯤은 봤을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인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임. 일단 들어가기 앞서서 인식론에서는 우리가 신체 즉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을 좀 불완전한 지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음. 감각은 상황에 따라 외곡되는 경향이 있어서. 그래서 '이성'을 강조하는거고. 이러한 전제에서 나온게 위에서 나온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임. 

 회의론적인 방법은 절대적인 지식은 없다는 전제하에 끝없이 의심을 하는 방법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음. 그래서 데카르트가 모든것을 부정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신의 존재여부조차 부정을 하는거임. 그런데 모든것을 부정하더라도 단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나가 바로 '나는 생각한다' 라는거고. 여기서 '나는 생각을 한다 -> 그러니 생각을 하는 나는 존재한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생각을 한다라는 상황자체가 있을수 없으므로.' 이런식의 결론으로 명제가 탄생을 했다라고 간단하게 정리를 할 수 있음. 

 여기서부터는 첫번째 데카르트의 명제로 '나의 반박'을 하는거임. 

 데카르트의 명제에서는 나의 '존재'를 '생각하는 나'로 전제하고 있음. 근데 '꿈'은 사실 무의식의 영역이라 '생각'과는 거리가 좀 멈. '꿈'안에서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은 '의식'적인 행동인데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적인 행동을 하는것은 이미 논리적으로 오류가 발생함. 즉 방법론적 회의론으로 우리는 꿈속세계에서 우리의 존재여부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임. 왜냐? '생각'을 할 수 없으니까. 

 위의 데카르트의 방법이어 두번째는 수업시간에 한번 들어봤을 '칸트'의 견해임.

이건 솔직히 나도 배웠는데 이해를 못해서 내가 이해한 만큼만 한번 해보겠음. 칸트는 자신의 책 3권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을 통해 여러 견해를 밝혔는데, 그중에 하나를 짧게 소개하고자 함. 엄청 자세하게 알 필요까지는 없고 칸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성의 영역, 즉 '실천이성'이라고 했고 자연의 영역을 '이론이성'이라고 했는데, 칸트는 자연의 영역인 '이론이성' 보다 자유 의지의 영역인 '실천이성'의 영역이 더 우위라고 봤음.

 우리가 비록 무엇인가를 선택할때 완벽하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선택'한다는 행위 자체는 우리의 자유의지라는 것이고, 우리가 행위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것은 우리의 '실천이성'이 '이론이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니까. 칸트는 이 인간의 '자유'를 굉장히 중요시 해서 '인간이 정의롭지 않다면(자유롭지 않다면) 지구에서 살아갈 가치가 없다. 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음. 

 이를 기초로 이 '행복한 꿈'이 왜 문제인지를 말해보겠음. 

행복한 꿈은 분명 낙원으로 보임. 모든것이 충족되고, 현실과 구분이 안됨. 근데 이번 페나코니도 그렇고 보통 이런 '꿈'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움을 보장하지 않음. '꿈'안에서 자유롭게 보일지라도, 그 '꿈'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자유'가 없음. 

 칸트는 이러한 삶은 곧 '자유'가 없는 삶이기에, '가치'가 없는 삶으로 여기는 것이고, 보통 '빨간약'이 나오는 이유도 아마 이러한 전제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싶음. 현실이 아무리 괴로워도 '자유의지' 즉 '실천이성'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고,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명제중 하나이며, 인간이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니까. 


나는 이러한 두가지의 방법으로 왜 '행복한 꿈'이 완벽한 대안이 아닌지 반박을 해봤음. 사람에 따라 여러 견해도 있고, 이 '행복한 꿈'이 더 좋다는 의견도 물론 맞을수도 있음. 난 이래서 이번 페나코니 스토리가 참 재밌는것같음. 철학적으로 생각할게 너무 많아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