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이란 작자는 여느 때와 같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에겐 뭐 달리 할 것이 없던 터였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는 유학생인 그는 한국과는 별 연고가 없던 터였다. 두 세 명의 지인만 남겨두고 고국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그나마 몇 안 되는 친구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종종 돌아오곤 했다.
둥그런 안경, 반곱슬의 갈색 머리를 한 그는 전체적으로 마른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얇디 얇은 팔이 특히 그랬다. 그가 들고 있던 책이 400 페이지 가량의 두꺼운 책이라, 그의 앞에서 불교 경전을 필사하던 한 노인은 그 광경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요즘 것들은 보릿고개도 안 거쳤으면서 뭐 저리 말랐는지… 저런 팔을 하고서 두꺼운 책을 세로로 비스듬히 읽을 건 또 뭐냔 말이야, 석탄을 젓가락으로 쥐려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는 다만 책에만 몰두한 채, 이따금씩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기 위해 핸드폰을 펼쳐 볼 뿐이었다. 그가 읽던 책은 전부 영문으로 되어있었는데, 확실히 모국어로 된 책보다 읽는 속도가 느렸다. 벌써 10분째 한 페이지만 붙잡고 머리를 긁적대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 이를 보고 번역된 책을 읽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여기엔 이강석의 고지식함이 한 몫 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주변에 이런 망언을 하고 다녔다.
‘번역물들은 쓰레기다. 작가의 진정한 뜻을 알기 위해선 원문을 읽어야 한다. 자기 편하자고 번역된 판본을 읽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이다.’
이문열을 비롯한 한국의 대 문호들이 들으면 발끈할 소리였다. 언어 제국주의라면서 말이다. 어쨌든 이강석이 읽던 글은 ‘Analyzing Cultures’라는, 기호학에 관해서 쓰인 글이었다. 회계학을 전공하던 그는 외려 경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재단’ 이란 개념을 단체 비슷한 것으로 뭉뚱그려서 이해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주변에 ‘나는 커서 NPO(None-Profit Organization, 비영리단체) 재단을 세울 거다’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재단이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야말로 언어 도단이었다.
그가 기호학 책을 읽고 있던 이유는 교수의 추천 때문이었다. 언어학과 문화학에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한 그는, 사실 모든 분야에 능통하다고 허세를 부리는 그였지만, 학교의 언어학 교수한테 찾아가 움베르토 에코 같은 언어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나 움베르토 에코의 책 한 권 안 읽은 작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알아차린 교수에겐 그 학생이 참으로 딱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것만큼 비극적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감을 깎아 내리는 대신 그 교수는 학생에게 두 권의 책을 추천해주었다. 이강석의 생각을 어느 정도 바꿔놓기 위해서였다. 자기 자신을 모르면 뭘 가르쳐봤자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강석은 자기가 얼마나 오만하고 무례했던지 방학 동안 깨닫던 중이었다. 영자신문과 뉴스를 별 문제없이 읽어내던 그는 자기가 영어에 능통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러한 기대는 책에 파묻혀 지내면서 무참히 조각난 터였다. 그러는 한편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들이 얼마나 얕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계속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는데, 그는 별 답변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기호학이라 함은 대충 설명하자면 ‘인간이 왜, 그리고 어떻게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에 대한 학문’이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뭔가에 대해 정의를 내려서 파악하려는 그의 태도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무언가에 대한 정의 혹은 비유는 결국 인류가 만들어낸 하나의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 기호학의 큰 전제 중 하나였다. 그러니 누가 나쁘니 좋니, 무엇이 실용적이니 낭비적이니 하는 것은 결국 한 구성원의 말에 불과한 것이라 절대적인 진리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어떻게든 주장하기 위해 과거에는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 진리를 창출했으며. 그 뒤로는 정치지도자가 왕권신수설이니 뭐니 하는 권위로서, 현재는 사회 구성원들의 계약 및 약속을 통해 진리를 만든다. 부연 설명 하자면 성경에 적힌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어주어라’라는 구절이 사회의 어떤 규범이 되었다면, 형법의 살인죄에 대해 적힌 법 조항 또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결국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강석이 이해한 기호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