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맺힌 이슬의 냄새는 으레 그렇듯이 달콤하다.


그것이 아무도 없는 도시의 빈 자리를 채우는 탁한 기름 냄새보다 훨씬 맡기 좋은 냄새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각또각, 어둠을 채우는 구두 소리가 어디론가로 향했다.


작은 휘파람 소리와 함께, 구두 소리는 또 다른 음악이 된다.


소리의 주인은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도심 속 깊은 어둠을 따라 걷다 희미한 빛을 내는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아니, 정확히는 가로등 앞에 있는 "맨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다 꺼져갈 것 같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라도 소리의 주인을 밝혀 주기에는 충분했다.


가볍지만 결코 질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구두, 짙은 오로라빛 스커트가 광채를 발했다.


그리고 그 위 새하얀 숄과 분홍색 블라우스가 근엄함, 혹은 고급스러움을 자아낸다.


얼굴에 걸쳐진 선글라스는 분홍빛과 옅은 노란빛, 자두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 위에 걸쳐져 가로등 빛을 반사시켰다.


 잠시 동안 발을 굴렀던 여성은 무릎을 굽히고 주변을 살핀 뒤 조심스럽게 맨홀에 손을 대었다.


일정 거리를 두고 배치된 다른 맨홀들과는 달리, 이 맨홀에는 쉽게 붙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었다. 


여성이 힘을 주고 맨홀 뚜껑을 들어올리자 굉음을 내며 맨홀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 감춰진 상아색 사다리를 드러냈다.


기름 냄새보다 훨씬 더 역한 불쾌한 냄새가 났지만 여성은 그 정도는 개의치 않고 조용히 사다리를 붙잡으며 내려갔다.


내려가는 일련의 동작은 몹시 빨랐지만 그 순간에도 그녀의 붉은 눈은 주변을 놓치지 않았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맨홀 뚜껑을 닫고 사다리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마침내 단단한 바닥이 여성의 발에 닫자 여성은 심호흡을 한 다음 숄을 털며 옷매무새를 다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생 이런 장소와 인연이 없을 터였다.


여성은 두 손을 털고 스커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잠시 시간을 확인한 뒤 걸음을 재촉했다.


하수구의 한 켠에는 더러운 오수가 흐르고 벽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으나 여성은 오직 앞으로만 걸었다.


그렇게 몇 분 걸었을까,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어둠 속에서 뭔가가 여성의 길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커다란 거구의 남자와 남자의 등 뒤를 과시하듯 놓여 있는 커다란 폐 컨테이너였다.


 "멈추십시오."


 남자는 손을 뻗어 여성을 제지시켰다.


여성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고스란히 허리 옆으로 위치시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비지니스."


 여성은 달콤하고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거구의 남자는 귓가에 연결된 뭔가를 누르더니 작게 누군가와 대화를 시도했다.'


짧은 대화를 끝내고 두 손을 허리 뒤로 숨긴 남자가 짧게 한 단어를 중얼거렸다.


 "Reach The TOP."


 "으흠, We are ReGLOSS."


 남자의 말을 듣고 여성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숙련된 발음으로 단어를 이어 받았다.


그 말을 듣고 거구의 남자는 여성을 향해 고개를 슬쩍 숙였다.


 "환영합니다 580번 손님, 좋은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생해요~"


 거구의 남자는 자신의 등 뒤에 있는 폐 컨테이너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안에서는 다 낡아빠진 화물이 아닌 어디론가로 향하는 고급스러운 문이 나타났다.


여성은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문을 붙잡고 열었다.


그 곳은 또다른 세상이었다.


어둑한 조명인 것은 똑같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테이블과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귀티나는 손님들, 그리고 널찍한 바와 우직하게 서서 다른 사람들의 주문을 받고 있는 바텐더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선글라스나 가면, 모자 같은 것으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여성 역시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선글라스를 내려 착용하면서 바텐더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여성이 가까이 다가오자 바텐더는 여성을 알아보고 퍽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오십시오 이치죠 사장님."


 "리리카라고 하셔도 괜찮다니깐요."


 여성은 살포시 의자에 앉으며 바텐더에게 시선을 옮겼다.


 "항상 먹던 걸로 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바텐더는 잠시 사라지더니 곧 아름다운 술 한 잔과 소세지 세 개를 그릇에 담아온다.


리리카의 눈에 반짝이는 빛이 서렸다.


곧바로 술과 함께 소세지가 리리카의 목으로 넘어갔다.


 "헌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잠깐~부탁을 하나 받은 게 있어서요,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신경쓰지 않고 말하기엔 여기가 딱 좋잖아요. 의뢰주랑은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바텐더의 질문에 리리카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술잔 너머에 비춰지는 자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런 잔에, 리리카의 얼굴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얼굴이 비춰졌다.


 "좋은 밤, 리리."


 잔 너머에 비춰진 건 새하얀 노멘,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인 드레스였다.


워낙 특이한 옷이지만 이 곳은 모두가 특이한 옷차림을 하고 자신을 숨기기를 좋아하는 장소.


조금 더 특이하게 생겼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리리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멘 너머에 있는 여성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담았다.


리리카의 손길이 닿았음에도 여성은 당황하지 않고 노멘 사이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손가락을 고스란히 느꼈다.


 "의뢰주가 막 도착했네요."


 "오호, 30분 전부터 오셔서 누군가를 기다리시나 했는데 이치죠 사장님을 기다리고 계셨군요."


 바텐더는 진심으로 놀라며 - 아니면 리리카와 노멘을 쓴 여자를 대우하기 위해서인지 - 미소를 지었다.


 "좋은 밤, 라덴."


 노멘 속이 열리고 아름다운 보석같은 눈을 가진 여성의 얼굴이 나타난다.


 "많이 마셨어?"


 "두 잔? 많이 안 마셨어~"


 "그런 것치고는 혀가 살살 풀리는 거 같은데? 얼굴도 살짝 빨개져있고."


 "리리랑 같이 있는데 먼저 취할 수야 있나~"


여성은 리리카의 곁에 앉으며 바텐더에게 재빨리 또다른 주문을 신청했다.


 "자 그럼, 일 이야기를 해볼까? 우리 라덴은 무슨 일이 있어서 이 늦은 시간에 날 이렇게 몰래 불러내셨을까?"


 '이치죠 코퍼레이션의 사장' 이치죠 리리카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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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야기는 오늘 리리카 사쵸가 가진 '바' 에 대한 이미지를 토대로 만들어본 이야기임.


다소 과장이 있을 순 있으나 사쵸는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