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땅굴 무저갱 깊숙이서. 그 끔찍하고도 황홀한 것이 눈을 띄워 시선을 올려보낸다.


주석을 때리는 미물들의 소음에 눈을 뜬 것인지, 본래 깨어나야 할 때에 맞춰 일어난 것인지.


고개를 드는 것 만으로도 교회의 첨탑보다도 높게 솟아올라, 신이 자리잡은 땅을 내려다 보는 그것의 자태는, 그야말로 불경함 자체이며 동시에 경외의 상징이었다.


그 모습에 누군가는 절망하며 주저앉았고, 누군가는 도망칠수 없음을 알면서도 마차를 띄워 달아났다.


남은 것은 오직 두 무리뿐.


가장 신실한 자들은 감히 신에 도전하는 그것의 불경한 자태에 분노하며 모여 들었고, 가장 불경한 자들은 사람과 나라의 눈을 피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은밀한 폭력성을 해방하기 위해 그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비로운 그것 앞에선 모든 것이 평등했다.


가장 고결한 사제도, 추악한 연쇄 살인마도. 모두 그것 앞에 피부를 찢으며 자신의 내용물을 죄다 꺼내 바쳐야 했으니까.


피부를 들어낸 인간은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의 아래, 범우주적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색채 우주 너머 또 다른 별에서 피륙을 초월한 새로운 신체를 얻고, 그것의 열렬한 신도가 되었다.


그제서야 그 분의 모습을 볼 수 있게된 신도들은, 인피로 싼 책 위에, 자신의 피를 잉크삼아 그 분의 모습을 기록해 내려갔다.


"대충 요약하자면 이런 느낌일까."


"헤에, 이나 선배는 그런 오컬트를 좋아하나 보네요."


"뭐 그런 편이지."


"그래서 그 책에 나오는 괴물은 이름이 뭐에요? 크툴루라던지?"


"으음..."


잠시 고민하기 시작한 이나'니스.


말을 해 줘도 소용이 있을까. 애초에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고, 하찮은 성대로는 발음할 수 없으며, 불경한 귀로는 들을 수도 없을텐데.


"뭐, 이름 없는 괴물이라고 해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