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ZP5eqm4JqM?si=JH8s4wx_RANv8ZEj


いつかは喝采クラップオウデエンス

皆皆、ご唱和あれ!

언젠가는 갈채 클랩 오디언스

모두모두 창화하세!


최근에 대학에서 하이카이노 렌가(俳諧の連歌)라는 걸 배우고 있어. 와카에서 파생되어 나온 한 갈래인데, 바쇼(芭蕉)라는 사람이 유명해.


헌데 이 하이카이노 렌가의 기반이 된 ‘와카‘ 의 특징이 뭐냐하면,

가장 오래된 와카집인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에서 와카는 “창화하는 것“이라 되어 있어.

즉, 와카는 和の歌(야먀토의 노래 = 일본의 노래)가 아니라 唱和の歌, 즉 다 함께 모여 부르는 노래라는 거야.

이는 와카라는 문화 속에 “커뮤니케이션성“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음을 뜻해. 

이 때문에 와카는 대체로 선창과 답가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편지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고. 아예 서로가 주고 받은 편지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서, 그것이 나중에 발견되어 기록물로 편찬되는 일도 비일비재해.


이를 통해 보면, 굳이 “창화하세“라는 표현을 쓴 데에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곤 해.

노래하자, 라던가 함께 부르자 라는 표현이 있는데도 말이야.

굳이 한자를 써 가며 “고쇼-와 아레“, 즉 “창화하세(직역하면 창화 있으라)“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비비데바‘라는 노래가 관객에게 ‘답가를 청하는‘ 레트릭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좀 더 말해보자면, 비비데바 라는 이 노래의 가사, 즉 호시마치 스이세이가 선창한 노래에 화답하는 이가 없다면, 이는 와카의 측면에선 “노래로써 성립하지 않는 천박한 것“이 되어버려.

이 사례는 기노 쓰라유키의 토사닛키(土佐日記)에 나와 있는 내용이기도 해. 한 인물이 와카를 읊으나, 그 인물을 영 탐탁지 않게, 즉 천박하다 생각한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와카에 한 마디도 답가를 읊지 않거든.

하지만 비비데바는 수많은 사람들이 코멘트(답가)를 달고, 

가사와 가창을 고찰하고, 

이를 통해 호시마치 스이세이라는 인물을 찾아보고,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돼. 

심지어 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안무를 추거나, 

영상에 삽입하면서, 

하이카이노 렌가의 특징인 “패러디성“까지 갖추게 되지.

이는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존재와,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일본 내에서부터 세계 곳곳까지 “커뮤니케이션“으로써 작용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재료가 될 수 있어.


이건 비단 호시마치 스이세이 만의 사례가 아니야.

특히 일본에서 탄생한 시적, 문학적 창작물은, 그것에 찬동하며 답가를 읊는 이가 있는 한, 이는 하나의 문학적 작품이면서 성공한 커뮤니케이션의 사례로써 남게 돼.


좀 난해한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통해서 그렇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