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즈 오가프라 (오가닉 플라워, 아라가미 오가 + 하나사키 미야비 ) 단편 소설입니다.
* 직접적 성애묘사는 없으나 남자 관계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 근데 딱히 수위 높은 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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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오가, 오가는 부하 같은 것 없어?"
청량한 목소리를 듣고 아라가미 오가는 한 손으로 읽던 책을 덮었다.
그러자 새빨간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타는 듯한 불꽃 같은 머리카락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자연의 바람에 흩날려갈것만 같은 아름다운 튤립의 색이다.
살짝 흔들려지는 노란 시선은 오가에게서 대답을 갈구하고 있다.
보드라운 턱선을 타고 내려가면 열띈 자세로 입을 여느라 목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식탁에 앉아, 다과를 조금씩 입에 넣으며 소년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바빴다.
"부하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미야비?"
오가는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슬슬 읽던 책에도 실증이 나던 참이라 오히려 눈 앞의 소년과의 대화에 시간을 쓰고 싶었다.
정작 이 책을 가져다 준 것은 미야비지만 아무래도 오가에게는 도무지 재미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엔처럼 부하를 막 끌고 다니지는 않아? 갑자기 튀어나오는 악마라든가! 마인이라든가!"
미야비의 눈이 기대감을 품고야 말았다.
"...그 녀석이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한 모양이군."
오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니면 그 실없는 녀석의 실없는 부하들이 뭔가 대단한 자랑이라도 했어?"
카게야마 시엔은 수인의 나라에서 왔다는 마피아다.
마피아는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지만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하므로 당연히 그런 일을 해야 할 부하가 많았다.
오가도 몇 번인가 그들과 만남을 가진 적 있었다.
"자랑이라고 할까, 시엔은 그렇게도 나쁜짓을 도와줄 부하들이 많은데 오가는 딱히 부하가 없잖아."
"하나 말해 두겠는데 미야비, 시엔의 아지트를 제 집 드나들듯이 다니는 건 너 정도만이다? 알곤 있어?"
오가는 큼직한 손을 들어 미야비의 이마를 가리켰다.
평범한 남자는 조직 아지트에 들어가기도 전에 경비원에게 크게 혼쭐이 나겠지만 이 소년, 하나사키 미야비는 시엔의 전용 VIP로 취급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방문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엔이 놀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했으니까 그렇지."
"어이, 마피아 조직에 놀러 가는 남자가 어디 있냐?"
어쩐지 헛바람이 드는 웃음이 나오는 오가였다.
"그리고, 내가 부하를 데리고 있지 않은 건 부하가 필요 없기 때문이야. 마계 전쟁은 예전에 끝났으니 더 이상 사역마를 만들 필요도 없고 그나마 알고 지내는 녀석들은 마계에 있는데 이 곳에 마계 녀석들을 불러봤자 좋을 거 하나 없잖아?"
라고 말하며, 오가는 슬며시 자신의 방을 내려다 보았다.
이 곳 역시 평범한 인간은 올 수조차 없다.
정원에 마계 식물을 심어 두었기에 어리숙한 침입자가 오면 한 입에 꿀꺽이다.
하지만 식물들에게 미야비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해 두었기에 지금 이렇게 미야비가 자신의 방에 올 수 있었다.
미야비가 너무나 자주 와서인지, 이제는 마계 식물들이 미야비가 오면 위협적인 잎을 벌려서 미야비를 환영한다.
미야비도 퍽, 그들을 반겨주었다.
"그런가~확실히 그렇네, 오가는 이제 군인이 아니니까."
미야비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금방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싸우려면 싸울 순 있지만, 안 싸우는 편이 좋지...널 위해서도 말이야."
오가는 책상에 손을 올리며 미야비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천 년 동안 너무 오랫동안 손에 피를 묻혔어, 마계든 이 세계든간에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오천 년...그러고보니 오가는 오천 살이 넘었지, 가끔 잊어버려."
미야비의 말이 실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가끔 오가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마인의 삶은 길다.
그렇기에 한 때는 시간의 흐름이 정말로 느리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요즘은 어쩐지 빠르게만 느껴진다.
조금만 눈을 감았다 뜨면, 눈 앞에 있는 소년이 금방금방 나이를 먹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 죽어도, 오가는 계속 살아가겠구나."
미야비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더니 갑자기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 있어?"
오가는 굳이 마인적인 감각을 사용하지 않아도 미야비가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야비는 처음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으나 곧 천천히 시선을 내리며 작은 입을 열었다.
"이즈루군이 이야기해 줬어, 마인의 사역마가 되면 평범한 인간보다 오래 살 수 있다고."
"..."
"그냥 흘러 지나가듯이, 시엔의 아지트에서 이야기했던 거야. 인간의 수명은 너희들 마인에 비하면 짧잖아. 그렇지?"
"그런 편이지."
오가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다만 그것이 다소 딱딱한 어조로 바뀌어 미야비에게 들렸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는 남은 내 인생이 참 길다고 생각했어, 아직 스무 살도 안 됐으니까 80년은 넘게 남았지. 그래도 - 이제는 가끔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어. 80년이라니, 오가는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80년을 살았을 것 아니야."
미야비는 찻잔에서 손을 떼고 두 손을 배꼽 위에 올렸다.
우아하기도 하지.
오가가 보았던 그 어떤 마계인보다도 이 인간 소년은 정갈하고 고고하며 우아했다.
"만약 있잖아, 내가 오가의 부하가 되면...사역마가 되면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그렇게 된다면 너와 조금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니까."
미야비의 대답에는 한 점의 의심도, 망설임도 없었다.
마인, 아라가미 오가는 헛기침을 했다.
해야만 하는 말을 골랐다.
수천 년 동안 전장을 지내오면서 오가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일생 동안 보아도 다 보지 못할 만큼 어려운 문제를 여럿 겪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문제는 그 오천 년의 경험을 아우를 만큼 어려웠다.
"미야비."
오가는 미야비를 불렀다.
"네 말이, 지금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응."
미야비는 즉시 대답했다.
"내 말은 - 마인에게 영혼을 팔겠다는 소리냐고."
오가는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뭐 내 영혼은 그렇게 비싸지 않으니까? 수명 좀 늘어나면 괜찮은 거래 아닐까?"
"하아..."
오가는 책상을 탕 하고 치며 일어나 안대 옆으로 드러난 한쪽 눈으로 미야비의 얼굴을 주시했다.
"마인에게 영혼을 판다는 건, 그 인간의 영혼이 오로지 마인의 것이 된다는 걸 의미해, 내 허락이 없다면 늙지도, 약해지지도, 심지어 죽을 수조차 없지. 이 법칙은 절대 어겨질 수 없는 마계의 규칙이야."
"응"
"응? 이 아니라니까. 후마나 리오의 경우랑은 달라. 네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놔야 할 수도 있어."
미야비는 진지한 태도로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오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이 아니게 되어도, 괜찮냐고."
오가의 물음에 미야비가 이번에는 조금 뜸을 들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오가는 다소 겁을 준 것 같았다.
미야비가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입을 열기를 어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쳇,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오가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책상을 벗어나려고 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들은지라 미야비에게 겁을 주어 혼내는 듯한 느낌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러나 미야비가 그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뭐?"
"좋다고. 내 영혼을 댓가 삼아 오가의 곁에 오래 있을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해."
"너 말이야..."
"오가도 쓸 만한 부하가 필요하잖아? 아니지. 부하가 아니라 나는 더 대단한 게 되어 줄 수도 있어."
미야비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
"이래봬도 하나사키 미야비는 만능이라구!"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무슨 소리를, 나도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미야비의 눈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나 하나사키 미야비의 영혼을 가져가 주세요 아라가미 오가 씨."
"너 그거 말하는 대상이 잘못됐잖냐...아직 죽을 때도 아닌 놈이."
'그건 칼리 씨에게나 말해야 하잖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쭉 내려갔다.
오가는 책상을 오른손으로 통통 치면서 다른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젠장, 차라리 마계의 괴물들을 도끼로 찍고 말지, 더럽게 골치아프네."
"안...될까?"
미야비는 살짝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참 빨리도 걱정한다.
후폭풍을 생각하기도 전에 대뜸 하고싶은 말부터 한다는게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짜릿짜릿할 지경이었다.
단칼에 거절하는 거야 쉬운 일이다.
게다가 이제와서 사역마를 늘릴 이유도 없었으나 미야비의 시선을 피하는 일만큼은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미야비가 슬퍼하는 모습 역시 별로 보고싶지 않았다.
"좋아."
오랜 고민을 거듭하던 오가의 입이 마침내 다시 열렸다.
"정말?~"
"단!"
오가는 화색이 돌기 시작한 미야비의 얼굴을 급히 제지시켰다.
"앞으로 80년의 시간을 주도록 하겠어, 네가 말했듯이 인간의 수명은 100살에 가깝지. 그리고 네 인생도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내 사역마가 되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보통 인간의 몇 배나 되는 긴 삶을 살 수 있게 돼. 그러니까 지금 당장 대답하지 말고 고민해. 만약 80년 뒤에도 네가 같은 마음이라면 내가 기꺼이 널 아라가미 오가의 악마로 만들어 주지."
"음...그러니까 가계약 같은 건가?"
"그렇게 생각해도 좋고, 완벽하게 허락한 건 아니니까 안심하지 말라고. 언제든지 마음은 바뀔 수도 있어."
"...알겠어!"
미야비는 기쁜 듯이 외쳤다.
"정말 고마워 오가!"
미야비는 힘차게 오가를 껴안았다가 반동으로 튕겨나갔다.
근육질로 탄탄한 오가의 몸에 비해 미야비는 새하얗고 여리여리하기만 하다.
"이런이런, 마계의 군인도 이빨 다 빠졌군."
고작 인간 소년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기 위해서 80년의 시간을 유예로 잡다니.
그래도 해 볼 만하다.
지금 자기 앞에서 나이를 모르고 뛸 뜻이 기뻐하는 이 소년을 위해서 특별히 허락한 거래였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의 전제조건이긴 하나 지금의 미야비의 얼굴을 봐서는 아마 진짜로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위해 오가는 유예의 시간을 주었다.
마계는 넓으나 그보다 미야비의 가능성은 더 넓다.
오가로써는 그것을 지켜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때까지는 손 안에 쥐고 있는 아름다운 분홍색 꽃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기대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