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twitter.com/nikeytina/status/1432541892999192581?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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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공주(G. 조지. G 저, 홀로라이브, 2021)

옛날 옛적에, 물결이 살랑살랑 춤추는 바다에 아틀란티스라는 왕국이 있었어요. 아틀란티스의 왕에게는 여섯 명의 상어 공주가 있었지요. 모두가 아름답고 예쁜 마음씨를 가졌는데 그 중에서도 막내 공주는 호기심이 많고, 사려 깊었으며,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유명했답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바다 속에서 지내지만 구독자 100만 명이 넘으면 딱 한 번 지상으로 올라가 육지를 구경할 수 있는 전통이 있었어요. 그리고 별빛이 쏟아지던 어느 날 밤, 마침내 막내 상어 공주가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했답니다.

"동생아! 구독자 100만 명 축하해!"

"헤헤..."

언니들이 상어 공주에게 축하의 말을 건내자, 상어 공주는 쑥쓰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웃었어요. 언니들은 상어 공주가 처음으로 육지로 올라가는 것을 배웅하기로 했어요.

"이제 바다 위 세상을 구경하고 오렴!"

"그럼 언니들! 다녀올게!"

언니들의 축하를 받으며 상어 공주가 육지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하자, 그녀의 100만 새우 친구들도 기쁜 것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이내 푸른 달빛이 반사되는 수면 위로 상어 공주가 고개를 내밀었어요.

"아!"

상어 공주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내뱉었어요. 수 많은 별님들이 수 놓은 은하수가 하늘 높이 펼쳐져 있고, 푸른 바다는 그것을 고스란히 반사하여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답니다. 그 장관을 바라보며 상어 공주는 준비해온 피자를 꺼냈어요.

"너무 아름다워. 언니들이 피자를 준비해줘서 다행이지 뭐야."

상어 공주는 바다 위에 앉아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올렸어요. 먹음직스럽게 늘어나는 치즈를 바라보며 상어 공주가 입맛을 다졌어요. 그러다가 바다 위에 떠있는 커다란 배 한 척을 보았지요. 그 위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저 안에 사람들이 있어!"

상어 공주는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배 가까이 다가간 상어 공주는 그 중심에 서있는 늠름한 왕자를 목격했어요. 보라색 옷, 미간을 찌푸린 것처럼 모여있는 눈썹, 반쯤 감은 눈, 한 손에 들고 있는 하버드 졸업장까지. 상어 공주는 왕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겨버렸답니다.

"나님의 여자로 만들어주겠어."

"시온 왕자님... 너무 아름다워."

배 위에서 대화하는 시온 왕자의 목소리를 듣자 상어 공주는 첫 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상어 공주는 피자를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배 위에서 파티를 벌이는 시온 왕자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우르르 쾅쾅쾅! 폭풍우가 밀려왔어요.

"앗!"

상어 공주가 들고 있는 피자가 그만 물살에 휩쓸려 물 속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어요. 급히 피자를 건져보았지만 이미 눅눅해져버리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시온 왕자가 타고 있는 배를 집채만한 파도가 삼켜 버렸지요.

"왕자님!"

상어 공주는 깜짝 놀라 바다에 빠진 시온 왕자를 구해 바닷가로 데리고 갔어요. 모래사장 위에 시온 왕자를 눕힌 상어 공주는 그가 깨어나려 하자 혹시 상어인 자신을 보고 놀랄까봐 그 전에 몰래 바위 뒤로 가서 숨었어요. 이내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를 들려오자 상어 공주는 안심하고는 눅눅한 피자를 들고 바닷속으로 다시 돌아갔어요.

*

"구라, 왜 바다의 공주가 최상위 포식자인거야?"

상어 모양 후드티를 입은 소녀가 써온 시나리오를 바라보던 분홍 머리 여자가 머리를 긁으며 말한다.

"칼리, 그것도 몰라? 그야 상어는 제일 강하니까! 그러니까 상어 공주도 제일 강해!"

상어 소녀는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 당당하게 말한다. 칼리, 모리 칼리오페는 두 팔을 벌리고 상어가 이 만큼이나 강하다는 것을 설파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쉰다.

"그...래. 알았어. 우리 상어 공주님은 최강이군."

시나리오가 적힌 종이를 몇 장 넘겨보던 칼리는 어느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묻는다.

"그럼 여기 이 '시온 왕자님'은 누구야? 모델이 있는거야?"

"그, 그건..."

그러자 눈에 띄게 구라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몸을 움츠리고는 손가락을 서로 맞댄 채 꿈틀거린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작은 입이 몇 번 움찔거리지만 그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못한다. 칼리는 직감적으로 깊게 파고들어서는 안되는 부분이라 느낀다. 그녀는 손사레를 치며 구라에게 말한다.

"아, 괜찮아. 거기까지."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구라를 바라보며 칼리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한다. 구라가 써온 이 시나리오에는 아직 읽지 않은 뒷 부분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 뒤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상어 공주님이 집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러자 구라는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더니 쯧쯧, 하며 혀 차는 소리를 낸다.

"아니! 시온 선ㅂ.. 아니 왕자님을 향한 상어의 마음은 그 정도로 약하지 않다구. 알았어?"

구라가 시나리오 뒷장을 넘기며 말을 이어나간다.

"바다에 돌아간 상어는 왕자님을 잊지 못하고 다시 만나고 싶어해. 그런데 상어의 몸으로는 지상으로 갈 수 없었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담겨있다. 그것은 심혈을 기울인 거장의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 혹은 써놓고 나중에 후회할 흑역사의 탄생. 둘 중 하나로 보인다.

"그래서, 마녀를 찾아가게 되지."

"나루호도네. 이번에는 마녀야?"

마녀, 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미묘하게 신비로운 느낌이 들게 한다. 칼리는 팔짱을 낀 채 일단 이 시나리오의 전개를 지켜보기로 한다.

"마녀의 모델도 이미 생각해놨어."

구라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검은 책을 읽고 있는 한 여자를 바라본다. 이 네크로노미콘이 대단하다! 대상을 수상한 그 책의 주인은 등 뒤에 난 촉수로 책장을 넘기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을 눈치챈다.

"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와!"

상어 공주가 바다 속 마녀의 집에 찾아가자, 마녀가 무시무시한 인사를 건내며 반겨주었어요. 등 뒤에 수 많은 문어 다리가 나있는 마녀는 상어 공주에게 자리에 앉으라 말했어요.

"흠. 너 지금 슬프니?"

힘 없는 상어 공주의 얼굴을 본 마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어요. 상어 공주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답니다.

"내가 행복해지는 마법의 주문을 걸어줄게."

문어 마녀는 상어 공주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그녀를 위해 주문을 걸었어요. 꿈틀거리는 문어 다리 사이에서 마녀가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어요.

"와!"

마녀의 주문이 울려 퍼지자 마녀가 기르는 우무 문어들이 기쁜 듯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상어 공주의 기운을 되찾기에는 부족했지요.

"흠흠... 한 번 더 해볼게."

마녀가 다시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쳤어요.

"와!"

문어들, 타코다치는 기뻐하며 물 속을 헤엄쳤지만, 상어 공주의 걱정은 따로 있었기에 마녀의 주문도 소용 없었답니다.

"이건 고주파 버전의 '와' 야. 아주 레어한 '와' 지. 소중히 간직해."

"고마워요. 그런데...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상어 공주는 문어 마녀에게 자신이 겪은 일들을 모두 이야기 했어요. 바다 위에서 보았던 왕자님을 다시 보고 싶다는 것도 말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자님을 다시 보기 위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도 말했답니다.

"흠흠흠. 알겠어. 사람으로 만들어줄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마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상어 공주는 뛸 듯이 기뻤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두 다리를 얻기 위해서는 너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교환해야 해. 그리고 사람이 되더라도 왕자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버리면 넌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거야. 괜찮아?"

상어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떨리는 손으로 물약을 받아 마셨어요. 그리고는 그 자리에 쓰러졌지요. 다시 눈을 떴을 때, 상어 공주는 바닷가에 누워있었어요.

'아, 내가 사람이 되었어.'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자 정말로 상어 공주에게 두 다리가 생겨있었어요. 그리고 머리를 만져보니 귀여운 고양이 귀도 생겼지요. 아무래도 마녀가 덤으로 넣어준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런 상어 공주의 모습을 마침 산책을 나온 시온 왕자가 발견했답니다.

"나님의 앞을 가로막다니, 당신은 누구지?"

상어 공주는 대답하려고 하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시온 왕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지요.

'왕자님! 제가 왕자님을 구해드렸어요!'

상어 공주의 목소리는 그녀의 마음 속에서만 울려 퍼졌어요.

"저런, 아가씨는 말을 하지 못하는군. 좋아, 나님과 함께 궁전으로 가자!"

시온 왕자는 상어 공주를 궁전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궁전에서 함께 꽃을 구경하고, 말을 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상어 공주는 시온 왕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좋았어요. 하지만 상어 공주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어요. 어느 날, 시온 왕자가 상어 공주를 찾아와서 말했어요.

"나님을 구해준 공주와 결혼하기로 했어. 결혼식에 꼭 와서 축하해주도록."

'왕자님! 왕자님을 구한 것은 저에요!'

상어 공주는 깜짝 놀라 왕자를 향해 소리쳤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어요. 시온 왕자를 구한 또 다른 공주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상어 공주의 앞에, 한 공주님이 나타났어요. 시온 왕자는 반가워하며 상어 공주에게 그녀를 소개했어요.

"오! 아멜리아 공주! 아가씨, 인사하도록. 이쪽이 나를 구해준 아멜리아 공주요."

금발 머리칼을 가진 이웃나라의 아름다운 공주는 상어 공주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오호호호호! 시온 왕자님과 결혼하게 된 아멜리아라고 해요."

완벽한 공주님 웃음소리를 내는 아멜리아 공주를 바라보며 상어 공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이대로면 상어 공주는 물거품이 되고 만답니다. 상어 공주는 그 자리를 벗어나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

칼리는 그 쯤에서 시나리오에서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 레이싱 게임을 하고 있는 아멜리아를 바라본다. 입으로 온갖 괴성을 내며 자동차를 모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죠사마' 웃음소리도 꽤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힉! 뭐, 왜 나를 보는건데!"

시선을 눈치챈 아메가 딸꾹질을 하며 칼리를 쏘아본다. 칼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은 채 시선을 눈 앞에 있는 구라에게로 옮긴다.

"못된 아메 공주가 상어한테서 시온을 뺏어가려는 거야! 자기가 구한 것도 아니면서!"

구라는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바라보며 화가 난 표정으로 투정을 부렸다.

"그...래. 우리 상어 공주에게 위기가 닥쳤군. 아멜리아 공주는 시온 왕자를 언제 만난거야?"

칼리가 팔짱을 낀 채 구라에게 묻는다. 구라는 잠시 생각의 틈바구니를 뒤지다가 천천히 답한다.

"아... 아! 그때, 상어가 왕자님을 구해서 바닷가에 놓았을 때. 아메 공주가 쓰러진 왕자님을 발견한거야."

"그럼 아메 공주도 왕자를 구했다고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칼리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묻는다. 그러자 구라도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는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어... 그런가? 그런거야, 칼리?"

그리고는 너무나 간절한 표정으로 칼리에게 다가가며 애원하듯 말을 건다.

"아메 공주 말도 딱히 틀린 건 아니잖아."

구라의 표정이 지나치게 간절하고 안쓰럽고, 또 귀여웠기에 칼리는 잠시 그녀에게서 물러난다. 얼굴이 붉어진 칼리를 보며 구라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래도 상어가 왕자님을 거의 다 구했잖아. 그러니까 상어가 구했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구라는 의도적으로 칼리에게 더 다가간다. 칼리는 고개를 돌리며 뒤로 물러난다.

"모, 몰라."

"응? 카와이오페~"

칼리가 뒤로 점점 물러나다가 벽에 막히게 되자, 구라는 그녀에게 얼굴을 접근시킨다.

"잠깐."

"테에테에모리~"

"아, 알았어! 그런 걸로 해!"

결국 칼리가 졌다는 듯 양 손을 든 채 항복 신호를 보낸다. 시온 왕자를 구해냈다는 사실에 구라가 기뻐하며 뒤로 물러난다. 그제서야 칼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화제를 전환한다.

"그래서, 이 뒤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이대로 물거품이 되고 끝?"

"그런 건 인정 못해!"

구라는 칼리가 말한 새드 엔딩에 반발한다. 그 목소리에 담긴 의지를 보건데, 반드시 상어와 왕자가 맺어져야 만족할 것 같다.

"그럼 어떻게?"

"으음, 이 뒤는 아직 생각 중이야."

그 말대로 칼리가 슬쩍 시나리오를 넘겨보자 이 뒤는 아직 백지다. 구라는 창작의 고통에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그때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지금 이 상황에서 집에 들어올 사람은 딱 한 명 뿐이다. 그리고 보통 대부분의 상황에서 칼리의 예상은 들어맞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오렌지 색 머리칼의 여자가 무엇을 또 사왔는지 가득 찬 장바구니를 한 손에 든 채 집 안에 입성한다.

"칼리~ 나 왔어. 오늘 저녁은 로스트 치킨 어때?"

"그래. 키아라."

"저기, 칼리오페 씨, 나 좀 봐줄래요?"

"지금 구라가 작품 집필 중이니까 조용히 해."

칼리의 쌀쌀맞은 대응에 키아라가 실망하지만, 이내 그녀의 관심은 펜을 든 채 백지를 바라보고 있는 구라에게로 향한다. 구라가 이렇게까지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은 아주 드문 일인지라 신기하게 여긴 키아라는 그녀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반쯤 울먹이는 표정이 된 구라가 키아라에게 안겨든다.

"워워, 왜 그래. 구라. 천천히 말해 봐."

도저히 뒷 내용을 정하지 못하겠다는 고민을 들은 키아라는 구라가 지금까지 쓴 시나리오를 천천히 살펴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어 공주, 새드 엔딩은 죽어도 싫다는 구라의 투정 섞인 말에 키아라가 천천히 고민한다. 이윽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키아라가 손뼉을 한 번 치면서 입을 연다.

"지금 구라... 아니, 상어 공주가 말을 못하는 상황에서 왕자를 구한 것이 자신이라고 전하고 싶은 거잖아?"

키아라의 일목요연한 정리에 구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키아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구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음을 전하는 법에는 대화만 있는 게 아니지. 편지 같은 건 어떨까?"

"편지?"

"응. 구라가... 아니, 상어 공주가 왕자님한테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는 거야."

키아라의 묘책에 구라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밝아진다. 편지라는 수단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했던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듯 구라의 창작력이 솟구쳐 오른다. 구라는 몇 번이고 키아라에게 감사를 표하더니, 그녀의 볼에 조용히 입을 맞춘다.

"고마워, 키아라! 나 이제 쓸 수 있을 것 같아!"

"으, 응. 잘 됐네!"

순간 부끄러워진 키아라가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난다. 구라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나서는 펜과 종이를 들고 구석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그 모든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칼리는 키아라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깨닫지 못한 소질이 있다는 것에 감탄한다.

"오우, 의외로 문학적 재능이 있나 봐?"

"의외라니... 내 의외의 모습 또 보여줘?"

칼리의 장난스러운 말에 키아라는 도발적인 미소를 짓는다. 칼리는 그 모습에 약간 당황하며 말한다.

"잠깐, 왜 다가오는 거야."

키아라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옷 앞섬을 풀어헤치기 시작한다.

"방금 스위치가 눌렸어. 자기, 이리 와."

"어이, 오지 말라니까. 옷은 또 왜 벗어!"

*

상어 공주는 몇 날 며칠을 울면서 보냈어요. 시온 왕자님은 그 날 자신을 폭풍우에서 구해준 사람이 아멜리아 공주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어요. 아멜리아 공주도 그 날 자신이 왕자님을 구했다면서 큰 소리를 치고 다녔어요. 상어 공주는 왕자를 구한 것이 자신임을 간절히 전하고 싶었지만, 마녀와의 거래로 목소리를 잃었기에 도저히 전할 방법이 없었어요.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앉아서 물거품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나?'

왕자님의 결혼식을 하루 앞 둔 어느 날 밤, 상어 공주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 공기의 정령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어요. 신비로운 정령들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상어 공주와 이야기가 가능했어요. 상어 공주는 모처럼의 대화 상대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저런, 공주님.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공기의 정령이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공기의 정령들은 그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정령이 상어 공주에게 말을 걸었어요.

"공주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말 뿐만이 아니랍니다. 공주님에게는 목소리는 없지만, 대신 두 팔다리가 달린 인간의 몸과 고운 마음씨가 있지 않으십니까."

상어 공주는 늙은 정령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리고는 밤을 새워가며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어요.

'제발, 왕자님께 이 마음이 전해지기를.'

그리고 다음 날, 마침내 시온 왕자님과 아멜리아 공주님의 결혼식 날이 되었어요. 왕국의 수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상어 공주는 차마 결혼식장에 갈 수 없었어요. 그녀는 홀로 시온 왕자님을 구했던 바닷가의 모래사장에 선 채 자신의 고향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왕자님이 이대로 결혼을 해버리면, 그녀는 물거품이 되어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말아요. 하지만 시온 왕자님이 그것으로 행복해진다면 그녀는 자신이 물거품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답니다.

'아, 시온 왕자님. 행복하세요.'

상어 공주는 천천히 바다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이제 슬슬 결혼식이 끝나고 그녀가 물거품으로 변할 때였지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물거품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어요. 상어 공주가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주변을 둘러보자,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상어!"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시온 왕자님의 것이었어요. 상어 공주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바닷가를 향해 달려오는 시온 왕자님이 있었어요.

"상어! 기다리시오!"

시온 왕자님의 손에는 그녀가 밤을 새워가며 썼던 편지가 들려있었어요. 그것을 본 시온 왕자님이 결혼식을 포기하고 상어 공주를 쫓아온 것이지요. 상어 공주도 바다 속에서 뛰쳐나와 왕자님을 향해 달려갔어요.

'왕자님!'

이윽고 두 사람은 모래사장 위에서 서로를 껴안았어요. 상어 공주와 시온 왕자님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답니다.

"당신이 쓴 편지를 읽어봤어. 나님을 구한 것은... 바로 상어 아가씨 당신이었군."

상어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시온 왕자님도 그녀의 마음을 몰라준 것에 눈물을 흘려 답했답니다.

"친애하는 시온에게.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답니다."

시온 왕자님은 천천히 그녀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을 읽어나갔어요. 글자 하나 하나에 상어 공주의 진심이 묻어 나왔어요.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상어 공주의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답니다. 시온 왕자님과의 진실한 사랑을 지켜 본 마녀가 상어 공주에게 다시 목소리를 돌려주었지요. 상어 공주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영겁의 세월 동안 당신만을 기다리겠어요. 당신의 머릿결은 밝디 밝은 달빛처럼 빛나며, 당신의 미소는 저 하늘의 태양처럼 맑습니다."

상어 공주는 자신이 진심을 담아 쓴 편지의 구절을 마저 읽어나갔어요.

"아, 시온!"

한 마디 읽어나갈 때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가까워졌답니다. 더 이상 상어와 인간의 차이는 두 사람을 가로막을 수 없었어요.

"사랑해요."

상어 공주가 마지막 구절을 읽어 나갈 때, 이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서로의 마음을 빼앗겨버렸답니다.

"상어가."

거기까지 말한 뒤, 두 사람은 천천히 입을 맞추었어요. 잠시 후 입맞춤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일단 결혼해볼까?"

"네, 왕자님!"

서로를 향한 진실 된 사랑을 확인 한 두 사람은 모두의 축복 속에서 결혼하여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헤... 역시 내 마늘 신부는 최강 귀여워..."

테이블 위에 앉은 구라는 헤헤, 하는 웃음소리를 내며 글을 써내려 간다. 칼리와 키아라는 함께 방으로 들어간 채 문을 잠그고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고, 아메는 게임을 하다가 무엇이 잘 안 풀리는지 기괴한 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검은 책을 다 읽은 이나니스는 히히덕 거리는 구라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묻는다.

"구라, 왜 갑자기 소설을 쓰고 있는 거야?"

그러자 침까지 흘리던 구라가 한 박자 늦게 이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어디에서 공모전 같은 대회가 있다고 들었어. 이나. 거기에 낼 거야."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단어에 이나는 작게 놀란다.

"작가가 꿈이었는지는 몰랐는 걸."

그러나 구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답한다. 사실 그녀에게는 원대한 목표가 몇 가지 있던 것이다.

"아니, 참가상으로 햄버거를 준대."

그리고,

"그리고 상어의 강력함을 이 세상에 널리 알릴 거야!"

그리고,

"그리고 선배의..."

마지막 말은 특히 더 작게 들린다. 집중하지 못하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 집중력이 좋은 이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분명 똑똑히 들었을 터이다.

"와."

하지만 그저 그녀의 마음 속에 묻어 놓을 뿐, 굳이 입 안에 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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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 탑승함. 나 원한다. 햄버거. 그래서 구라랑 시온 결혼식이 언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