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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노엘은 내 손을 붙잡으며 따라 말한다. 

“그러게. 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아무도 없는 숲속, 우리는 바위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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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항상 마을에서 가장 높은 탑에 올라갔었다. 

그곳은 밤이 되면 다른 마을의 불빛이 보였는데, 

어린 나는 그게 마치 땅에서 빛나는 별 같았다. 

그 별빛에 닿고 싶어서 마을을 나섰다. 

어른은 다들 불행해질 뿐이라며 날 말렸다. 

하지만 지금 저 별을 쫓지 않았다간 

내 인생이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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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마을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사람도, 물건도, 음식도, 건물들도.

하지만 새로움이 익숙함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손에 넣은 별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그걸 깨달은 나는 이 나라를 전부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별을 붙잡았다면 새로운 별을 쫓으면 되는 거니까. 

단지 이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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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별을 쫓는 건 

결과도 없이 끝없는 길을 걷는 일이었다. 

어느새 새 마을에 대한 설렘은 사라졌고 

어른들의 말을 부정해야 한다는 강박만이 남았다. 

그 강박이야말로 아직 어른들의 말에 묶여있다는 

가장 큰 증거인 것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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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하얗게 물들어가는 산이 아름다워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산을 오르기로 했다. 

정상에 가봤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오른 정상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의 인생을 바꾼 운명의 사람. 

은빛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그 사람은 

자기를 시로가네 노엘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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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시라누이. 시라누이 후레아야.” 

“후레아쨩이구나! 잘 부탁해!” 

노엘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하얗고 부드러운 손 덕분에 

내 손도 조금 따뜻해졌다.

“사실 조금 놀랐어. 

이런 곳에서 엘프를 볼 줄은 몰랐거든.” 

“뭐, 엘프는 다들 마을 근처에서만 사니까. 

나같은 별종은 보기 드물지.” 

내 대답을 들은 노엘은 

더 큰 의문이 생긴 듯했다. 

“그럼 후레아쨩은 왜 여기 온거야?”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도 내가 떠난 이유를 잊었으니까.

그래서 그저 가만히, 내리는 눈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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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위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얀 세상에는 빛도 색깔도 사라지고 없다. 

“... 난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를 가도 색 하나 없는 하양뿐이라면, 

나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 걸까? 

줄곧 나를 괴롭히던 의문이 분명해졌다. 

“난 뭘 보고 싶어서 걷고 있던 거지?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목소리가 새어나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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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방은 사람들이 차갑지?” 

가만히 내 혼잣말을 듣던 노엘이 

불현듯 말을 시작했다. 

“겨울이 되면 도적이 많아져서 그래. 

다들 식량을 지키느라 열심인 거지.” 

“... 그럼 도적만 내쫓으면 되잖아. 

저 사람들은 누구한테나 공격적인걸?” 

“먹을 게 많아야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법이거든. 

저 사람들은 식량이나 치안이 아니라 

마음을 잃어버린 거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도우려고 왔는데,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 

노엘은 덧없는 눈빛으로 

하얀 지평선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노엘이 너무나 빛나 보였다. 

노엘은 이 하양뿐인 땅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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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가네. 내가 도와줄까?” 

“응? 뭐를?” 

“사람 돕는다는 거 말이야. 

둘이서 하면 조금이라도 낫지 않겠어?” 

깊게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갈 곳도 없으니 해본 말이었다. 

하지만 노엘은 크게 놀라서 되물었다. 

“나를 도와주겠다고? 후레아쨩이? 

아, 싫다는 건 절대 아니야! 

하지만, 너도 목적이 있어서 여기 왔을 테니까...”

“그건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어때? 같이 다녀도 될까?”

노엘은 조금 붉어진 얼굴을 감추더니 

이내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응, 물론이지! 정말 고마워!

후레아쨩이 도와주면 분명 다 잘 될거야!”

노엘은 보물이라도 찾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보물을 찾은 건 나였다.

드디어 잡아야 할 별을 찾아낸 거니까.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산에서 내려갔다.

어느새 눈은 그쳐서 길이 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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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여러 마을을 찾아갔다.

도적들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도왔다.

다행히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엘은 엘프가 옆에 있는 덕분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건 항상 노엘이었다.

나는 단지 할 수 있는 일을 할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게도 칭찬을 나눠줘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조금 기뻤다.

그렇게 눈이 그치고 봄이 찾아왔을 즈음

나는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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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서,

마을들은 무사히 겨울을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곳에서도 우리는 악당들을 무찌르고

아이들을 구하고, 사람들을 도와줬다.

그러던 우리는 소문을 하나 듣게 되었다.

왕궁에서 YAGOO라는 사람을 시켜서

사람들과 나라를 돕는 거대한 팀,

‘HoloLive’를 만들 거라고.

이야기가 조금 황당한 점이 오히려 매력적이여서

우리는 곧장 왕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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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에 걸친 면접과 시험 끝에

우리는 둘 다 홀로라이브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해야 하는 일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악당을 무찌르고, 사람들을 돕는다.

다른 점은 이제 동료들이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우사다 페코라, 우루하 루시아, 호쇼 마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닦아주신 선배들.

우리가 걷는 길을 믿고 따라오는 후배들.

팀에 들어온 뒤에 내가 누린 삶은

어린 시절 마을에서 꿈꾸던 바로 그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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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아. 나, 할 이야기가 있는데...”

“응. 뭔데, 노엘? 말해봐, 말해봐.”

홀로라이브에 들어가고 2년이 되던 즈음,

임무를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가던 우리는

어느 숲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 우선 내 가족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아, 시로가네 기사단장님? 그분이 왜?”

“어, 어? 후레아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노엘은 정말로 당황해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되물었다.

“어... 그냥, 수도를 돌아다니니까

아이들이 신나서 나한테 말해주던데?”

“...하긴, 본명으로 홀로라이브에 들어와 버렸으니

후레아가 계속 모르고 있는게 더 이상하긴 하지.

아아, 아무것도 모르는 엘프라고 방심해서

본명으로 자기소개하는 게 아니었는데.”

“뭐야, 그게. 다 내 탓이라는 거야?”

나는 장난을 섞어 불평했지만,

노엘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다 네 덕분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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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로가네 기사단을 이어야 했어.

하지만 기사단은 왕과 수도만 지키니까,

그게 싫어서 여행을 나섰지.

그게 어리광이었다는 걸 곧 깨달았어.

꿈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

노엘은 내 오른손을 쥐며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후레아. 너를 만난거야.

너랑 있으면 신기하게 힘이 쏟았어.

사람들도 너를 보면 긴장을 풀었구.

너를 만난 덕분에, 나는 내 꿈을 이룬 거야.”

노엘은 볼이 조금 빨개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냥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고마워, 라고 말이야.”

감성적인 분위기 탓에, 나도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고마운 건 나야.

마을을 나선 그 날부터, 나는 계속 방황하고 있었어.

갈곳도, 목적도 없이 그저 걷기만 했지.

그런데 너를 만나고 모든게 바뀌었어.

네가 걷는 길이 내가 갈 길이 되었어.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돕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너를 만난 덕분에, 이제야 걸음마를 땐 거지.

그러니까 나야말로 고마워, 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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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분위기가 잠시 머무르다 지나가고,

남은 건 민망함에 굳어있는 두 사람이었다.

누가 먼저 말을 걸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채,

우리는 돌처럼 굳어서 하늘만 보고 있었다.

“아! 노엘이랑 후레아랑 또 꽁냥대고 있어!

루시아, 우리도 꽁냥대서 저 커플을 해치우자!”

그런 우리를 해방시킨 건 마린의 목소리였다.

그 말이 반쯤 사실이라 반박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멋쩍게 웃으며 동기들에게 다가갔다.

“정말, 틈만 나면 둘이서 꽁냥대기나 하고.

나는 여자친구가 맨날 바람을 피워서 문제인데.”

“뭐? 바람은 네가 먼저 폈잖냐, 임마!

어디서 남한테 원죄를 뒤집어 씌워!”

“하아? 잘도 뻔뻔하게 이야기하네!”

“아, 진짜! 둘 다 시끄러워 페코!

진짜 사귈 것도 아니면서 왜 날마다 싸우는 거야?

그리고 너희 둘도!

꽁냥대든 싸우든 왕궁에 돌아가서 하는 페코다요!”

페코라의 중재로 겨우 말다툼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왕궁을 향해 이동했다.

이 모든 순간이, 일상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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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력 덕분에 홀로라이브는 계속 성장했다.

다른 대륙과도 협력을 하게 되어서,

사신이나 불사조 같은 신기한 동료도 생겼다.

임무의 규모도 점점 커졌다.

우리는 바다에서 나타난 거대 괴수와 싸우고,

우주에서 내려온 머리 셋 달린 황금 용을 해치우고,

어둠의 세계로부터 침략해온 대마왕을 무찔렀다.

그렇게 몇 번의 위기를 뛰어넘은 우리에게

시간의 감시자는 앞으로 재앙이 없으리라고 말해주었다.

세상에는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건, 홀로라이브가 유지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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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우리는 헤어질 때를 직감했다.

할 일도 없는 백수처럼 모여있는 것보다는

각자의 재능을 살리는 게 세상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세간은 해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홀로라이브 멤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야기가 나온 날에는 미코 선배를 시작으로

반 이상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래도 결국은 헤어지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서,

기왕이면 마지막은 서로 웃으며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이별의 날에, 난 아마 웃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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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엘과 함께 시로가네 기사단을 향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지금까지 그랬듯이 노엘의 등을 따라갔다.

외부인 주제에 시로가네 저택에 머무르게 됐지만

홀로라이브의 명성 덕분에 불평은 나오지 않았다.

노엘은 곧 기사단장이 되었다.

계속 자신을 갈고 닦은 끝에,

왕과 나라를 지키는 검이 되었다.

그 사이에 나는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었다.

발버둥도 치지 않고, 그대로 늪에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싫지 않았다.

노엘과 함께라면, 이대로 가라앉은 채 살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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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산 지 40년이 됐을 때,

나는 노엘을 떠나기로 했다.

계기는 별 것 없는 뜬소문이었다.

노엘이 곧 양자를 들일 것이라는 소문.

그런 소문이 왜 돌고 있을까?

그건 노엘에게 후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엘에게 왜 후계자가 필요할까?

그건, 노엘이 벌써 43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엘이 언젠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노엘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 노엘이 죽으면 난 삶을 포기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다른 삶의 목표를 찾고자 했다.

노엘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노엘의 얼굴을 본 순간, 난 여기 머무르고 싶어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편지만 한 통 남기고 여행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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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별을 쫓아서

온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홀로라이브 멤버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노엘과 있을 때랑 바뀌는 게 없으니까.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별에 손조차 뻗을 수 없게 될테니까.

그런 고집 끝에 알게 된 사실은

나 혼자서는 별을 찾을 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살기 위한 목표도, 나아가야 할 길도,

달 없는 밤에 묻혀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설산을 오르고, 사막을 횡단하고, 바다를 건넜다.

50년을, 그렇게 발버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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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햇빛이 찬란해서

카페에 앉아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내게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툭, 하고 편지를 건네주었다.

노엘의 편지였다.

자신을 찾아와 달라는 편지.

그저 그뿐인데, 내 가슴은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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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 적힌 장소로 걸어가니

숲속에는 노년 여성이 홀로 서 있다.

“아, 후레아. 와줬구나.”

그 모습은 딱 내가 생각한 모습이다.

충격받지 않은 척 인사할 수 있는 정도의 모습.

“안녕, 노엘. 오래 기다렸어?”

“아니. 막 도착한 참이야."”

노엘은 그 시절처럼 뻔한 거짓말을 한다. 

나는 그 시절처럼 가만히 서서 미소 짓는다. 

우리는 함께 그 시절을 연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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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노엘은 내 손을 붙잡으며 따라 말한다. 

“그러게. 오늘따라 별이 많이 보이네.”

아무도 없는 숲속, 우리는 바위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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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노엘은 화가 나지는 않은 듯하다.

내가 떠난 뒤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모습은

그녀와 처음 만나던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나는 입을 여는 걸 머뭇거렸지만,

곧 세상을 여행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다.

노엘은 흥미로운 듯, 여러 리액션을 보여주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렇게 옛날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처음에 가지고 있던 불안도 조금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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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아. 나, 할 이야기가 있어.”

이야기가 가라앉을 즈음, 노엘이 말했다.

마치 젊은 시절, 서로에게 감사함을 고백한 그날처럼.

난 노엘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날 부른 것임을 곧바로 직감했다.

“응. 뭔데, 노엘? 말해봐, 말해봐.”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괜히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장례식에서, 추도 연설을 해주지 않을래?”

노엘이 내민 이야기는, 바로 나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노엘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노엘은, 93살의 할머니는, 곧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 추도문을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거절해서는 안 됐다.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고, 나는 대답했다.

“알겠어. 걱정하지 마.”

“고마워... 미안해, 후레아.”

조금 뒤, 기사단원 한 명이 우리를 찾아왔다.

노엘은 단원의 손에 이끌려, 휠체어를 타고는 돌아갔다.

나는 홀로 숲에 남아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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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열린 건 한 달 뒤였다.

가족들과 홀로라이브 멤버만 참석한 작은 장례식.

나는 노엘과의 추억을 담은 추도문을 읽었다.

홀로라이브 멤버들과 근황을 이야기했다.

노엘의 양자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게 끝이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암흑 속에 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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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이 없었다. 여행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엘과 재회한 순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죽을 용기는 없어서,

나는 반쪽짜리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모든 것에 지쳐 내 마을로 돌아가보기도 했지만

그곳에 엘프는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홀로라이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는

젊은 엘프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모양이다.

그 엘프들을 찾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렇게 30년을 암흑 속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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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문뜩 옛날 일이 떠올라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노엘과 만났던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는 동안은 왜인지 힘이 나서

오랜만에 혈기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정상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니

나와 노엘이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홀로라이브가 지켜낸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괜한 감성에 사로잡혀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바로 뱉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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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들려?

아니, 안 들리겠지. 칼리랑 카나타쨩한테 들어서 알아.

천국에 있는 사람은 이쪽 일을 못 본다는 건 말이야.

그러니까 이건 뒷담화야.

 

그날, 네가 추도문을 부탁한 날부터,

난 너를 증오하고 있어.

...조금 과장되긴 했는데, 그냥 계속 할게.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걸 알텐데,

넌 굳이 나한테 추도문을 부탁했어.

왜? 왜 그랬던 거야?

 

...아니, 사실 알고 있어.

너한테서 도망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 마음이 네게 묶여있다는 증거라는 걸.

마치 너와 만나기 전의 나처럼 말이야.

그래서 너는 그런 마음도 끊어줄려고

내게 추도문을 부탁한 거지?

하지만, 미안.

결국 그렇게는 안 됐어.

 

왜 나는 별을 잡을 수 없을까?

바깥 마을, 너, 홀로라이브.

모든 별들이 내 눈앞에서 반짝이는데

어느 순간에는 사라지고 말아.

나는 그게 너무 싫어.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별을 보지 말 걸 그랬어.

 

...그런데, 말이야.

이 산을 올라오는 중에는

조금이나마, 너를 느낄 수 있었어.

너는 내 옆에 없는데,

이 세상 어디에도, 너는 없는데,

어떻게, 난 너를 느낀 걸까?

노엘, 넌, 어디 있는 거야?

 

내 안에, 네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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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한 오두막집을 찾아갔다.

문을 세 번 두드리니 안에서 사람이 나온다.

가슴이 없는 네크로맨서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반긴다.

“후, 후레아다! 후레아가 있어!”

“응. 안녕, 루시아. 실례해도 될까?”

“당연하지! 빨리 들어와!”

루시아는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첫 만남으로부터 1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말이다.

루시아가 왜 찾아왔냐고 묻길래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산을 올랐다가,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루시아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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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랜 세월을 떠돌았지만

다른 멤버들은 계속 근황을 주고받았다는 듯하다.

루시아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해주었다.

그리고 떠나간 멤버들도 말해주었다.

이름을 들을 때마다 슬펐지만, 절망은 하지 않았다.

그들도 내 안에 있으리라는 어렴풋한 희망이 있었다.

가장 놀란 건 미코 선배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130이 넘는 나이인데도 정정하게 살아있다고 한다.

할머니가 된 미코 선배가 ‘니에’라고 말하는 걸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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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루시아는 냉장고에서 술을 가져왔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마시려고 아낀 거지만,

후레아쨩이 온 날이 할리데이니까.”

나는 루시아쨩이 주는 잔을 들고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엘을 위하여.”

“...그렇네. 노엘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는 떠나간 멤버들의 이름을 불렀다.

마린의 이름을 불렀다.

선배들의 이름을 불렀다.

후배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지만

내 안에서 그들이 살아있으리라고

멋대로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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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더 있어도 되는데.”

다음날, 문을 나선 내게 루시아가 말했다.

“미안. 만나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알고 있어. 그래서, 어디로 가려고?”

루시아는 밝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겉모습은 어려보이지만,

루시아는 언제나 어른처럼 날 이끌어줬다.

“우선 미코 선배한테 가봐야지.

시라누이 건설사 멤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할머니 미코치는 조금 보고싶으니까.

그리고는 코코 회장한테 가볼 생각이야.

너도 근황을 모른다고 하니까,

잘 있나 확인해봐야지.”

“쉽지 않을 거야.

드래곤이 어디 사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무엇보다 장로들이 마을에 들여보내줄지도 장담 못해.”

“그러니까 시간 여유가 많은 내가 가야지.

뭐, 10년 안에는 해결되지 않겠어?”

루시아는 내 농담에도 웃지 않고

계속 날 누나같은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가볼게. 술 잘 마셨어, 루시아.”

내가 발을 옮기고 떠나려는 때에,

루시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녀와, 후레아.”

순간, 지난 110년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서 대답했다.

“응. 다녀올게,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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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 선배와는 금방 만날 수 있었다.

정말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이라서,

함께 보낸 하룻밤은 배꼽이 남아나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고, 나는 다시 집을 나섰다.

미코치는 용캐 눈물을 보이지 않고 나를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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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마을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어디에도 단서가 없어서,

마치 지도도 없이 보물을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 산에서 대답을 찾아낸 덕분이다.

나는 동료들이 사라지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눈을 감고는 도망쳤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반짝이는 별은 손에서 빛을 잃지만

보이지 않는 별은 가슴에 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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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글의 바탕이 된 건 루시아가 3기생을 떠나보내는 팬아트였음

그런데 그냥 수명물로 하면 그냥 그런 이야기가 되서

후레아에 나를 이입해서 써보게 됨

이 글에서 후레아를 홀붕이로 대체해서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들지도 모름

시간이 없어서 뒤를 후다닥 써서

가독성이 점점 구려지는 건 고멘나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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