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월 모일


집에 오니 평소에 방에서 시끄럽게 굴던 고릴라년이 조용하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몰랐니? 오늘부터 자취 시작했잖아"


어른이 된 이후로 제대로 된 대화도 얼마 나누지 않았지만 그런 일을 오빠인 나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저지르다니 참 대단한 여동생이다


알 게 뭔가 시끄럽게 굴던 고릴라년이 없어졌으니 조용하겠네라고 생각한 순간


"오늘 저녁 뭐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고릴라년


..니가 왜 여깄어? 자취 시작했다면서?


"가까운데서 자취하니까 밥은 여기서 먹고 가라고 했단다. 그게 편하고 좋잖니?"


어머니도 참 착하시지. 그래 대체 얼마나 가깝길래 밥먹으러 오는거지?


"1분. 아니 30초 거리던가?"


그걸 자취라고 부르는 멍청이는 이 고릴라년밖에 없을거에요 어머니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모월 모일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서 어머니가 뭔가를 열심히 긁고 계셨다.


뭔가 싶어서 보니 복권이었다. 평소에 복권 같은걸 사서 하시진 않았는데..?


아니 그전에 복권이야 누구나 한번쯤 자신도 인생의 주인공이 아닐까하는 마음으로 사는거니까 그 자체는 이상한건 아니지만 이 상황은 분명 이상했다.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복권을 몇십장씩 쌓아두고 그걸 긁고 있냐.


"ㅁ..뭐하는거에요?"


"아~ 왔구나.. 아니 글쎄 좀 도와달라길래 하고 있는데 복권 긁는걸 도와달라고 할줄은 몰랐지.."


자취랑 아지트를 구분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이젠 어머니한테 복권 긁는거까지 도와달라고 그러는건가.


한숨을 쉬면서 어머니가 들고 있던 복권을 빼앗아 들고 대신 긁기 시작했다. 하지말라고 해도 하실테니 그냥 내가 하는게 낫지.


나 또한 인생의 주인공이니 한번쯤은 행운이 찾아오리라 믿고 유리로 된 마음이 깨지기 전까지 매주 복권을 사서 긁어봤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복권을 사다니 정신 나갔다는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에휴 빨리 끝내고 던져주자.


숙련된 솜씨로 모든 복권을 긁어서 고릴라년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시끄럽게 굴던 녀석이 어머니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신나게 문을 벌컥 열었지만


"..왜 오빠가 여깄어?"


미안하게 됐네 어머니가 아니라 나라서.


그리고 자기 집에 있는게 잘못된거면 그건 이 오빠가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거란다 멍청아


"어.. 고마워"


대체 뭘하길래 복권을 이렇게 많이 산거야? 싶어서 물어보려는 순간 열린 방문 사이로 보인 광경에 넋이 나갔다.


어머니에게 맡긴 복권의 두세배는 되어보이는 양의 복권이 컴퓨터 앞 책상위에 쌓여있었다.


"..아니.. 됐다 야.."


물어볼 엄두도 안난다. 그래 도박은 안하고 차라리 복권을 긁는거면 빚까진 안지겠지..





내가 페코라 오빠였으면 분명 이랬을거 같음